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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l 14. 2021

모자 나무이야기

어덕행덕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오타쿠, 덕후라 한다. 일본어 오타쿠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변형되어 오덕후, 줄여서 덕후로 쓰이고 있는데 덕후가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하는 행동을 덕질이라고 표현한다. 초기에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받아들여졌으나 요즘에 덕질은 취미로, 덕후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인식되기도 한다.

 

"나무님"

서로를 나무님이라 부르며 존중하고 그 단어 하나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덕후 집단, 팬덤이 있다. 바로 소울 트리(soul tree)다. 이 팬덤은 '대장 나무'라 불리는 한 가수의 덕후들인데 둘째 아들과 나는 2016년도부터 소울 트리가 되었다. 소울 트리는 가수 박효신의 팬클럽 이름이자 2004년에 발매된 그의 4집 앨범 타이틀이기도 하다. 영혼(soul)과 나무(tree)의 조합이라니! 이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이름을 달게 된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내가 박효신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지난 이야기에 썼듯이 '야생화'란 노래에 엄청난 위로를 받고나서부터다. 무언가에 빠지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그때 이후로 정말 열심히 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내가 미쳤나?' 싶을 정도로 빠져들었고 모든 공연을 쫓아다니게 되었다. 어릴 적에도 관심조차 없던 연예인을 불혹을 앞둔 나이에 좋아하고 남편과 마찰을 일으킬 정도로 심하게 덕질을 한 것이다.


머리로는 '이 나이에 덕질이라니! 미쳤어?' 하면서도 마음은 어느새 내 가수를 향해 있었다. 알고 보니 박효신은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성실하고 인성이 바르며 팬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큰 데다가 결정적으로 잘 생기고 목소리가 꿀을 바른 듯 매력적이었다. 마치 10대 소녀로 돌아간 듯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그의 노래를 듣고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보니 나와 하루 종일 붙어 있고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둘째 아들도 덩달아 박효신의 팬이 되었다. 겨우 일곱 살 난 아이가 야생화를 비롯하여 부르기 어려운 그의 노래를 외우고 따라 불렀다.

"엄마,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나지?" 하며 눈을 감고 감상을 하는데 처음엔 '잠깐 그러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정말 진심이 느껴져서 어느 날은 공연에 데리고 갔고 공연을 마친 퇴근길에 아이와 함께 기다렸다 인사도 하고 선물도 주었다.  


몇 번 그렇게 했더니 박효신은 아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어느 순간부터 우릴 보면 먼저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 아이의 장애도 알게 되어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고 안아주며 응원도 해주었다. 아들은 화면과 오디오로만 접하던 사람을 직접 만나자 점점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같이 덕질을 하다니! 이보다 더 행복한 덕질은 없을 것이다. 덕후들에게는 같이 덕질을 하는 친구인 '덕친'이 있는데 나에게는 둘째가 덕친이었다. 우리 모자는 소울 트리 사이에서 나름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가수 박효신

그런데 우리 모자의 덕질을 싫어하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이다. 처음에는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빠져 있던 내가 활기를 얻자 "당신을 이렇게 기쁘게 해 주니 효신이한테 정말 고맙네." 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점차 도가 지나친 나를 보며 싫어하는 기색을 비치더니 얼마 안 가 노래도 틀지 말라며 대놓고 싫어하는 것이다. 상대가 여자 가수라면 하지 않았을 질투심도 약간 섞여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말린다고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가수를 마음껏 좋아하겠다는데 남편이 그걸 말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덕행덕, 어차피 덕질할 것 행복하게 덕질하자'는 말이 있다. 박효신 덕질을 시작하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다. 이 늦은 나이에 덕질을 하는 이유는? 바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라이브로 직접 듣고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나누는 모든 것들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위안이 되었다. 미국에서 수술하고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힘들게 재활치료만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거나 다름없는데 그걸 막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던 나는 당당하게 남편한테 맞섰다.

"이것은 좀 유별난 취미이고 내 성격상 마음껏 하고 나면 잠잠해질 테니 너무 막지 마."

라고 여러 번 말했다. 당당한 모습에 남편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결국엔 내 말대로 되었다. 워낙에 활동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처음 2년 간은 미친 듯이 쫓아다녔고 그 이후로 어쩌다 한번 공연을 하니 일상과 덕질 사이에 자연스럽게 균형이 생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편은 나의 유별난 취미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2년 전 이맘때, 콘서트 스탠딩 관람을 위해 공연장에 입장해서 기다리고 있을 때 일이다. 남편한테 전화가 왔는데 자기는 돈을 준다고 해도 무더운 날 사람들과 붙어 서서 공연 관람을 못하겠다는 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언가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거야. 그걸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음껏 즐기고 오셔."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드디어 남편한테 어덕행덕을 인정받은 순간인데 마침 공연장에서 공연 직전에 그 말을 들으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원래도 그렇지만 그날은 평소보다 더 소리 지르고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공연 관람을 하러 갈 때면 며칠 전부터 분주하다. 청소와 집안일을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하고 공연 당일 날엔 반찬 대여섯 가지와 메인 요리까지 해놓고 나왔으니 바쁠 수밖에. 그러면서도 둘째의 재활치료는 모두 다녀왔다. 그렇게까지 하는 날 보고 남편은 15일 동안 8번의 공연을 가는 걸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9년 7월, 박효신 콘서트 공연장 앞에서

아이가 있는 유부녀가 덕질을 할 때는 우선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평소보다 더 잘하면 금상첨화다. 남편들은 대부분 부인이 덕질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알고 보니 우리 남편은 엄청 잘 이해해 준 거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보수적인 남편이라도 아내가 하기 나름이다. 도저히 말릴 수 없도록 자신의 할 일을 똑 부러지게 해 놓고 취미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그리고 주위에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덕질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행위가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운데 어떻게 마음껏 즐길 수 있겠는가? 설령 60~70대가 되어서도 가수나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면 나는 또다시 당당하게 열정적으로 덕질할 것이다.  


내 가수는 2년 전 여름, 20주년 기념 콘서트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그동안 나는 두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 공연에서 이미 8집의 작사, 작곡이 끝났다고 했으니 곧 앨범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만 좀 더 늦어져도 괜찮다. 나는 그가 다시 나올 때까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내 할 일을 다 하고 즐겁게 살고 있으면 된다. 이번에는 어떤 음악으로 무슨 메시지를 줄지, 얼마만큼 성장했을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들도 행복하기만 하다. 그리고 박효신이 다시 돌아오는 날,  그간의 그리움을 마음껏 표출하며 최고의 덕친인 아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덕질할 것이다. 어덕행덕! Be Happy!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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