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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Jan 29. 2022

사주와 MBTI가 비슷해 보였던 이유

고등학교  철학관을 하시는 어머니를  친구 덕분에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모두 공짜로 사주를 봤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전혀  생각을 하지않았다. 사주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라 생각했고 그런 거에 잠깐이라도 휘둘리기가 싫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믿는 것들만 믿고 싶은 고집이 있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사주 보는 법을 나도 배우게 됐다. 배웠다고 해봤자 고작 A4 두장 분량의 내용을 외우고, 그 내용을 사람에 맞게 대입해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 딱 드러 맞을 때가 꽤나 많았다.


사주를 보는 법은 12간지의 동물과 태어난 시간 그리고 생년월일이 기본 재료가 됐다. 따져보니 대략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700여가지다. 전문적으로 수천명 이상을 보지 않는 이상 내가 봐준 사람의 사주는 단 한명도 겹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심각한 마음으로 배운 게 아니라 재미 삼아 배운 거였는데, 막상해보니 사람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유용한 도구였다. 특히나 나처럼 말 수 없는 사람에게는 사주를 봐주면서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너무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툴이됐다.


아내와 소개팅을 할 때도 사주를 봐줬는데, 사주를 봐줘서 잘된 건 아니겠지만, 짧은 시간에 가까워진 계기가 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내는 따로 시간을 나 사주나 운세를 보러 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보통은 자신의 사주를 봐준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의 답을 기다린다. 당연히 그 시간이 긴장감이 유지되고 흥미로워진다. 대화가 잘 오가게된다. 그러다보면 잘 통한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주를 좋아할까?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눈에 빛이날 정도였고, 음력 생일과 태어난 시간까지 부모님께 바로 물어 봐 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보통 사람들은 나 자신을 좋아한다. 자기에게 관심이 많다. 자기가 누군지 궁금해한다. 누군가가 자기 얘기를 해주길 원한다.


이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게 바로 사주를 보는 것이다. 사주를 본다는 건 상담하듯 오롯이 내 얘기만 들을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인생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나에 관한 얘기를 이렇게나 자세히 들을 수가 있을까? 초등학교 통신문에 있던 나라는 사람에 대한 몇 줄 안되는 이야기조차 다 크고 성인이 되고나면 들을 수 없다.


더구나 사주는 나의 대한 평가가 아니라, 타고난 성향을 말해주는거니 말해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틀려도 그만 안 틀려도 그만이니 딱히 부담이 없다.


그러고서 생각해 보니 사주처럼 사람을 파악하는 툴이 지금 한참 유행하고 있는 MBTI와 굉장히 유사하다. MBTI가 어쩌면 지금 시대의 사주같은 게 아닐까 싶다.


사주처럼 내 얘기만을 온전하게 이렇게까지 자세히 해 주는 장치다. 유명인이 아닌 이상 이렇게나 세세하고 다차원적으로 나를 설명하고 분석해주는 건 없다.


나는 세번 정도 테스트했는데 INFP가 나왔다. 성향을 읽어보니 대충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잘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나는 열정적 중재자가 INFP가 되기도 하고 , 용의주도한 전략가가 되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예술가가 되기도 하니까. 사람이 어디 하나의 성향만 가지고 있을까. 대체로 내향적인 나도 외향적으로 변할 때도 있다. 어찌보면 MBTI가 규정한 16가지의 유형이 모두 내 안에 들어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재미만 볼 뿐 이 걸로 나를 규정하거나 다른 사람을 판단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사주와 마찬가지로 MBTI 나에게 좋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있는 좋은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서로 금새 가까워지고 편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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