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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n 17. 2021

야생화


5년 전 6월, 두 아들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 방청객으로 갈 기회가 있었다. 그날은 두 명의 청취자가 한 달간 노래를 연습해서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튜디오에서 직접 들려주는 코너가 진행되었다. 그중 한 명이 불렀던 노래가 박효신의 '야생화'란 노래이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니가 떠나간 그 길 위에 
이렇게 남아 서 있다


가사 중 한 구절이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맴돌았다. 전에 들었을 때는 이별과 사랑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제목과 이 구절이 쓸쓸한 풍경처럼 마음에 남아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워 놓고 유튜브로 원곡을 들었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년째 아이만을 위해 달리느라 지쳐있는 나를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둘째가 일곱 살이던 당시, 미국에서 수술하고 돌아와 한창 치료에만 몰두하던 시절이다. 약해질까 두려워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한 채 꽁꽁 막아 두기만 했던 둑이 이 노래로 인해 터진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홀린 듯이 이전의 공연 영상들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가수가 야생화를 부를 때마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눈물을 터트리는 거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궁금해서 댓글과 기사를 검색해 보고 힘든 기억을 이 노래로 승화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감정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메말라 가는 땅 위에
온몸이 타들어 가고
내 손끝에 남은 
너의 향기 흩어져 날아가 

멀어져 가는 너의 손을 
붙잡지 못해 아프다 

살아갈 만큼만 미워했던 만큼만 
먼 훗날 너를 데려다 줄 

그 봄이 오면 그날에 
나 피우리라


가사 중 '너' 부분에서 하늘로 간 막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오랫동안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나의 꿈도 떠올랐다. 

내게도 과연 봄이 올까?
봄이 오면 나를 다시 피울 수 있을까?

공연 영상들을 보며 가수를 따라 울고 또 울었다. 강해지기 위해 내 감정일랑 들여다보지도 않고 꽁꽁 싸매두기만 했던 나는 그날 밤늦도록 마음껏 풀어져 '야생화'라는 노래에 푹 젖어들었다. 


이후로 나는 가수 박효신의 열성팬이 되어 집이나 차에서 그의 노래를 계속해서 틀었고 나와 종일 붙어 있던 둘째도 함께 들었다. 일곱 살 난 아이가 거실 바닥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은채 음미하듯이 노래를 감상하곤 했다. 처음엔 '아이가 뭘 안다고 어른들의 언어로 된 노래를 좋아할까?' 싶었다. '그러다가 말겠지'란 생각도 들어서 내버려 뒀는데 모전자전인지, 아들도 엄마 못지않은 팬이 되어 버렸다. 


우리 모자의 박효신 덕질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기로 하고!(사연이 꽤나 길다). 노래 한 곡이 주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동안 어떤 것도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는데 야생화라는 노래는 끝이 없는 마라톤 도중에 만난 생수 한통처럼 메마른 삶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만 해도 봄은 아직 멀게만 느껴졌기에 사연 많은 야생화는 흡사 나와 같았다.


둘째를 낳고 나서 크고 화려한 꽃 대신 이름 모를 풀꽃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속에서 존재감을 뽐내던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꺼린 채 묵묵하게 고된 일을 해나갔다.  마음속에 다른 어떤 것도 들이지 않겠다는 듯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시간은 흘러갔다.


여린 속을 딱딱한 껍질로 애써 막아 놓은들 절로 강해질 리 없다. 시간이 지나고 성숙해지길 기다려야 스스로 자신을 감싸던 껍질을 깨고 그보다 더 강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강한 엄마라는 껍질로 단단히 막아두었던 여린 나는 수년 동안 부딪히고 찢기면서도 성숙해지고 있었나 보다. 마치 아직 얼어있는 땅에 작지만 하얗게 피어난 야생화처럼. 


아직 완연한 봄은 내게 오지 않았다. 지금도 종종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며 아픈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저 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나만 모르게 이미 왔는지도 모르겠다. 입술을 깨물며 참고 견딘 수많은 날들은 그 어떤 매서운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러니 이제 곧

마음 놓고 나 피우리라.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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