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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l 18. 2021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다

'계속 붓다 보면 가득 채울 수 있겠지'

언젠가부터 나는 밑이 깨져 버린 독에 계속해서 물을 붓고 있었다. 처음엔 독이 깨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부었고 얼마 안가 깨졌다는 걸 알았지만 깨진 틈 사이로 새는 물 보다 붓는 물이 더 많으면 가득 찰 것이라 생각해서 더 열심히 물을 부었다. 이런 날 보고 혹자는 '무모하다, 소용없다'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


무엇 하나 제때 해내지 못한 둘째에게는 모든 것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시간과 돈, 노력을 들여 재활 치료를 하고 기본 학습을 시켰지만 실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특히 국어나 수학 공부는 모래성에 건물을 짓는 것처럼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덧셈을 다 깨우쳤다 싶어서 뺄셈을 하면 덧셈을 완전히 잊어버려서 다시 해야 하는 식이다.  


멀쩡한 항아리에 한 번 물이 차면 어디론가 새지 않고 유지가 되는 것처럼 일반 아동은 한 번 글을 떼고 사칙연산을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더 복잡하고 어려운 활용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장애아나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배우고 익혀도 지식이 쌓이지 않고 줄줄 새 나가 버린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장애아에게 지속적으로 학습을 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안 그래도 하기 어려운 공부를 하는데 투자한 노력에 비해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조금 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서로 힘들 바엔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밑 빠진 독이라고 해서 물 붓기를 멈춰 버리면 아예 물이 다 말라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포기할 수 없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킬 때는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절대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를 보내면 교과서가 있고 수행평가도 보게 된다. 시험을 보고 결과가 나오면 부모들은 의례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 마련이다. 나는 4살 터울인 첫째를 키우면서 애초에 둘째가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보통 아이들에게는 쉬운 교과서 내용이 장애아에겐 어렵고 복잡한 것 투성이었다. '혹시나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아이가 해당 학년의 학습을 잘 따라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시켜야 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욕심을 부려 무리한 학습을 시켰다가는 아예 공부를 거부할 수도 있다. 다른 친구들이 세 자릿수 곱셈을 할 때 한 자릿수 덧셈을 해도 괜찮다. 열 줄 이상의 글쓰기를 할 때 겨우 한 줄만 써도 괜찮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아이들과의 격차는 벌어지지만 비교하거나 성급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아이의 속도에 맞춰야 함을 명심하자.        


나는 아이가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학습만 가르친다. 둘째에게 수년 동안 한글을 가르치자 어느 순간 아이가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4학년 때까지 유아들이 보는 동화책을 겨우 읽을 수 있었던 아이가 이제는 학습 만화를 보고 친구가 써준 편지를 느리게나마 혼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문장을 쓰는 것이 서툴고 온통 틀린 글자들을 쓰지만 몇 년 후면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칙연산은 학습지를 가지고 수년 동안 거의 매일 했더니 이제 돈 계산도 하고 3일이 72시간이라는 암산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때의 감격이란!) 그동안 아이를 교육하면서 아무리 오래 노력을 해도 성과가 나지 않아 불가능한 일에 괜한 에너지를 쓰고 있진 않은지 혼란스러웠던 적도 많다. 친구들과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져 이대로 일반 학급에 계속 다니는 것이 많나 하는 고민도 컸다. 하지만 물 한 방울이 큰 바위를 뚫는 심정으로 매일 꾸준히 아이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해 나갔다. 10년이 걸리던 20년이 걸리던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려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다만 물이 마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을 부을 뿐이다. 몇 년 후에 아이가 성인이 되면 어릴 적부터 꾸준히 습관처럼 해오던 운동과 공부를 스스로 할 것이다. 이미 학습지는 아침에 일어나서 스스로 하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것들을 아이는 너무도 잘 해내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처럼 욕심내지 않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아이만의 속도로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해주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끊임없이 붓는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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