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7. 평생 그 일만 해야 할 수도 있어.

어떤 영역에서 '대체불가능'해져야 하는 것일까

by 벨라홍

회사의 큰 똥을 치우는 과정에서

팀장만큼이나 많은 일을 같이 했던 사람은, 독일인 Finance director였다.

임원이었지만 실무 능력이 탁월하고 스마트해서 복잡한 계약 구조와, logic에 대해

다른 사람은 한 10번을 설명해 줘도 못 알아들었는데 그는 빠르게 이해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새로운 팀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조금 Micro manage를 하는 경향과 실무를 빠삭하게 잘 알다 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이 조금 숨이 막힌다는 평 덕분인지 별명이 'X과장'이었지만

나는 그와 같이 일하는 것이 편했다.


그는 당시 회사에서 임원들 중 유일하게, 회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졌다.

그 자신도 본인이 싼 똥은 아니었지만, 발 한쪽을 빼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독일인 commerical director와 비교했을 때는 훨씬 더 임원다운 모습을 보였다.

도서관처럼 그날 출근해서 내가 앉을자리를 선택해 앉는 구조라 내 자리가 매일 바뀌곤 했는데,

때때로 그는 내가 있는 자리로 찾아와 나의 estimation을 묻기도 했고,

내 logic을 질문하거나 의견을 구하곤 했다.


금감원 조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지만,

회계법인과의 수차례 미팅과 김앤장과의 미팅 등 수많은 내부 회의,

process를 거쳐 어느 정도 일이 일단락되었을 때, 그는 한국을 떠나 다른 지사로 발령받았다.

계약을 settle 한 당사자는 아님에도 계약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finance 팀으로 signal을 파악하고 대안을 먼저 제안하지 못했다는 부분으로 인해

책임감 있게 일을 마무리했던 그였지만 그는 더 좋은 자리로 가진 못했다.


특히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은 들고나가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가 떠나기 전에 용기를 내어 check in을 신청했다.


나는 그와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 본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해야 그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는 현실적인 조언들을 정말 솔직하게 해 줬다.


그리고 그에게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 느꼈던 나에 대한 피드백을 솔직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와 나눴던 이야기 중에 나는 그가 들려준 자신의 형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형은, 독일에서 아주 큰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한 부서에서 같은 일만 20년을 가까이해왔고

그 일을 그만큼 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 사실 자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형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다고 했다.

형이 본인의 업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누가 와도 할 수 있게끔 매뉴얼화했다면

형은 지금 하는 일 말고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형의 이야기를 빗대어 나에게,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의 A부터 Z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 회사에서 나뿐인 상황이,

마치 내가 '대체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 당분간은 좋을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만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이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회식을 하자고 하는 팀원들에게

'나는 여기 친구를 만들려고 온 게 아냐'

라고 말하며 일은 일로 대하고 사람들과 선을 긋고 무뚝뚝한 그가

나에게 형 얘기를 들려주다니 그와 고생을 같이 하며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의 진심 어린 조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대체불가능한 존재'를 꿈꾼다.

지금 팀이, 부서가, 회사가 내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을 거라는 오만한 착각 속에 한껏 부풀려진 존재로 본인을 인식할 때가 있다. 실상은 내가 없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사는 잘 굴러간다.


나의 '대체불가능성'이 특정 과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Problem solving, adaptability와 같이.. 무엇을 해도 잘 해낼 수 있는.. 역량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또 정작 그런 사람들은 회사의 문제가 터졌을 때 해결사로 이리 쓰이고 저이 쓰이다가 소모되는 경우도 있던데...

정말 대체불가능한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려면 어때야 할까?

아니면 '남의 회사'에서 대체불가능한 존재를 꿈꾸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목표 설정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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