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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Dec 26. 2019

기억에 남을 특별한 크리스마스 저녁

씽킹브릭

어제는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돌봐주셨던 이모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과의 일정이 있어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에 가족도 아닌 저희를 초대해주신 마음이 너무 고마워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만 두신지가 벌써 2년이 넘어가는데도 아직 연락을 주고 받을 만큼 저희 가족에게 정말 특별한 분입니다.


이모님은 둘째가 6개월이었을 때 인터넷 베이비시터 커뮤니티로 처음 만났습니다. 면접을 볼 때 일을 처음 시작한다고 하셔서 조금 불안했는데, 반대로 그 만큼 우리 아이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실 것 같기도 했습니다. 직감으로만 선택하기에는 아이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그럴수 밖에없었습니다. 커뮤니티에 있는 모든 베이비시터의 면접을 볼 수도 없는 일이구요. 아내의 복귀 날짜도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때도 베이비시터 면접을 정말 많이 봐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작정하고 좋은 사람인 척한다면 속을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걸요. 다 우리 운명이고 아이의 복이겠거니 생각하면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다른 이유들 빼고 저는 그 이모님이 베이비시터를 처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를 처음 안아보고 설레여하시는 표정에서도 믿음이 갔습니다. CCTV를 왜 달지 않냐는 주변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우리 아이를 돌봐주실 분으로 결정한 이상 정말 제 2의 부모님처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부모님을 감시하려고 CCTV를 달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눈치보고 신경 쓸 에너지를 저희 아이에게 쏟아주시길 기대하는 마음으요. 그렇게 못 믿을거면 직장을 그만 둬서 아이들을 키워야 할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2년 동안 그 이모님과 함께 하면서 정말 많은 걸 느끼고 배웠습니다. 어떨 때는 우리 부부가 느끼지 못했던 아이의 행동과 습관을 말씀해 주실 때는 깜짝 놀랄 때도 많았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아이가 커가는 것 지켜보는 자체가 너무 신비로워 하시는 분이셨고, 너무나 섬세한 감각으로 아이의 자그마한 감정도 놓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육아에게 지쳐있는 엄마 아빠는 절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많이 발견해내고 알려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그렇게 약속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식사 자리였어요.

식사가 끝날 때 즈음 이모님께서 초록색 표지의 수첩을 건내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2년간 쓰신 육아일기였습니다. 저는 쓸 생각도 엄두도 안났는데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모님을 보내드리고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글을 보면서 아내와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뒤로 집안의 가보로 남기겠다며 주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선반 위에 올려놨는데요. 어쩌다 그 일기를 넘겨 볼 깨면 아내도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때문에 정말 눈물 젖은 밥을 먹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말이지 내 아이니까 키우지, 다른 집 아이면 못 키우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모님이 둘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많이 반성했습니다. 다른 집 아이였더라도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는걸요. 그 게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는 걸요.


어제 이모님 내외와 저녁을 함께하면서도 다시 그 생각이 났습니다.

비록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인연이 되면 그 분들이 우리의 부모님처럼 될 수 있고, 그 분들도 우리가 자식이 될 수 있다는 걸요.

저희는 부모님과 식사하듯 대화하고, 이모님 내외는 부모님께서 음식을 챙겨주시듯 저희를 대해주시는 걸 보고 그런 감정이 더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저는 오랜만에 행복한 마음에 한껏 충만해졌고,

맛있는 음식으로 산타 할아버지처럼 배가 산만해졌답니다.

저에게도 가족에게도 무엇보다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습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저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모님께서 쓰신 일기 중 한편을 소개해봅니다.



4.12


더 없이 조심해요.


기습 당하듯 아이가 떨어지거나 넘어질 수 있다는거.


잠깐 고개돌려 가재수건 집는 사이 아기가 뒤집으며


침대에서 매트 위로 떨어졌다.


아기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나 한테 화가났다.


아기는 1분을 울었지만


나는 겁이나고, 화가나서 1시간 울었다.


아기보는 일, 계속할 수 있을까.


자책감과 자신감 저하로 우울하다.


다행히 아기는 금새 웃고, 목욕하고, 잘 먹고, 잘 잤지만


나는 걱정스러워


가슴 바닥이 베인 듯 아프다.


선우 엄마아빠에게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일기를 건네시면서 이 날 일 때문에 너무 놀라서 말씀도 못했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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