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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Nov 19. 2019

부산사람

씽킹브릭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저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국민학교 다니던

80년도에는 롯데껌도 먹으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한번도 만나 본 적도, 얘길 나눠 본 적도 없는

경상도 사람들은

그 당시 반공 만화영화에서

늑대로 나오는 북한 괴뢰군만큼이나

좀 두렵고 막연한 존재들이었죠.


아마 그 시절 경상도에서 자란 친구들도

비슷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금이야 한두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할

거리지만 그 때만해도 반나절은 걸려야 갈 수 있는

그 곳은 지금으로 치면 동남아 여행을 갈 시간과 준비가

돼야 했을 테니까요. 그만큼 왕래도 어려웠습니다.

그런 거리상의 단절을 이용해 교묘하게 지역감정을

조장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20대가 넘어서야 겨울 바다를 보러

처음 부산땅을 밟았을 때도

그런 느낌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군요.

환경은 비슷한데 사람들의 말투에서

좀 서먹하고 낯선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린 사건이 세번 있었습니다.


첫째는 팔도 청년들이 다 모이는 군대에서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눈치만 보는 이등병을

따뜻하게 챙겨주고 친구처럼 대해줬던

선임병이 부산 사나이였어요.

사나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곱상한 미남이었습니다.


그 때 당번병이라는 보직이었는데,

대대장님을 측근에서 모시는 비서같은 역할이었습니다.

찌질해보이는 이등병이 불쌍해 보였는지

무심하다가도 하나씩 툭툭 챙겨주는

것이 매번 너무 고맙더라구요.

부산 사내의 감성이 내가 생각했던

그런 투박하고 거친 감성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네요.


두번째는

첫 직장에서 만난 부산 동료입니다.

빠른 생년월일을 따지느라 조금 애매한

호칭을 십년이 넘도록 이어오고 있지만,

호칭을 뭐로 하든 관계에 있어서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편하고 친한 관계니까요.


엄청 놀리고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항상 든든하고 묵직하게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성격이라고 할까요. 어떨 땐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런 한결같음이 그 친구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저도 어디가서 가볍다는 얘긴 들어 본적이 없는데요.

그 친구를 따라가기엔 한참 모자란가 봅니다.

옆에 있으면 오히려 제가 좀 까불거리고 유쾌해 보이기까지

하더라구요.

아무튼 참 진지하면서도 자기 주관이 뚜렸한  

매력있는 부산 사내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마지막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인데요.

두 명 다 부산사람들이었습니다.

부족한 저를 잘 따라주고 디자인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친구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선배로써 가르치는 입장이었지만 몇년 지나서는

오히려 제가 자극받을만큼 성장한 친구였습니다. 그 정도되니 서로 몇 마디

안해도 손발이 척척 잘 맞았습니다. 그만큼 서로를 잘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겠죠.

덕분에 직장생활을 재밌게 했던 것 같습니다. 가만 보니 그 친구들도 진득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첫번째 직장의 친구와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아무튼

제 머리 속 부산의 이미지는 어떤 풍경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나의 부산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와 마음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 갑작스럽고 뜬금없이

부산이 떠오른 이유는 참 단순하고

좀 황당합니다.


일하다가 카피를 쓰는데

어디어디에 서서’가 좋을까? 아니면

어디어디에 서면 ‘이 좋을까를

고민하는 찰나였어요.


그러다가


‘어디어디에 부산 서면’이라는조합을 떠올렸습니다.

이걸 요즘 용어로 드립이라고 하나요.

그런 말도 안되는 드립을 머리 속에 상상하다가

혼자 키득거리는 와중에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그 부산사나이들이

더 보고 싶어지네요.


꽤 오래 가보지 못한

부산도 다시 가보고 싶구요.



#씽킹브릭

#부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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