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자동차와 이별한 이야기
제목만 적었을 뿐인데 목구멍이 울렁이고 코끝이 맵고 눈가에 물기가 스민다. 내가 우리 차를 이렇게 좋아했었나? 올해로 13년째 타던 차를 엊그제 팔아 치웠다. 둘째가 태어난 달에 새로 뽑은 자동차는 소렌토, 성은 소요 이름은 렌토다. 파는 과정이 하 수선하여 팔아 치운 느낌이 드는 거다.
나는 SUV를 좋아하지 않는다. 차는 자고로 착 붙는 승차감이 좋아야 하는데 높은 차체에 박진감 넘치는 핸들링이 필요한 SUV는 운전을 하건 동승하건 몸을 붕붕 뜨게 한다. 때는 2010년 6월, 곧 태어날 둘째가 쌍둥이 아들이라 아들 셋을 대비해 더 큰 차가 필요했고 남편의 선호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펄이 들어간 하얀색 SUV를 둘째가 태어나기 며칠 전 계약했다.
렌토는 둘째와 동갑이다. 29주 만에 조산한 후 두 달 넘게 입원해 있다 퇴원하던 날, 아이는 처음 자동차에 탑승했다. 며칠 뒤 셋째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그로부터 1년 뒤 렌토는 병원, 복지관, 치료 센터 등으로 종일 우리 모자를 실어 날랐다. 차를 타고 아들 셋과 시끌벅적한 여행을 다니려던 꿈은 장애아인 아들과 매일 재활 치료를 다녀야 하는 현실이 되어 삶을 내리눌렀다.
하루 종일 여러 군데를 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퇴근 시간과 맞물리면 차는 꼼짝을 안 한다. 온몸이 아파 앉아있기도 힘든데 집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뒤에 있는 어린 아들이 놀랄까 봐 소리 죽여 눈물을 쏟는다. 행여 앞이 안 보일 새라 쉼 없이 손으로 닦아가며 하루의 고단함을 토해낸다. 차에 있는 시간이 괴롭기 그지없다. 누가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 주었으면.
애초에 차에 애정이 없었던 나는 그저 치료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단 한 번도 셋째를 태우지 못한 안타까움과 아들 둘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밑도 끝도 없는 죄책감은 더 정나미가 떨어지게 했다. 반면 둘째는 렌토를 무척 좋아했다. 종종 차한테 말을 걸기도 하고 내가 문이라도 세게 닫을라치면 차가 아프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차를 의인화하는 녀석이 퍽 귀여우면서도 공감을 할 수 없었다.
렌토를 떠나보내던 날, 문을 하나씩 열어보고 덤덤하게 '잘 가' 인사했다. 순간 지난 12년의 시간이 해일처럼 밀려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삶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했던 친구.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내 약함과 무너짐을 묵묵히 목도한 친구. 더 예뻐해 주고 좋아해 줄걸, 이별의 순간에서야 렌토의 존재가 와닿다니! 주책없이 훌쩍이며 손으로 차체를 쓰다듬다 누가 볼 새라 발길을 돌렸다.
렌토를 타고 치료를 다니는 동안 총알택시처럼 아슬아슬하게 다닌 적도 많았는데 단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 하늘이, 아니 셋째가 우리를 보살펴 주었을까? 아직 힘이 좋고 외관도 깔끔한 녀석은 해외로 수출된다고 한다. 새단장을 마치면 배를 타고 먼 나라로 떠나겠지. 폐차를 했다면 더 마음 아팠을 텐데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한다니 마음이 놓인다.
부디 좋은 주인 만나길 바라. 나처럼 차를 막 타는 주인 말고 애지중지 아끼는 주인 만나서 오래 사랑받길 바라. 너를 타는 동안 흘렸던 내 눈물도 내뱉던 한숨도 큰 소리로 부르던 노래도 신나게 추던 춤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길 바라. 20만 km를 다니느라 애썼고 우리 가족을 잘 지켜주어서 고마워. 잘 가, 렌토야!
*브런치에는 일상글 위주로 씁니다. 두뇌계발/자기계발, 글쓰기/책쓰기 관련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체인지U 스쿨]에서 볼 수 있어요. (첫달 구독료 무료 쿠폰 발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