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회사의 성공 습관 ]
가장 오래 일했던 회사는 대한민국 정부 상징이나 한국은행 등 국가기관의 브랜딩을 한 회사로 많이 알려진 곳이었다. 회사 타이틀이 아니라면 내 개인으로는 상대하지도 못할 기관이나 기업들의 프로젝트를 많이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수준의 경험과 지식으로 어떻게 그런 큰 일들을 해갈 수 있었는지 의문일 정도로 미숙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전통이 있는 회사이고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회사에서 최소 몇 주의 시간을 확보해줬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과 아트웍을 실험할 시간을 꽤나 여유 있게 가질 수 있었다. 한 프로젝트당 많게는 백개 이상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가면서 하루 종일 형태 하나, 선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7년 동안 했던 조형 연습과 아이데이션 방식들은 아직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 당시 디자인팀에 속한 나는 기획팀의 일을 도와줄 때가 많았다. 디자인도 해야 하고 기획서 디자인도 도와야 하니 일의 양은 늘어났지만, 기획 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은근히 자원해서 늦게까지 제안서를 함께 디자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직접 기획한 건 아니고 장표 디자인만 도왔지만 그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됐을 때는 정말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그때 많게는 백 페이지에 가깝던 기획서를 계속 접하고 디자인하면서 기획이라는 일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계기가 됐다. 디자인 파트뿐 아니라 기획자의 시선으로 프로젝트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완전히 독립해 혼자 회사를 운영하면서 진행하는 브랜딩 기획 일에 정말 큰 자산이 되고 있다.
가장 오래 일했던 그 회사를 떠나 중부권에서 가장 큰 브랜딩 회사로 이직했다. 본사가 지방이었던 회사의 서울 브런치를 운영하면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채울 수 있었다. 내 이력과 경험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회사 대표는 아니지만 브런치의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포지션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중압감은 커졌지만 오히려 그게 자극이 되어 내 개인의 성장을 가져왔던 것 같다.
이전 회사의 유명세에 비해 인지도는 낮았지만,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경험을 펼치기에는 굉장히 좋은 환경의 회사였다. 특히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회사 대표님과 팀원들과 일하는 게 즐거웠다. 프로젝트 디렉션부터 채용, 회사의 크고 작은 운영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서 업무 강도는 올라갔지만 그만큼 보람이 컸다. 디자인만 잘하면 됐을 이전 회사보다는 할 일이 많아졌다. 프로젝트가 잘못되면 내 뒤를 커버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런 압박감은 생각보다 컸고 나를 향한 기대감도 부담됐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게 했다. 이전 회사보다는 몇 배의 프로젝트를 감당해야 했지만 그 게 오히려 좋은 자극과 도전이 됐다. 그런 긴장감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보다는 긍정적인 도전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상대하는 기업들의 규모도 달랐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이나 창업 초기의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전 회사들에서 상대했던 큰 기업들은 내가 프로젝트에 참여는 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제안들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하기도 힘들었고 굉장히 신중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제안한 안이 선정되더라도 적용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결과물이 한참 뒤에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기업의 규모가 작아지자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기업의 대표들을 독대한 보고와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도 많았는데, 내가 제안한 디자인이 바로바로 선정되고 적용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몇 개월에 걸쳐 의사결정이 되고 완성되는데 까지 해가 넘어갈 때도 많았던 이전 회사의 경험과는 또 달랐다.
상대하는 기업들의 산업 분야도 굉장히 다양해졌다. 군사용 발전기를 만드는 회사에서부터 작은 반도체 칩을 만드는 곳까지. 심지어 3대째 내려오는 가업을 잇고 있는 150년 된 브랜드들까지 여러 가지 차원의 기업들을 직접 만나고 질문하고 고민들 듣는 과정들은 비록 3년의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몸소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이라는 울타리에만 갇혀있다가 그 문을 열고 나와 울타리 전체를 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비즈니스를 직접 만들어낸 대표들에게 사업을 보는 안목과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마지막 직장을 나와 완전한 독립 해서는 또 다른 책임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 스스로가 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회사가 돌아갈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내가 그냥 앉아 있으면 일을 가져오지 않으면 바로 회사가 멈춰 버렸다. 그 압박감은 생각보다 컸다. 일 자체를 잘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일이 몰렸다가도 한 번에 쫙 빠지고 한꺼번에 몰릴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군가가 나를 믿고 일을 주고받으며 회사를 유지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원래 알고 지냈던 네트워크로 받는 일의 한계를 깨닫고 그때부터는 SNS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저에게 일을 주세요 !라고 말하기에 앞 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경험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야 하는 게 첫번째 해야 할 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만들었으니 일을 주세요’가 아니라 ‘저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는 걸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 활동을 3년 정도 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 조금 감이 오기 시작했다. 나를 어떻게든 알려야지라는 관점을 조금 바꿔 내 생각과 경험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하자 그 이전과는 반응이 달라졌다. 더 좋은 반응이 이어졌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나를 알리는 목적이 아니라 내가 뭔가 도움을 줄만한 것들을 꺼내 놓으니 나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도 있었다. 일에 대한 문의와 의뢰도 그때부터 새롭게 생겨났다.
어떤 회사에 속해 있을 때보다 1인 회사로써 겪어내야 하는 경험의 폭과 강도가 훨씬 세졌다. 그렇게 경험이 늘어날수록 시행착오를 겪어낼수록 그 안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경험이 쓸모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움이 없는 경험은 쓸모없다. 경험이 배움이 되려면 경험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걸 연결하고 응용해보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경험이 좋았든 좋지 않았든 간에 그 안에서 어떻게든 배우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경험은 자신의 시간을 쓰는 일이다. 한번 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경험을 온전히 내 것으로 가져가는 습관, 나를 성장하는 계기로 삼는 습관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시간을 쏟아 직접 경험한 것들, 스스로 체득한 것들은 어쩌면 그 자체라고 나라고 해도 좋은 것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