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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l 09. 2021

원정 수술이라니

미국 SDR 수술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한창 재활치료에 사활을 걸고 있을 때 척추 신경 절제술(SDR)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까지 가야 하고 1억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 데다 장애가 심한 아이들은 받지 못하고 걸을 가능성이 있거나 장애가 경미한 아이들만 받을 수 있는 수술이었다. 뇌성마비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꿈의 수술인 것이다.


"바로 이거야!"   

재활의 한계를 서서히 느끼고 있던 터라 곧바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 어린이 병원에 있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사가 하는 수술이고 당시 3천여 건 이상의 경험이 있었다기에 어느 정도 안심을 했다. 게다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이라서 더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의사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더니 병원 스태프를 연결해주었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서류를 준비하고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여러 동영상을 찍어 보낸 뒤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수술 가능! 그러나 1년 뒤에나 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전에 수술받은 한국 아이들도 1년 넘게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효과가 좋은 수술이기에 그리 오래 기다릴 순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한다지만 분명 예외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스케줄을 잡는 직원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냈다. 혹시나 갑자기 스케줄이 비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으니 바로 불러달라고.  


미국은 일반적으로 일처리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메일을 보내면 한참 후에나 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한 번 메일을 보내고 나서 답이 오기 전에 또 보내고 기다렸다. 몇 번 그렇게 하니 6개월 뒤로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짐작컨대 나처럼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핑계로 수긍하고 기다린다.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조금만 달리 생각하고 노력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는데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해외 케이스 중 이렇게 빨리 스케줄을 잡은 건 처음이라고 한다. 나의 간절함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거였다.




두 달이 넘는 기간을 미국에서 지내야 했기에 당시 4학년인 큰아들, 친정 엄마도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가슴 아프게도 엄마의 첫 해외 행이었다. 딸이 비행기를 태워주긴 했지만 여행이 아닌 수술로 가게 되어 참으로 송구스러웠다. 수술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두 아들과 70대 노모까지 책임져야 했던 나는 비행기에서부터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려 거의 5일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의 브런치 글을 참고하자.(https://brunch.co.kr/@brilife78/51)

 

환자들을 위해 제공되는 숙소인 맥도널 하우스는 세인트루이스 어린이병원 근처로 위치와 시설이 매우 좋았다. 자원 봉사자들이 매일 저녁 식사를 해주었고 생필품도 무료로 제공되었다. 주위에 가볼 관광 명소도 많아서 수술 전후로 많이 돌아다니며 최대한 긴장을 풀고 여행 온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다. 불안해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수술이 잘 될 리가 없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즐겁게 여행하는 기분을 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래야 아이한테도 좋은 기운이 전달되어 경과도 좋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의 수술과 입원 생활은 꽤 만족스러웠고 다른 나라에서 온 가족들과 사귀기도 했다. 가장 다행스러운 점은 아이가 큰 수술을 무사히 견디고 회복이 엄청 잘 됐다는 거다. 척추 신경을 건드리는 수술이라 자칫 잘못하면 평생 못 걷게 되는 위험성이 있었는데 어떤 부작용도 없이 무사히 잘 마치고 경과도 매우 좋았다.


수술하기 전에 아이는 이미 걷을 수 있었기에 한국의 의사, 치료사들은 수술을 적극 만류했었다. 받을 수 있는 이익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그들도 잘 모르고 하는 조언이었고 나에게는 SDR 수술이 재활을 위한 마지막 노력, 종착점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소신대로 밀고 나갔는데 나의 선택이 옳았다. 살면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절대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5년이 지난 지금, 예상과 달리 거액의 투자를 한 수술조차도 재활 치료를 끝내주지는 못했다. 그동안 아이에게는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키가 자라면서 몸이 좌우로 많이 휘청대거나 발목과 무릎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여서 여전히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원정 수술까지 하고 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진인사대천명(䀆人事待天命). 현재 의료 수준에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 이후부터는 하늘의 뜻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중의 하나는 '미련'이다.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와 함께 오는 미련은 마음속에 남아 시시때때로 괴롭힌다. 미련이 남는 이유는 그걸 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데 주위에서 만류한 수술까지 받고 나니 나에게는 그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아이가 평생 재활을 해야 하거나 나중에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게 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하늘의 뜻, 아이의 의지에 맡길 수밖에.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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