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을 가족들에게 자주 말하는 편이다. 아내에게도 그렇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나를 빼면 가족 모두 디자인이나 브랜드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내가 그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해도를 높이고 내 생각을 정리 할 수 있어서다. 엘리베이터 피치라는 말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1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계획과 장점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법이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이 게 어떤 프로젝트이고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핵심만 얘기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자신의 얘기를 전달해야하는 건 마치 100장의 보고서의 1페이지로 축약해야하는 도전과도 같다. 최대한 쉬우면서도 중요한 요소를 놓치지 말아야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완벽하게 평범한 일반 소비자인 아내에 내가 설명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길고 장황하게 설명하면 집중력이 흩어진다. 그러기 전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하듯이 짧게 얘기해야한다. 그렇게 했는데 아내를 이해하게 만들었다면 내가 그 프로젝트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면 아무리 길게 설명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건 더욱 난이도가 올라간다. 아이들이 아는 브랜드나 산업이 아니라면 설명하기도 전에 말문이 막힌다. 만약 아이들이 금방 이해할 정도로 잘 설명했다면 프로젝트를 정말 쉽게 끌어갈 가능성도 커진다.
두번째는 프로젝트를 객관적으로 보는 장치가 된다. 작은 시장조사를 할 수 있다. 이런 디자인을 하면 어때? 이런 디자인이 나오면 관심이 갈 것 같아? 구입할 마음이 생길까? 등등 디자인에 대해 질문하면서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관여도가 낮은 사람들이 툭 던져 놓는 의견에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를 받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의견을 눈치 안보고 편하게 자유롭게 나눌 수가 있다. 아무리 분위기 좋은 조직이라도 내 의견을 자유롭게 내놓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용기를 낼만한 수준의 도전은 아니다.
어쩌면 마지막 이유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했다. 세번째 이유는 가족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보여주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때문이다. 아빠는 왜 남들처럼 큰회사가 아니라, 작은 회사에서 많은 직원들이 함께 일하지 않고 혼자서 일하는지 자연스럽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적 아빠들처럼 모든 짐을 나 혼자 지고 가는 게 아니라, 아빠가 하는 일을 함께 알고 공감 받았으면 했다. 그러면 아무리 일이 힘들더라도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서로 많이 알수록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말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서로의 이해의 폭은 점점 더 커진다. 물론 드물게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이 방법이 처음에는 해도 될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가족들에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늘어 놓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오해였다. 가족들은 내가 하는 일을 궁굼했고 관심도 많있다. 심지어 아이는 디자인 발상을 함께 하고 싶다며 열심히 노트에 아이디어를 그려오기도 했다. 가끔 주말에 소파에서 스케치를 할 때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넌지시 이번에는 또는 어떤 일이냐며 물어오기도 한다. 이렇게 하니 가끔 아빠가 늦는 날이나 출장이나 미팅을 가는 날에도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을 안해도 된다. 아이들 머리 속에도 어느 정도 내가 하는 일의 과정이 그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일은 언제나 일상 가까이 있다. 업무와 일상을 분리한다고 하더라도 쉽지가 않다. 식품회사의 브랜드를 개발해야하는 기간이라면 편의점을 가다가도 SNS를 하다가도 만나는 모든 식품 브랜드들이 디자인을 위한 재료가 된다. 만일 여성 화장품 브랜드를 개발한다면 생활을 하다가도 아내의 화장대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간다. 쉬면서도 일하고 일하면서도 일상을 살아가게된다. 물론 일상과는 동떨어진 프로젝트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우리 일상안에 있다.
이러한 디자인 일의 특성상 일상과의 경계가 확연히 구분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걸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그들과의 소통은 자신을 객관화 시켜준다.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힘을 얻는다. 무엇보다 1인 기업의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런 장점 때문에 앞으로도 나는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최대한 내 일을 말하고 설명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