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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Apr 22. 2022

나만의 폼과 구질을 가졌는가

[ 1인 디자인 회사 분투기 ]

원조라는 말에는 강한 힘이 있다. 원조 즉석 떡볶이로 유명한 신당동 골목을 처음 들어섰을 때다. 모든 간판마다  원조라고 쓰여있어서 어디가 진짜 원조집인지 지도를 보고도 헷갈릴 정도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기어코 원조라는 곳에 찾아 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진짜 원조 떡볶이 맛은 봐야하니까 말이다. 동네 분식집과는 다르게 각종 사리가 푸짐하게 올라간 떢볶이는 일단 시선을 압도했다. 하지만 원조 중의 원조다운 맛일거라는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원조 아닌 그냥 평범한 집을 선택할  그랬어라고.  


강릉에 가면 꼭 들르는 식당이 있다. 경포호 주변에 짬뽕 순두부로 유명한 곳이다. 이 주변에도 신당동과 마찬가지로 원조라고 하는 집들이 널려있었다. 여기서도 원조에 대한 집착은 버릴 수 없었다. 이왕이면 그래도 원조가 낫겠지라는 생각을 멈출 수없었다. 과연 원조답게 대기줄이 금방 늘어났다. 1시간이 훌쩍 넘게 기다려야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절대 기다리지 않았을테지만 멀리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먹었으면 했다. 순서가 돼서 국물을 한숟갈 떴다. 매콤하면서도 감칠맛 넘치는 맛이 기막혔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두부와 합쳐지니 더 없는 환상의 콜라보다. 이런 느낌이 원조라서 그랬는지, 오랜 기다림 때문이었는지는 좀 헷갈렸다.


어쨌든 두 식당 모두 원조라는 이점이 분명있었다. 그 이유때문에 일단은 내가 기어이 찾아가도록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떢볶이집은 원조라서 더 실망스러웠고, 순두부집은 원조답다는 생각을 더 강화시켜줬다. 둘의 결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처럼 원조라는 아우라에 이끌려 사람들이 많이 찾아갈 거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원조라는 힘은 기업 활동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가 반드시 서비스의 품질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앞으로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기때문이다. 맛이 별로였던 떢볶이집이지만 원조라는 이유로 내가 기어이 그곳을 찾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기본적으로 원조라는 말에는 사람이 끌어 당기는 강력한 힘이 있다.


브랜드 활동에 있어서도 원조가 되는 건 가장 강력한 브랜딩 전략 중 하나다. 최근에는 참 많은 부동산 앱이 나와있다. 하지만 내 인식 속에선 여전히 ‘직방’브랜드가 가장 먼저다. 새롭게 나온 앱들이 서비스 품질이나 UX경험이 더 좋아질 수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직방 아이콘을 터치하게 된다. 펩시콜라나 많은 탄산음료들이 있지만, 코카콜라 또한 습관적으로 주문하게되는 상품이다. 마트 매대에서도 매운 라면의 대표격인 신라면을, 간편 카레의 대표격인 오뚜기 카레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찾게되는 것도 원조라는 인식이 안정감과 믿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최초의 브랜드들이 반드시 두세번째 생긴 브랜드보다 월등한 품질을 가진 건 아닐 거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있으면 어쨌든 뛰어나 보이는 효과가 있다. 더 좋을 거라 짐작하게 된다.


이렇게 고객들이 최초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가장 우수하다고 인식한다고 법칙을 마케팅 용어로 선도자의 법칙이라고 한다. 어떤 브랜드가 최초가 되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가장 처음 다가가게 되고,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아 브랜드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것이다. 더 좋은 브랜드가 되기보다는 가장 처음의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내 브랜드와 내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속해 있는 산업에서 최초가 되거나, 새로운 영역을 처음 개척해 가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은 1등은 크고 오래 기억하지만 2등은 기억 속에서 금방 잊혀진다. 2, 3등까지 기억하기엔 사람들은 기억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이유로 사업자들에게는 고객들의 인식 안에서의 영역에서 어떻게 첫번째로 기억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고객들의 머리 속에 어떻게 하면 최초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하는 법은 뭘지 끊임없이 살피고 있다. 더 나은 서비스보다 더 앞선 서비스를 제공해면 고객들에게 첫번째로 기억되고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인식과 회상률을 높인다. 매출과도 바로 연결된다.


그런데 원조, 최초가 되는 일이 그렇게 쉽다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떤 분야의 원조, 대명사가 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욕심을 조금만 내려 놓고 약간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영역안에서도 하나의 세분화된 한자리를 차지하는 방법이다.


SNS하면 페이스북이 거의 원조격이고 오랜기간 동안 이 카테고리를 점령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스타그램이 나왔다. 같은 SNS지만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이미지 중심의 SNS로써는 최초가 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틱톡이라는 서비스가 나와 10대 20대의 타겟층의 많은 영역을 가져갔다. 영상으로 소통하는 SNS의 최초가 된 것이다. 페이스북이 원조격이었지만 이제는 인스타그램과 틱톡 또한 각각의 영역에서 최초가 됐다. 그렇게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의 영역에서 각자의 원조가 됐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의 키움 히어로즈 신인투수인 노운현 선수의 인터뷰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다. 이 투수는 허리를 무릎 아래까지 숙여 던지는 독특한 투구폼으로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프로에서는 빠르지 않는 100km의 구속이지만, 신인답지 않은 승부와 변칙 투구로 타자들이 쩔쩔메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투수를 언더핸드 또는 잠수함 투수라고 부른다. 그런데  노운현 선수는 이 영역 안에서도 또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선점한 걸로 보일만큼 굉장히 특이한 투구 폼을 가졌다.


자신의 신체능력과 재능을 감안해 이런 투구폼을 개발했다고 하는 노운현 선수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나중에 누군가가 나를 이 쪽에서는 참 잘하는 선수였다고 기억되길 바란다’고.


공의 속도도 압도적이지 않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어쨌든 노운현 선수는 자신만의 영역에서 원조가 됐다. 누가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자신의 장단점을 연구해 본인 힘으로 만든 영역이다. 그렇게 절대적인 비교가 아닌 상대적인 비교에서 유일한 투수됐다.


야구 포지션 중에서도 투수라는 위치는 가장 외로운 자리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마운드 위에 홀로 서서 타자와의 일대일 승부를 치러야내야한다. 이런 투수의 상황이 마치 1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이 빠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잘하는 걸로 나만의 영역에서 최초가 되면 된다. 그럴려면 마운드 위에  있는 나를  멀리 공중에서 봐야 한다.  영역의 상황을 넓게 보고 나만의 승부구를 준비해야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투구폼과 최초의 구질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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