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인 디자인 회사가 일하는 법 ]
디자인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다. 제안하는 디자이너와 제안을 받는 의뢰인이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때문에 서로의 상호작용을 생각하면서 디자인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야할 것들이 참 많다. 우선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디자이너는 의뢰인이 하고 있는 사업의 비전과 가치를 집요하게 묻고 샅샅히 알아야한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든 것을 알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알고 느끼려고 해야한다.
의뢰인도 마찬가지다. 내가 의뢰한 디자이너가 뭘 잘하고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는지를 잘 알아야한다. 내가 가진 문제 중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파악해야한다. 디자인은 곧 커뮤니케이션이기도 한 이유다.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을 위해서는 필수 사항이다. 이렇게 상호간에 이해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디자인 프로젝트는 출발부터 제동이 걸리거나 가다가도 멈춰 설 가능성이 무척 크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디자인이란 일에는 사실 단 하나의 유일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제안을 할 때는 이게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단 하나만을 주장하기보다는 내가 고민하고 연구한 과정에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다방면으로 치열하게 고민한 생각의 덩어리들을 펼쳐 놓고 함께 고민해 본다. 각각의 방향에는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단점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어떤 디자인이 더 낫다라기 보다는 더 적합하다고 느끼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과정인 것이다.
일방적으로 선택을 강요하기보다는 조금 완곡한 주장을 통해 제안을 받는 입장에서 결론을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내가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그 정답을 말할 수 있게 열린 결말로 두는 방식이다.
제안을 받는 입장에서도 이런 방식은 자신이 이 디자인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그 제안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기분을 준다. 방향에 따른 선택지가 여러가지니 그 사이 사이에서 상상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추가할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 가장 적합한지 더욱 심도있게 고민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함께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게 먹을 거리가 많은 밥상을 차려 주는 역할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런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에너지가 든다. 다양한 가능성의 길을 리 짐작하고 그려보고 실험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제안의 효과는 상당하다. 디자인의 결과와 성과가 오직 제안자인 디자이너 뿐 아니라 의로인까지 합심한 덕분이라는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일방적으로 제안을 받거나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주고 받는 가운데 더 나은 결과를 찾아 나갈 수 있다는 과정의 프로세스로 느껴진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될 것이다.
사실 하나의 브랜드가 단지 디자인 하나 때문에 기업의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일방적 소통으로 브랜드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그 건 브랜드의 생존 자체가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디자인 자체의 완벽한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과 소통의 중요성 또한 잊지 말고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가야한다.
이렇게 함께 만들어 간다는 느낌은 협업을 하는 파트너 사이에서도 정말 중요하다. 따라서 조금 귀찮고 힘들더라도 왠만하면 그 때 그 때 보고된 내용과 피드백을 공유해야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더 단단하게 쌓아갈 수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잘못된 것들 부족했던 부분들은 의견 교환을 통해 다음 번에는 더 잘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면 된다.
파트너 간에는 금전적인 보상은 중요하다. 하지만 일 자체에서 느끼는 보람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각자가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게하고 더 나아가 내가 이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야한다.
일에 있어서의 가장 큰 보람은 나의 기여도 얼마나 되는지, 우리의 기여도가 얼마나 되는지가 아닐까. 우리로 일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좋은 파트너쉽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언제나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는 마음을 줘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궁금해서 묻기 전에 미리 말해 일의 내용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정서를 나누는 게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이 혼자 일하는 걸 외롭지 않게 한다. 나 혼자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찾아준 의뢰인과도, 나를 도와 애써주는 파트너들과도 함께 하는 일이라는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