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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n 14. 2021

불면증

insomnia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현상, 불면증

어릴 때부터 머리만 대면 몇 초 안에 곯아떨어졌던 나와 가장 잘 어울리지 않던 단어이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시험공부를 위해 국그릇에 커피를 한 사발 마시고도 쿨쿨 자던 잠 순이었다. 그런 내게 식구들은 사약을 마시고도 잠을 잘 잔다며 놀리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무리 힘들거나 걱정거리가 있어도 눕기만 하면 세상 걱정 없이 잠에 빠져 들곤 했다. 우습지만 '나도 밤에 잠을 안 자고 고민 좀 해봤으면' 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그랬던 나에게 어느 날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불쑥 찾아왔다.    


처음 시작은 둘째를 낳고 나서였다. 자려고 누웠는데 한두 시간은 기본이고 몇 시간씩 잠 못 드는 날이 반복되었다. 희한한 건 자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잠을 들 수가 없다는 거다. 뒤척일수록 몸은 피곤해지지만 오히려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마치 나의 뇌가 잠들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달까. 몸과 정신이 분리되어 따로 돌아가고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정처 없이 방황한다. 완전히 깨어나자니 몸이 피곤하고 정신은 잠에 들고 싶지 않으니 결국 몇 시간씩 잠과의 사투를 벌인다.     


이런 현상은 아이들을 보고 온 날이나 병원에서 안 좋은 전화를 받았을 때 심해졌다. 의식은 이제 그만 쉬려는 노력을 하지만 무의식이 그럴 수 없다며 발악하는 듯하다. 무서운 것은 불면증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자려고 누웠을 때 '아 오늘도 시작이구나'하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여지없이 밤을 지새우게 된다.


처음엔 양을 새보았다. 그런데 양이 울타리를 뛰어넘는 장면은 금세 다른 장면으로 바뀌어 버린다. 뇌파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호흡이나 명상을 하며 뇌파의 안정을 유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을 파고드는 잡념은 그것마저 집중할 수 없게 한다.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약했나' 자책하며 이마저도 포기. 지독한 불면증은 의지로 고칠 수 없다는 걸 이때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불면증이 사라질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문제가 해결되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뇌가 '이제 내 할 일은 다 끝났다'며 마음 푹 놓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걱정이 없는 척, 해결된 척해보아야 속지 않는다. 정말로 내가 마음을 다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꿀잠이 가능해진다. 


쌍둥이 중 첫째가 퇴원했을 때, 드디어 두 달 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아이의 존재가 주는 안정감은 최고의 불면증 치료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내의 안 좋은 소식을 들은 날에는 불면증이 다시 고개를 들곤 했다. 두 아이가 모두 건강하게 퇴원을 해야 사라질 문제였으니까.


결국 첫 번째 불면증 손님은 막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사라졌다. 대신 밤낮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불면증이 가고 고장 난 눈물샘이 찾아온 것이다. 큰 시련은 이런 불청객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마음껏 괴로워하고 힘들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평소와 똑같이 생활한다면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해봐야 얼마 가지도 못하고 마음의 병만 깊어질 터.


두 번째로 찾아온 불면증은 더 만만치 않았다. 수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가끔 나타나니 말이다. 막내가 떠나고 둘째는 온갖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검사나 수술을 앞둔 날은 여지없이 불면증이 생겼고 가장 심했을 때는 5년 전, 미국에 가서 척추신경 절제술을 받았을 때다. 무려 5일 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에서 시작된 불면증은 미 국내선을 타고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비행기, 차 렌털 샵, 숙소로까지 이어졌다. 미국은 어딜 가나 서류 작업을 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차를 빌릴 때나 예약해둔 숙소에 들어갈 때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일 정도다. 거의 이틀간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영어를 써가며 차를 빌리고 운전을 해서 숙소까지 가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만 했다. 당시 일곱 살인 둘째와 4학년인 첫째, 70대 노모까지 모시고 혼자 힘으로 안전하게 숙소까지 도착해야 했으니까.


무사히 방으로 들어갔으나 낯선 환경과 심하게 푹신한 침대는 단 한순간도 잠에 빠져들게 해주지 않았다. 아...... 정말이지 너무 힘들어서 제발 잠 좀 자게 해달라고 울면서 얼마나 사정을 했던지. 그전까지는 장거리 여행을 가도 하루 이틀이면 금방 시차 적응을 했던 터라 3일째 못 자는 날에는 수면제를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수면 보조제를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고 머리는 깨질 듯 울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잠을 안재우는 고문이 가장 심한 고문이라는 말이 절로 수긍이 갔다.


잠을 못 잔 지 5일째 되던 날, 수술을 해줄 의사에게 첫 진료를 받았다. 물리치료사에게 평가를 받고 원래 받기로 한 두 개의 수술 중 근육을 늘리는 정형외과 수술은 안 받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듣고 온 그날 밤, 드디어 잠을 잘 수 있었다. 홀로 미국행 준비를 하고 어린 두 아들과 노모를 챙겨 그 먼 거리를 날아 수술해 줄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오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꽤 위험한 수술이라 그만큼 불안했고 한국의 의사, 치료사들의 만류에도 수술을 강행한 터라 부담이 컸었나 보다.


5일 만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몸은 날아갈 듯 가볍고 기분도 마냥 좋았다. 지옥에 갔다가 천국에 온 기분이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둘째는 장장 5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고 미국에서의 병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행히 이후로는 그 정도로 지독한 불면증은 오지 않았다. 3개월간의 치료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검사와 수술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하루 이틀 정도 잠을 못 자고는 했지만.  


둘째를 낳고 얻은 불면증이니 벌써 12년 째다. 다행히 지금은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할 정도라 감사하기만 하다. 다시 떠올려도 그 힘든 시절을 어찌 이겨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 되었는지 이제는 불면증도 거의 사라지고 눈물샘도 가끔씩만 작동하니 이만하면 참 잘 견뎌내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그 시절을 회상하니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어 졌다. 그리고 "곧 이겨낼 거니까 조금만 더 견디자. 좋은 날이 올 거니까 희망을 잃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는 그때, 미래의 나에게 이 텔레파시를 받아서 그렇게도 잘 버텨냈는지 모른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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