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장애아를 키운 지 만 11년이 지났다. 요즘에는 10년이 아니라 3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대라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다. 세 번째 책을 쓰면서 지난 11년을 되돌아보니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사건들이 몰아서 닥친 느낌이다. 당시에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지나고 보니 11년이 마치 1년쯤 지난 것처럼 시간은 어느덧 훌쩍 점프해 있었다.
그 사이 30대 초반이던 나는 40대, 정수리 앞부분에 돋아나는 흰머리 때문에 정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10년 단위로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치열하게 공부했던 10대, 대학 생활하며 연애하고 직장을 다닌 20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육아에 매진한 30대 그리고 안정적인 지금의 40대. 공자가 40세에 경험했다는 불혹(不惑). 불혹이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정확히 40세는 아니지만 나도 40대가 되자 불혹의 의미를 깨닫고 체험하게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단연코 30대 시절이다. 뇌교육 강사로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쌍둥이를 출산하고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나의 열정과 재능은 피어나지 못하고 시들어갔다. 뇌에 대해 공부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사람들에게 강의를 통해 알리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둘째를 키우면서부터는 공부도 일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세월은 흘러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도 주위를 밝히던 긍정적인 에너지도 희미해져만 갔다. 덤으로 일에 올인하여 꾸준히 경력을 쌓았으면 분명 대단한 성과들을 거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한 때는 현실에 발이 묶여 발전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몹시도 답답하고 괴로웠다. 같이 강사 활동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저만치 앞서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쓰라린 눈물을 삼킬 때도 부지기수였다. 내 삶은 아직 진행 중이라며 비교하지 말자 다짐해도 어느덧 나의 눈은 꿈을 좇고는 했다.
그러다가 점차 그 생활에 익숙해져 놀랍도록 쉽게 적응을 해버렸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고 매일 치료를 다녔어도 아이가 등교한 시간만큼은 자유시간이었다.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고 이것도 나름 행복한 삶 아니냐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사람은 누구나 안정을 추구한다. 나 역시 힘들었던 생활에 적응되고 안정이 되자 하고 싶은 것들과 꿈을 포기해도 될 것만 같았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던 마음은 책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꿈을 좇는 것으로 완전히 굳어졌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 대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가슴이 뛰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불혹이라 했건만, 세상일 보다는 나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이 꿈과 현실은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갔다.
"아직 아이가 다 자란 게 아니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해"
"아니야! 그 정도 했으면 됐으니까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도 돼"
어떤 날은 '꿈'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그냥 편하게 집안일하며 애들이나 잘 키우면 됐지 왜 사서 고생을 하려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포기야. 그냥 안 하면 되니까! 평생 포기나 하며 살 거야?"
바닥으로 가라앉은 자신감과 새벽 기상으로 지친 몸,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시름할 때면 '현실'이 이기기도 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안 쓰던 글을 쓰고 머리를 쥐어짜는지 모르겠는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자 서서히 현실이 이기는 날이 사라졌다. 그리고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책이 출간되고 작가가 되고 두 번째 책에 이어 세 번째 책을 쓰기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 40대가 된 나는 좋아하는 일로 행복과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해 나가는 중이다. 장애아를 키우면서 고통 속에 보낸 지난 11년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간절함을 남겨 주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아직 더 많이 굴러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간절히 찾고 싶었고 내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했다. 그 답을 확실하게 찾은 지금, 어떤 유혹이나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명을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50이 되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