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빌더인 브랜더를 종종 의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업 브랜드를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해 브랜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치 사람의 생애을 책임지는 주치의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가진 '문제'와 사람의 '병'을 대처해가는 과정은 비슷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브랜더와 의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의사는 이미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브랜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앞으로 존재할 브랜드 또한 대상이 된다. 세상에 없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성장시켜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점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대상이 있고, 거기에 '병'이라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과 싸워야하는 의사의 일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다.
세상에 존재조차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문제를 생각해야하는 브랜더의 일은 그래서 참 막연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실 이런 막연함은 이미 존재하는 브랜드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경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과 다르게 브랜드는 말이 없다.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말할 수도 어디가 약한 부분인지 표현할 수도 없다. 브랜드에게 물어봤자 문제의 해결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브랜드의 문제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을 통해 파악하고 발견해야한다. 결국 브랜드의 문제점은 브랜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느끼고 바라보는 고객들의 마음 속에 시간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의 모든 문제 진단은 브랜드 자체보다는 브랜드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고객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데서 출발해야한다.
또 다른 막연함은 브랜드의 문제가 경영차원에서 발생할 때다. 브랜드의 방향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 이건 인사의 문제일 수도 영업의 문제일 수도 마케팅의 문제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경영진 태도나 철학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단순히 브랜딩 활동이 잘못돼서 병을 얻는 게 아닐 때도 많은 것이다. 이렇게 경영차원의 문제로까지 넓힌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더 넓고 크게 살펴야 브랜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보이는 이유다. 브랜딩만 기가막히게 한다고 비즈니스가 성공한다면 대박날 브랜드들이 세상에 널렸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과 복잡성 때문인지 브랜더에게 의사와 같은 자격증이 없다. 어쩌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비견할 만큼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임무를 가졌지만, 어떠한 공인된 자격이 없다. 고객의 동의를 받으면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브랜드를 시술하 게 가능하다. 그래서 위험 천만한 상황 또한 너무나 흔한 건 아닐까 싶다. 자격없고 실력없는 전문가들은 어디에나 넘쳐나는 건 물론이고 '브랜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행해지는 어설픈 시술도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사실 대외적으로 인정되는 공인된 자격증을 대치할 장치들은 많다. 빛나는 이력, 유명 브랜드의 브랜딩을 진행한 실적, 유명 매체의 인터뷰, 해외 공모전의 수상 경력 등은 국가 자격증을 넘어설만한 객관적인 검증 수단이다. 어쩌면 의사들의 국가공인 자격증보다 더 어렵고 진입장벽이 훨씬 높은 증명서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격증이 의사들처럼 기업이나 브랜드의 병에 대한 확실한 해결결 방안을 제안할 수 있을까? 사실 그것도 속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 회사들이 잘못하다기 보다는 ‘브랜딩’의 기본 속성 때문이다. 브랜드는 '개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개발 후에도 '지속'된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연속성이 있다. 사업이 철수할 때까지는 브랜딩에 있어 완료 개념은 없다. 브랜드가 탄생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따라붙는 것이다. 따라서 브랜딩 문제를 외부 회사의 도움으로 개발하고 해결한다는 건 좀 아이러니다. 연속성있게 끊임없이 개발하고 관리해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외부 회사들이 보기 좋고 기막힌 브랜딩을 셋팅해줬다고 끝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렇게 브랜드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브랜딩의 효과가 바로 극적인 매출로 나타나거나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만족할만한 결과를 금새 얻어냈다고 하더라도 그런 한순간의 이슈는 브랜딩이 아니라, 하나의 ‘쇼’일 가능성이 크다. 일시적인 쇼는 가능하지만 수년동안 쇼를 이어가면서 버틸 브랜드는 세상에 없다.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는 나이키, 스타벅스, 애플등이 어디 한순간의 쇼를 통해 만들어진 브랜드들인가. 수십년 수십년의 착실한 브랜딩을 통해 차곡 차곡 성과를 쌓아 온 브랜드들이다.
물론 브랜딩을 통해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와 실효성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다. 브랜딩을 통해 그런 성과들이 최대한 빠르게 이뤄진다면 이상적인 일이다. 막연한 호감도나 기대감 등이 매출이나 눈에 보이는 호응으로 이뤄진다면 그걸 만드는 브랜더들도 힘이 날것이고 기업에게도 브랜딩의 강력한 효과를 직감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다. 대부분의 브랜딩 활동은 족집개 의사의 치료 효과처럼 바로 나오지 않는다. 매출로 직결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브랜딩의 결과를 계량화해 입증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보면 브랜딩이란 가지고 있는 병을 치료하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일, 병이 생기더라도 금방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믿음을 심는 일, 고객들에게 더 매력적인 호감을 쌓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면역을 기르고 기초 체력을 올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작심해서 성공한 단기 다이어트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식습관와 체질을 바꾸는 솔루션인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답답하고 지리한 싸움이고 장기전이다.
브랜드의 체질을 만드는 일,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발효처럼 하나의 요인의 변화를 통해 주변의 여러가지 관계가 요소들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숙성과 발효의 시간을 거쳐야 진정한 새로운 형질의 음식으로 변한다.
브랜드 개발의 성과를 보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브랜드는 사람이 만들지만, 브랜드의 완성은 시간이 만든다. 그 시간은 브랜드가 고객의 마음까지 다가가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