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8.오지랖은 부리지 말아야겠다

내가 젊은 꼰대인걸까

by 벨라홍

다른 업계에서 8년차였다면 누군가의 사수가 몇번은 되었을테지만

이 업계는 워낙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경력직만 뽑다 보니 8년차에도 여전히 나는 팀의 막내였다.


그러나 남이 싼 똥을 치우기 위해 투입된 팀에 마케터가 부족했고 나보다 3살 어린, 영업부와 CX팀을 거쳐 마케팅 직무 경험은 1년이 되지 않은 후배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같은 팀에서 일하지만 내가 옆에 끼고 가르쳐야 하는 선후배의 관계는 아니었고 각자 담당하는 제품이 있어 각자의 일을 하면 되는 사이었다.

가끔 팀 단위의 업무가 있을 때 협업하거나, 팀 단위의 세일즈 목표를 수립할 때 같은 암종 환자 패널을 공유하기 때문에 각자의 forecasting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 자주 의논이 필요하긴 했다.

그 어마어마한 똥을 치우는 업무에 내가 담당하는 제품 두개와 후배가 담당하는 제품 한 개가 같이 엮여 있어 함께 똥을 치워야하는 동료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마케팅 경험이 많지 않은 후배가 감당하기에 업무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 아직은 누군가가 정확한 업무 지시를 주고 그걸 착실히 수행해야 하는 경험이 필요한 후배에게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0에서 그려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고 또 본인이 한 계산, 예측, 로직이 회사에 주는 영향이 버거웠을 것이다.

미팅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내 assumption과 logic에 이유를 묻고 토를 달고 끊임 없는 challenge를 해대는 상황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후배는 실수가 잦아졌다.

그리고 팀장은 그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다. 아마도 내가 보지 않았던 곳에서 팀장도 그를 가르치려고 수없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에 꼼꼼함이 조금은 부족했던 후배는 매번 숫자 실수를 해댔다.

모두가 예민한 상황에 미팅때마다 달라지는 숫자는 모두를 불안하게 했다.


팀장은 그 후배로인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더 해야하는지, 그 후배가 얼마나 못미더운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얘기는 후배에게 타인의 입을 통해 들어갔고, 팀장의 '뒷담화'에 화가난 후배 역시 팀장의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로 회사 안의 사람들에게 같은 회사 사람들을 욕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 앞에 와서 다른 사람 험담을 하면 나는 그 사람이 다른이에게 가서도 지금처럼 내 험담을 할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의 욕은 하지 않는다. 결국 내 얼굴에 침뱉기라는 생각 때문이다.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팀장과 후배를 보며 나는 조금은 용기를 내어 후배에게 점심을 먹자고 했다.

밥을 사주고 커피를 한 잔하러 간 자리에서 나는, 요즘 일은 어떤지에 대해 묻다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를 어렵사리 꺼냈다.

"XX님, 근데 제가 사수도 아니고 그냥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지만, 주제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물론 지금 일도 어렵고 팀장님과의 사이도 어렵겠지만, 불만이 있거나 하면 서로 직접 소통하는게 좋을것 같아요. 지금처럼 서로의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하는건 XX님한테도 좋은게 아닌 것 같아요"

후배는 이런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정말 고마워하는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가

"저도 한마디 해드려도 될까요?" 라고 입을 땠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내가 예상한 대화는 아니었기에..

"아~ 네.. 좋아요" (솔직히 말하면 좋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OO님을 궁금해해요. 영업부 사람들이랑 술도 마시고 좀 그러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갑자기 어디선가 뭔가가 울컥했다.

사실 그 후배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제품별 업무가 아닌 팀 단위에서 해야 할 업무들은 내가 하고 있었고, 과중된 업무로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던터라

나는 영업부와 '친해질', '술도 먹고 밥도 먹는' 시간은 사치였다.

'야, 너가 일을 그따위로 하니까 내가 시간을 못내지' 라는 말이 혀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 네 맞아요.. 저도 급한 일 끝나고나면 그렇게 하려고요~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라고 대화를 마쳤다.


나는 정말 그 후배를 생각해서 어렵게 끄집어 낸 이야기를 듣자마자 꺼낸 나를 위한 후배의 한마디에 고마워해야 하는게 맞는거 같긴 한데.. 산더미같이 쌓인 일을 뒤로 하고 팔자 좋게 사람들과 술마시고 밥먹고 친해지는데 시간을 쏟는 그가 왠지 모르게 얄미웠던 것 같다.

누구는 저녁 8, 9시까지 팀장과 남아 일을 하는데, 같이 일하다가도

'오늘 저녁에 친구가 집에 오기로 해서 먼저 가봐야한다'며 5시 반에 미팅에서 먼저 일어나는 후배를 보며

어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말로만 듣던 젊은 꼰대 인걸까?

그 후로 그 후배는 우리 팀을 떠나 상황이 좀 더 수월한 팀으로 이동됐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누군가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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