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디자이너 되기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두가지를 항상 염두해두는 편이다.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아이디어들이 쌓이고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선별되어 아트웍의 완성도가 올라가게 되면 설령 그 방향이 최상의 결과에 살짝 빗나가더라도 그냥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까지 오기까지 썼던 시간과 힘이 아깝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에 닥친다. 그렇게 되면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살을 붙이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게된다. 뭔가 찜찜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노력들이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돌아가는 결단을 내리기는 정말 쉽지 않다.
경험상 이렇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고객사도 느낀다. 아닌 거 같은데 계속 진행하게 되면 프로젝트의 생기가 점점 사라진다. 고사 직전의 나무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허망한 노력처럼 우리 쪽의 기분도 썩 좋지 않게 된다. 목표에 다와가는데도 기대가 안된다. 이런 느낌을 받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대개는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증거다.
이럴 땐 프로젝트라는 바다에 떠 있는 선상에 올라 망원경을 들고 지금까지 흘러온 경로들을 따져봐야한다. 문제가 심각하다면 과감하게 배를 돌려 처음 선착장으로 돌아와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다. 그게 오히려 더 빠른 길일 때가 많다. 아까워서 계속 진행 하다가는 끝은 않나고 계속 80%완료 언저리에서는 맴돌기만 하다 시간만 보내는 경우도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이 프로젝트가 시작했는지', '고객사가 왜 이 프로젝트를 우리에게 맡겼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에 답을 해봐야한다. 진행하다보면 쉽게 잊어 버리는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어야 제안하는 입장에서도 제안을 받는 고객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하다.
설득이 안되는 안들로 억지로 설득 하고 지지부진하게 진도를 나갈 바에야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고 점검해보면서 차근 차근 이유를 들여다 보는 게 좋겠다.
프로젝트에 대해 이미 많이 쌓인 정보와 지식들, 조언들이 어느 정도 머리속에 차면 다 비워내고 다시 채워야한다. 계속애서 채우기만 하다보면 비슷 비슷한 정보들만 찾고 비슷한 정보들에 대한 비중이 점점 늘어간다. 한쪽 정보의 양이 많아지다보면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나 방향도 그 쪽으로만 쏠리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들로 머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기존에 쌓인 걸 계속해서 비워내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올 공간을 확보해야한다.
디자인 방향을 찾기 위한 새로운 생각을 찾기 위해 폴더를 활용하면 좋다. 찾은 자료_1, 찾은 자료_2, 3, 4, 5이런 식으로 새로운 생각이 추가 될 때마다 폴더를 하나씩 만든다. 폴더 이름에 자료들의 특징이 될만한 생각이나 컨셉 키워드가 들어가면 더 좋다. 가령 카페 브랜드를 디자인한다고 할 때 찾은 자료 1_프랜차이즈, 찾은 자료 2_동네 카페, 찾은 자료 3_드립 커피 등으로 구분하면서 자료의 목적이나 개성이 다른 정보들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이렇게 하면 프로젝트 하나를 하는데 찾은 자료 폴더의 개수가 대여섯개가 된다.
폴더에 새로운 자료들을 채워 넣다보면 폴더와 폴더 사이 자료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보일때가 있다. 정보를 비워내고 새롭게 채우듯이 머리도 비워내야 새롭게 채우다보면 이렇게 새로운 연결을 발견할 수 있다. 채워진 자료도 다양하고 양이 많아질수록 이런 뜻밖의 연결이 더 많아진다.
이런 비우기 과정을 프로젝트 제안을 준비하면서 다섯번 하는 것 같다. 프로젝트를 처음 중간 끝의 순서로 한다고 했을 때, 처음 중간 끝 3번 그리고 그 사이 사이 2번 총 5번 정도를 한다. 한두번에 보이지 않던 정답이 5번째에는 대부분 해결된다. 그런 반복 작업과 시간을 써야 비로소 고객사에 제안 할만한 아이디어 에센스가 나오는 듯하다. 만약 5번을 계속해서 채우기만하거나, 한두번의 자료, 생각 찾기로 끝냈다면 설득력 있고 감동을 줄만한 제안을 하기 쉽지 않다.
디자인이 는다는 기분이 예전에는 표현의 스킬이나 감각의 향상때문이었지만 요즘에는 내 생각의 전환과 환기가 얼마나 자유자재로울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조정가능한지로 판단한다.
모든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에서 잘 할 수 없다. 모든 아트웍을 다 완벽하게 잘 해낼 수는 없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태도가 위에서 말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 '다시 비워내고 시작하기'
이 두가지가 아닐까.
좋은 생각은 고정된 게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생각, 내 생각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가 장기적으로 더 좋은 관점을 가진 디자이너, 유연한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디자이너의 수명이 길다는 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