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와 사귈 거 아니면
밀당은 연애에선 몰라도 업무로는 하지 말자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디자이너로써 경험이 부족했을 땐 디자인 다 해놓고도 일부러 좀 늦게 보내거나 아이디어가 더 있는데, 다 내놓지 않고 몇개는 숨겨 놓을 때가 많았다. 심지어 그걸 부추기는 선배들까지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몇년 사이에 내가 의뢰인 입장이 되고 보니 그게 얼마나 한심한 짓이였는지를 알게돼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보여줄만큼 보여주는 편이다.
여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
언젠가 디자인 미팅을 하고 나오는데, 의뢰인이 다른 디자인관련 협력사와 통화하고 끊고서는 혼자말을 했다.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기가막히게 잘하든지, 엄청나게 빠르던지,,,참 내’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 것도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찌릿했다. 더더욱 그럴것이 하필 그때 나는 의로인에게 제대로된 성과물을 주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내 귀에 울릴만큼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말이었다.
‘그래 맞아, 의뢰인이 그 두가지가 제일 중요하겠구나’
누가봐도 완벽한 디자인을 내 놓던지,
시간을 아낄 수 있게 엄청나게 빠르게 하던지
하지만 그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마도 그렇게 어렵기 때문에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엄청난 퀄리티의 결과물을 제안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는데, 빠르게 하는 것은 마음만 고쳐 먹으면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하면 가장 빠르게 대응을 해드렸다. 특히 그 말을 했던 의뢰인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했는데, 어떨 땐 너무 빨라서 놀라기도 하고, 고마워하기도 하고 내쪽에서는 업무의 집중도나 효율도 올라가고 나쁠 게 없었다.
결국 일이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간에 이뤄지는
생각의 소통이고 감정의 교류다.
괜한 꼼수를 부려 감정 상하고
어설픈 밀당으로 주도권을 잡아봤자
별 소득이 없는 것 같다.
일을 연애하듯이 밀당하다간
큰일이지 않은가.
안 그래도 우리는 그 놈의 '관계' 때문에
머리 아플일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게 머리 굴리지 않고
오직 최선의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편이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담당자와 연애할 거 아니면
업무로 밀당할 일은 없을 거라는 마음으로
일을 할 것이다.
밀당도 서로의 호감을 전제하에 해야 통하지
어떻게든 호감을 쌓아야할 을의 입장에서
밀당은 말도 안돼는 소리가 아닐까.
#씽킹브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