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기부터 새끼손가락만한 두께의 노트를 거의 매일 쓰고 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하는 기록도 좋지만 종이의 질감과 펜의 필기감이 주는 특별한 경험이 좋기 때문이다.
타이핑에 비해 다소 느린 필기 속도는 내용을 완성하는 동안에도 생각을 교정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사각 사각 필기해가며 종이 위에 쓰인 생각들을 보며 아이디어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기도 좋다. 타닥타닥 자판을 때려서 만들어낸 티클 하나없는 모니터 속 기록보다 쓰윽쓰윽 글자와 그림을 그려가는 행위는 생각의 온기가 담긴 수제 아이디어가 될 가능성도 올라간다.
처음 노트 쓸 때는 일과 프로젝트 중심으로만 채웠다. 그러다 중간 중간 떠오르는 개인적인 관심사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필기구의 색을 바꿔가면서 회사의 ‘일’과 개인적인 ‘생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썼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성격이 다른 생각을 분리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둘다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들이라도 일터와 일상 공간을 나누듯 생각도 나눠서해야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위치를 누르듯 생각의 스위치를 전환하기 좋은 노트, 자주는 아니지만 양쪽의 생각을 찾아보기 쉬우면 노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노트가 있을리 없었다. 이 참에 아예 노트를 만들어 버릴까 생각도 했다가 괜한 에너지와 비용을 쓰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만뒀다.
그러다가 기존 노트를 쓰면서도 내가 필요한 조건을 만족하는 노트 쓰는 방법이 떠올랐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앞면부터는 일이나 프로젝트와 관련된 계획과 일정 아이디어들을 쓰고, 노트를 한번 뒤집고 왼쪽으로 180도를 돌려서 개인적인 생각과 일상의 감상을 쓰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마치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다르듯 두개의 분리된 생각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한개의 테마가 아닌 두개의 테마가 담긴 노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 앞쪽의 일에 관한 내용이 훨씬 많은 경우도 있고, 뒷면의 개인적인 계획과 생각으로 가득 찰 때도 있었다. 그렇게 양쪽의 생각을 오가면서 노트를 채워갔다. 두 생각이 한 지점에서 만날 때 한권의 노트가 완성됐다. 일과 일상, 회사와 개인의 생각이 균형을 그렇게 잡아 갈 수 있었다.
창업 후 이렇게 써온 노트는 두세달에 하나 정도, 일년이면 5권 정도가 됐다. 5년간 스무권이 쌓였다. 이 기록을 아마 다시 펼쳐 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손수 기록을 하면서 단련한 생각의 근육은 노트의 두께만큼 촘촘하게 남아 앞으로도 계속 다른 생각을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일인 기업은 기록을 하더라도 달라야한다. 혼자 쓰더라도 두 사람이 쓰는 것처럼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써야한다. 혼자서 해야할 생각의 양과 일의 양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일인기업은 일과 일상의 구분의 경계가 흐릿해지기도 쉽다. 그러다보면 생각도 꼬이고 생활 패턴도 깨지기 쉽다.
이를 위해 나의 듀얼 노트 기록법을 추천한다. 그렇다고 갑자기 듀얼 CPU를 가진 수퍼 컴퓨터같은 뇌를 가지는 건 아니지만, 균형 잡힌 생각을 갖고 아이디어의 감도를 올리는데 도움을 줄거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