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9. 외국인 매니저의 장점 활용하기

나는 외국사람과 일할 체질인가..

by 벨라홍

자꾸 싼 똥을 치우는 일이라고 하니, 내가 했던 일이 그렇게 치부되는 것 같아 똥의 규모 1000억을 차용해서

'1000억 프로젝트'라고 쓰겠다.

'1000억 프로젝트'에 나 자신을 갈아 넣던 어느 날 인사팀에서 진행한 Job grade 설명을 듣다 문득 질문이 생겼다.


이 회사는 People manage가 아닌 직원은 A는 부장급, B는 차장급, C는 과장-대리급 이렇게 3 직급으로 나뉘어 있다. (실질적으로 A직급의 직원은 지금까지도 한 명도 없고 B 아니면 C로 나뉘어 있다. 글을 쓰는 지금, 도대체 A직급은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되는 건지 너무나 궁금하고 알 수 없어 답답하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할 때 나는 C직급으로 입사했다. 헤드헌터 왈 B직급은 경력이 총 10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했기에 아쉽지만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인사팀에서 공유한 Job grade 별 기대되는 역량과, 담당하는 업무의 scope을 읽으면서

'아니, 지금 내가 하는 업무는 내 Job grade인 C를 한참 넘어서는 B에 해당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나는 인사팀이 공유한 자료에서 승진과 관련된 부분을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승진을 위해서는 minimum 3년 해당 직급에서 근무를 하며 퍼포먼스를 보여야 하는데, 나는 당시 입사한 지 2년 정도 된 시기였기 때문에, 승진 대상자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준 하단에 작게 '이 기준은 필요시 임원들의 판단에 따라 유동적이다'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동기부여를 위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승진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내 라인 매니저에게 공유했다. (그는 같이 1000억 프로젝트를 하고 있던 팀장이 아니라, 마케터들을 관리하는 나의 people manager이자 필리핀계 스위스인이었다)

그는 평소 나와의 잦은 체크인을 통해서 내가 어떤 career goal을 갖고 있는지, 어떤 프로젝트나 기회를 찾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다른 한국 마케터들과는 다르게 내가 하고 싶고 가고 싶은 방향을 드러내는 것에 적극적이며 목표 지향적인 사람인 것도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내가 하고 있는 업무의 난이도와 복잡성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 왔고, 그는 항상 나에게

"How can I help you?"라며 질문했다.

그날의 면담에서도 그는

"How can I help you?"라고 묻길래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하고 있는 업무의 무게와 난이도가 지금 나의 job grade와 맞지 않는 것 같으며,

이 상황에서는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motivation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 나의 역량에 맞는 job grade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만약 내 라인 매니저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솔직한 나의 생각을 얘기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조금 덜 감정적이고 더 합리적인 접근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거래와 협상에 조금 더 익숙하지 않을까는 생각으로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항간에 이 프로젝트로 인해 금감원 조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아마도 그렇게 되면 나는 내가 싼 똥은 아니지만 그 기간 동안 더 죽어나는 시간을 보내야 할 수 있었기에 나 스스로에게도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에게 내가 정말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승진이 되지 않으면 어떤 이유든 휴직을 하고 싶은 상황이다'라고 얘기했고, 아마도 그는 이를 정말 심각하고 진지한 자신의 '숙제'로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그럼 내가 승진하기 위해 어떤 process를 밟아야 하는지, 누구를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같이 의논했다.

지금까지도 많은 people manager를 만났지만, 정말 '나의 안위', '내가 원하는 것'에 오롯한 관심을 가져 준 상사는 그가 유일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에 대해 언제나 질문했고, 답을 듣고 나면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안테나를 세워 어떤 노력이라도 기울였다.


그는 이제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Biotech을 차려 스위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그와 분기마다 한 번씩 화상으로 미팅을 한다. 그의 안부와 나의 안부, 접점을 찾기 어렵지만 혹시나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8화[8년차]8.오지랖은 부리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