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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n 15. 2021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기

특별한 우리 아들

29주 만에 엄마 뱃속에서 꺼내어져

짧디 짧은 11년 인생 동안 

십 수 번의 수술과 수천 번의 치료를 견뎌낸

특별한 아이


매 학년 반에서 가장 키가 작고

반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고

이것저것 도와줘야 하지만

발표와 인사를 잘하고 친한 친구가 많은 

특별한 아이


매우 특별한 우리 아들

다섯 살에 걷기 시작하고

열두 살에도 뽀로로를 즐겨보며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매우 특별한 아이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던 둘째는 그만큼 너무 아픈 손가락이다. 지금껏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점은 바로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거였다. 특히나 지체 장애는 눈에 바로 보이므로 아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속상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부모로서 아이가 잘 걷고 뛰며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건 너무도 당연하니까. 다만 장애아에게 있어 이 바람은 이루기 힘든 소망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욕심을 내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다섯 살이 되도록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닐 때는 걷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고 걷기 시작하자 더 바른 자세로 걷기를 바랐다. 한 단계를 넘어 좋아지면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고 방심하면 이전 단계로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으니 스스로 끝없는 희망 고문을 하는 것이다.


아이를 십 년 정도 키우고 나니 서서히 욕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는 게 '포기'처럼 느껴져서 쉽지가 않았다. 내 사전에 포기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더 잘 걷고 머리도 좋아질 거라는 믿음 하에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치료와 교육에 매진해 왔다. 나는 여전히 뒤뚱거리며 휘적휘적 걷는 아들의 걸음걸이가 마음에 안 들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할 때면 답답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중에 허리와 무릎, 발목이 아플 거라는 염려와 행여나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무시를 당하진 않을지 걱정된다는 핑계가 떠오르곤 했다. 물론 나의 염려와 걱정은 부모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아이의 현재 모습을 사랑하지 못한 채 고치려고 노력만 하다가 일평생을 보낼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아이가 이 정도로 걷고 뛰어다니며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것에 감사하다. 아직 서툴지만 글을 읽고 책도 읽기 시작했으며 시계를 보고 계산을 할 줄 알아서 감사하다. 매일 엄마에게 "우리 귀요미"라고 부르며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하는 애교도 감사하다. 겨우 1.5kg으로 작고 여리게 태어나 이만큼 건강한 것이 기적이고 무엇보다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감사하다.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필요한 욕심과 집착도 내려놓게 된다. 한 손에 움켜쥔 욕심을 하나씩 버리고 다른 한 손에 감사를 줍는 것이다. 감사는 줍는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도처에 널려있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순수한 사랑이 샘솟는다. 아이가 막 태어나면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다. 하지만 점차 커갈수록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바라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게 부모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자녀와의 갈등도 생기는 것이다.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많으며 성취욕이 강해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이루어 내왔던 엄마에게 세상의 속도와 맞지 않는 아이가 왔다. 그런 아이를 인정할 수 없었고 받아들이지 못해 지난 10년을 미친 듯이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왔다. 내가 열심히 달리면 아이도 속도를 낼 거라고 언젠가는 평범한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욕심이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줄 알면서도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앞만 보며 전속력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아직 옆에서 함께 걸어갈 정도로 속도를 늦추진 못했지만 한 발짝 앞에서 이끌어가고 있다. 아이가 크고 시간이 지나면 옆에 서서 걸을 것이고 성인이 되면 뒤에서 바라보며 걸어갈 것이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뒤에 서서 아이가 걸어가는 삶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설령 지금 이 모습 그대로여도 더 나빠진다 해도 좋다. 한 손에 마지막 남은 욕심을 쥐고 있더라도 다른 한 손에 계속해서 감사를 주워 담을 테니 말이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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