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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l 05. 2021

부지런한 토끼와 행복한 거북이

나는 부지런한 토끼이다. 달리기를 잘할 수밖에 없는 신체 조건을 타고났으나 경주에서 절대 안일해지는 법도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항상 일등을 해야 했고 최고의 기록을 내야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상대가 느림보 거북이라고 해서 도중에 낮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사실 누구와 경주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경주를 할 때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일등을 해야만 잘한 것이고 행복해진다고 말한 사람도 없었다. 한 줄로 세워 놓고 "준비, 출발"을 외치니 경주인 줄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달렸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타고난 두뇌와 신체 조건이 좋은 데다가 열심히 하니 무엇을 하든 잘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기고 누군가보다 잘하는 것은 순간적인 만족을 줄지언정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나를 달리게 한 것일까? 나는 왜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것일까?

앞만 보며 달리던 토끼가 어느 날, 느릿느릿 여유가 넘치는 거북이를 만났다. 전혀 다름에 이끌려 사랑에 빠지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큰 아들 역시 아빠를 닮아 거북이다. 둘째 아들은 성격뿐만 아니라 모든 발달 과정이 느린 진짜 거북이다. 그렇다. 부지런한 토끼가 세 거북이와 한 가족을 이룬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예뻐하지만 키우는 것이 힘들었는데 육아도 잘하기 위해서 무척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낳기 전부터 수많은 책으로 공부를 하고 정리를 해두었다. 첫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몇 권을 들고 갔는데 그걸 본 엄마들이 고시생이냐며 혀를 내둘렀다. 나에겐 그런 게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아무 준비를 안 하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일이었기에 누가 뭐라든 상관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초보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몇 키워본 사람처럼 수월하게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는 낳을 때부터 특별한 과정을 거쳤기에 육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도 모든 것이 새롭고 두려웠다. 아이를 조산하고 장애를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었다. 뇌성마비 장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재활치료에 올인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느림보 거북이를 등에 업고 뛴 격이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발달이 느린 거북이를 키울 때는 부지런한 토끼가 몇 배는 더 힘이 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북이를 업고 뛰어봐야 힘만 들지 거북이가 빨라지진 않으니까. 좀 더 여유롭게 거북이의 속도에 맞춰 걸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그제야 나는 스스로 채찍질하며 무엇을 바라 열심히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앞만 보며 전력투구하는 나의 질주 본능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아마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승부욕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힘이 들더라도 무얼 했다 하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공부를 잘하니까 선생님과 친구들도 나를 좋아하고 인정해주었다. 무엇보다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누군가를 앞서고 이겨야 마음이 놓였다고나 할까.  

물론 학창 시절 이후로 누군가를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매사에 열심인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불혹을 넘긴 나이에 되돌아보니 부지런한 토끼는 참 힘든 삶이다. 달리고 있는 땅의 감촉을 느낄 새도 없고 길가에 핀 꽃을 감상할 여유도 없다. 두둥실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우화 속 토끼처럼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잘 새도 없다. 주위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심지어 내 마음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나에게 이제 그만 게을러질 때도 됐다고 남보다 느리게 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신 우리 집 진짜 거북이를 본받고 싶다. 다른 친구들처럼 마음껏 뛰어놀지 못해도, 엄마 아빠한테 혼이 나거나 친구가 속상하게 해도 금세 웃고 마는 둘째 아들처럼 매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앞만 보며 달리지 않는다. 세 거북이와 속도를 맞추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때론 답답하거나 질주본능이 부채질해도 어쩔 수 없다. 이 느림보 거북이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면 행복한지 몸소 실천하고 있어서 함께 하면 나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거북이 뒤를 따라가는 게으른 토끼로 살고 싶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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