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관찰기] 대학 브랜드 상품들
포켓몬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요즘 동네 편의점과 슈퍼에서는 아주 치열한 눈치 작전이 펼쳐집니다. 편의점 납품 트럭이 들어오기 몇 시간 전부터 번호표를 받았다가 다시 찾으러 가기도 하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하죠. 저에겐 사실 배가 정말 고플 때 삼각김밥을 사는 곳, 예고 없는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사러가는 곳 정도인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풍경이 굉장한 상품 하나로 바뀌고 있습니다. 무슨 진귀한 보물이 일정한 시간에 트럭에 실려 들어오는 특별한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으니까요.
그 보물상자가 들어있는 트럭을 기다리면서 한 시간 이상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냥 멀뚱멀뚱 있기는 그래서 과자나 음료들 사서 먹고 있습니다. 운이 좋아 포켓몬 빵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딸랑 빵 하나만 사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함께 간 어른들은 맥주라도 하나 사서 같이 계산을 합니다. 한산하던 우리 동네 편의점 주변이 요즘 북적북적하는 이유입니다.
저희 집도 자주는 아니지만 금요일에 한번 정도는 그 치열한 전쟁의 한 복판에 참전하는 중입니다. 저번 주에는 운이 좋게 번호표 3번을 받고 포켓몬 빵 하나를 획득할 수 있었는데요. 다행히 1번 번호표를 받은 친구가 나타나지 않는 행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 큰 트럭 보물선에 실려 온 포켓몬빵은 단 2개뿐였으니까요.
그런데 포켓몬빵 옆에 제 눈에 확 띄는 빵이 하나 있었습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되어 몇 번이나 봤던 빵이라서 자꾸 눈에 가더군요. 그 주인공은 바로 연세우유 우유생크림빵입니다. 저는 속이 불편해서 우유와 친하지 않은 편인데요 연세우유라는 존재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 정도면 그만큼 인지도가 있는 상품이겠죠.
그런데 거기서 빵이 왜?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포장에 써진 상품 이름을 보니 바로 납득이 갔습니다. 그냥 빵이 아니라, 우유를 듬뿍 담아 만든 크림빵이었거든요.
연세우유 크림빵은 연세우유 자체 브랜드는 아니고 CU(BGF리테일)에서 '연세우유'라는 브랜드 로열티를 이용해 만든 자체 브랜드(PB)라고 합니다. 한 달 사이에 100만 개 이상이 팔릴 정도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탈편의점 빵이라고 해서 유명 유튜버나 소셜미디에 등에도 자주 소개된다고 합니다. 그 정도이니 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연히 볼만큼 이슈가 됐던 거겠죠. 특별히 광고한 것도 없이 이런 굉장한 히트 상품이 나오는 시대입니다. 아마 거기에는 포켓몬빵을 사러 갔다가 놓치고, 대신 연세우유 크림빵을 들고 오는 아이와 엄마 아빠들이 많은 기여를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빵을 먹어보니 생크림의 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CU 측의 설명처럼 기존의 크림빵처럼 푹신한 느낌의 질감이 아닌 쫀득한 질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질감은 겉을 감싸고 얇은 빵의 식감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습니다.
연세우유 크림빵 패키지 우측 상단, 시선을 사로잡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연세대 마크를 보며 생가했습니다. 저 위치에 과연 다른 대학 마크가 붙는다면 어땠을까? 라구요. 가령 라이벌 대학인 고려대 마크가 붙으면 어떨까? 만약 저 빵이 미국의 어느 동네 작은 편의점에 놓여있고 패키지에는 하버드대 마크가 붙어있다면? 런던의 동네 가게의 빵에 옥스퍼스 마크가 붙어 있다면?이라는 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이들 대학의 컬러가 전통과 학문의 깊이를 표현하는 진홍색이라서 왠지 크림빵과 잘 어울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우유나 크림빵 상품에 이들 마크가 붙지 않고 커피나 와인처럼 맛의 깊이와 숙성의 이미지가 있는 패키지에 붙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굉장히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위 이미지를 보시면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연세우유는 대중들에게 굉장히 친숙한 브랜드입니다. 이렇게 브랜드 인지도가 쌓이기까지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더군요. 1962년 캐나다 선교사들이 젖소 10마리를 신촌 캠퍼스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목장을 운영한 게 연세우유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올해로 벌써 6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1937년 출범한 우리나라 낙농의 역사를 열었던 서울우유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1960년대 등장한 남양유업과 매일유업, 같은 대학 브랜드인 건국대 또한 이 시기에 처음 우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하니 연세우유도 우리나라 낙농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셈입니다. 이런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명맥을 이어 온 우유로 만든 크림빵이라면 일단 품질에 믿음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이유 말고도 우유라는 상품군이 연세대학교라는 브랜드 컬러와 참 잘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일단 우유라는 상품군은 성장기 어린이, 청소년이 타깃에 잘 맞습니다. 대부분 초중고 학생들의 1차 목표를 대입이라 생각한다면 명문 사학을 대표하는 연세대의 브랜드는 학생과 부모들에게 굉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둘째, ‘연세’라는 단어 발음도 우유와 어울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o’은 여린입천장 소리인 동시에 비음이 섞인 굉장히 부드러운 발음을 유도하고, ‘ㅅ’는 새어 나오는 듯하면서도 입안의 근육이 긴장하지 않고 편안한 예사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드럽고 순한 느낌의 발음과도 우유라는 연상은 잘 어울립니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도, 연세가 좀 될 때까지도 내 건강을 책임져 줄 것 같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셋째, 연세대가 가지고 있는 색상 이미지도 빼놓을 수 없죠. 연세 세브란스라는 대형 종합병원의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하얀 백색 가운 위에 교표가 올려진 깔끔한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이런 색상의 아이덴티티는 강력한 연세대만의 상징이 됐습니다. 병원의 깔끔하고 청결한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식품 중에서도 신선도를 생명처럼 여기는 우유와 찰떡같이 맞아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연세대가 가진 일반적인 이미지입니다. 지방 도시에서 대학까지 나온 저는 10대 시절 내내 연고대 농구스타들을 TV에서 자주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그때부터 연세대하면 왠지 부유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연세우유를 먹고 자라서인지 얼굴도 하얗고 세련된 서울 학생이 그려졌습니다. 연대 출신의 유명인들이 많겠지만 저는 김영하 작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작가 스스로도 어려움 없는 집안에서 큰 부침 없이 자란 것이 오히려 다른 창작자들과의 차별점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점은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연세대의 이미지를 한층 강화시켜줬습니다.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제가 연세우유와 연세우유 크림빵을 처음 보고 느끼는 감정은 아마 이런 연세대 브랜드에 대한 저의 기존 인식과 이미지가 많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최근 대학들은 등록금 의존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수익형 사업에 뛰어드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이라는 본분에 소홀하고 이윤 추구를 위한 활동에 힘을 쏟는 데 사회적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잘 알려진 의료업이나 어학교육, 출판업 이 외에도 부동산 임대업, 도소매업, 제조업, 금융업까지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사기업처럼 영리만을 추구했다가는 사회적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우유, 빵, 초콜릿 정도 작은 상품 판매에서 머문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적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1000억 이상의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는 곳은 연세우유와 건국우유 두 대학 정도라고 하니까요.
저는 이런 대학의 이윤 활동을 꼭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런 경제적 활동으로 산학 협력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생 창업자들이 많아지는 환경도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대학 이미지에 잘 맞는 브랜드 상품을 개발해 대학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잘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대학이 상아탑이라는 말처럼 학문적 권위로만 굳건한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져 학구적인 태도만 견지해서는 곤란합니다. 현실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반응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지켜 온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개념의 크림빵을 내놓은 연세우유와 CU의 실험 정신은 환영할만합니다. 이상의 대학 세상과 현실의 편의점 세계를 연결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재밌는 시도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