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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홍 Oct 24. 2024

[3년차]3.갑질, 그 기저 자격지심에 대하여

갑질에 대한 고찰과 우아한 극복 방법-김천또라이&군산또라이

마케팅 부서로 이동한 이후, 나는 열심히 출장을 다녔다. 

이전에 영업부에서는 나의 직접적인 고객이 내가 담당하는 병원 내 처방권을 가진 의사였다라고 한다면, 마케터가 된 이후 나의 고객은 영업소 소장님을 포함한 영업부 직원들(내부 고객)과 그들이 담당하는 지역의 병원의 의사들(외부 고객)으로 늘어났다. 

당시 회사의 영업부 조직 구조상, 상급종합병원은 다른 부서가, 나와 함께 일하는 영업부는 그 이하 병원을 전체 cover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target에서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병원은 대부분 2차병원 (준 종합병원, 종합병원) 혹은 지역의 의료원이었다. 


내가 담당한 제품은 이미 특허가 만료되어 시장에 50개가 넘는 generic와 경쟁하는 오리지널 제품이었다. 시장의 자연 성장률은 5-6%를 보이고 있었으며 결국 정해진 파이를 서로 땅따먹기하듯 경쟁해야 하는 치열한 시장이었지만 오리지널 제품 자체의 규모가 600억대이고 전체 시장이 1000억대였으니, 회사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이었다. 다만 출시한 지 20년이 되어 가는 약이었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은 언제나 마땅한 call 거리를 짜내는 것이 항상 고역이었다. 


그런 영업부 직원들에게 있어 '서울에서 인사드리러 온 새로운 마케팅, 새로운 PM(Product Manager)'는 존재 자체로 좋은 call(영업 담당자가 고객을 만나는 것을 call이라고 부른다) 거리였다. 만나서 같이 면담을 할 일정을 잡기 위한 대화, 같이 만나는 시간, 그 이후 follow up 이렇게 3개의 call은 뽑아 낼 수 있는. 

게다가 열의가 넘치는 나는 더더군다나 어디든 불러주면 간다고 했었으니, 왜 마다하겠는가? 

나는 종합병원과는 다른 양상의 개원가 시장을 빠르게 이해하고 싶었고, 그리고 50명 가까이 되는 영업 조직과 빠르게 친밀해지고 싶었고 일단 발로 뛰면 더 파악이 빠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전국을 다녔다. 

그리고 영업부 소속일 때 마주했던 또라이와는 또 새로운 느낌의 또라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또라이 두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김천 또라이 : 

아주 날카롭고 예민하고 한 성격 하게 생겼다. 

태어나서 김천이라는 동네는 그 때 처음 가봤다. 영업부 소장과 담당자, 나, 그리고 고객A(그 지역 의료원 과장)과 같이 복지리를 먹는 자리에서 기억에 남는 반찬은 맨밥뿐이었다. 

앉자마자 본인과 나 사이의 계급 가르기 비슷한 내용의 대화를 던진다. 이미 내성이 많이 쌓인 평범한 수준인지라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넘겼다. 

'훗 이정도야 뭐 개가 짖네' 라고 생각하며...


내가 온 목적은 우리 제품의 매출 증진에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를 담당하는 제품으로 돌렸다. 

그러자 갑자기, 

"XX씨, 오후 6시에 해가 떠 있어요 지고 있어요?" 라고 물었다. 

'이 놈이 점심 12시에 웬 저녁 6시 타령이지?'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눈치를 깠다. 

이미 특허가 풀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 놓인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해가 지는 6시를 말한다?  지는 해에 내 제품을 비유하면서 어딘가 꼽주려는 것이다. 

'이놈아 그래도 내가 영업 2년은 구르고 온 사람이다' 싶었고 왠지 그 사람의 말에 당황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받아쳤다. 

 

"과장님, 요즘은 저녁6시에도 해가 떠 있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나올 지 몰랐던 것일까? 본인의 공격에 흔들림 없는 나를 보더니 


'제품 B는 지는 해다' 라며 대놓고 꼽을 준다. 

여기까지도 생글생글 웃으며 버텼다. 정말 괜찮아서 웃은 것은 아니고, 내가 얼굴을 붉혀봤자 결국 나에게 이득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웃었다. 하지만 속은 부끼고 마주 앉은 사람의 면상을 보고 있자니 입맛이 똑 떨어져 부글부글 끓고 있는 복지리는 내버려 두고 맨밥만 퍼 먹었다.  


함께 있던 소장, 영업 담당자는 이러한 대화가 익숙한 것인지 혹은 비수처럼 꽂히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본인들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지 혹은 새로 마케팅을 맡은 나에 대한 무언의 신고식이었던 것인지 3일은 굶은 사람들처럼 밥만 먹어댔다.

 

지랄 맞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각오하고 왔지만, 막상 마주하니 정말 쉽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대뜸. 

"제가 말이 심했나.. 상처 받은건 아니죠? 오해하지 말아요 나도 딸 가진 아빤데"

아니 여기서 아빠가 왜 나오나. 갑자기 울컥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른다. 

급히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가라앉힌 마음을 부여잡는다.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지 않지만, 

'꼭 당신의 딸 자식이 너와 똑같은, 아니 너보다 더 한 사람을 만나 그 세치 혀로 남을 괴롭혔던 곱절로 고통받을 것이다.' 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또라이가 사라지고 담당자 선배 차에 타는 순간 나는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아니 제가 울고 싶은게 아니고 진짜 눈물이 왜나죠..?" 라며 당황하셨을 선배님께 얘기했지만 조용히 차분한 노래를 틀어주며 나를 달랬다. 


김천 또라이는 말 끝마다 본인이 어떤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강조했다. 김천 의료원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본인의 기준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 말 끝마다 느껴졌다. 현재 나에 대해 만족하지 못 할 때, 못난 사람은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집착하고 머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자존감을 상대를 깎아 내리며 회복하는 못된 성향이 합쳐진 김천 또라이는 어떻게 보면 불쌍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모습을 반추삼아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앞으로 더 나가기 위한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는데에 내 에너지를 쏟을 것을 다짐했다. 

자존감은 타인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회복하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그리고 나는 김천 또라이에게 그날, 문자를 남겼다. 

당황해서 찬물을 들이키는 나약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다. 

"과장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고견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2.군산 또라이

김천 또라이를 겪어내고 한층 단단해진 나는, 영업부에서 또라이 1, 2위로 김천 또라이와 박빙을 겨루고 있는 군산 또라이를 만나러 출장길에 나섰다. 


태어나서 군산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지난 번 김천은 같이 다녔던 영업부 직원이 국내 제약사에서 이직하신 경력있는 사람이라 노련한 구석이 있었지만(그게 갓 마케팅이 된 PM을 재물 삼아 call 거리를 채우는 것일지라도) 군산을 담당하는 영업부 직원은 나보다 후배인 1년차 신입이었다. 

해당 영업소에서 또라이로 유명해서 기존 직원 중 아무도 이 사람을 담당하고 싶지 않아 신입 영업 직원이 희생양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직원을 많이 도와주고 싶었다. 닳고 닳은, 본인의 영업 노하우가 있고 곤조가 있는 영업부 직원들을 구슬리기는 어렵지만, 패기있고 젊고 욕심있는데 아직 본인의 스타일이 잡히지 않은 영업부 직원들은 함께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며 으쌰으쌰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마음에 갑옷을 챙겨 입고,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 또라이와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 사람은, 나는 서울에서 온 '여자' 마케팅 PM이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고 조금 어려워했지만, 담당 직원에게는 다소 막무가내였다. 

신입 직원이 저녁자리가 시작하기 전, 나에게 언질을 주었다. 

"PM님은, 다음 날 아침 중요한 회의가 있어 오늘 밤 기차로 올라가셔야 한다고 미리 얘기하시고, 늦어도 10시 반에는 일어나세요.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함께 있어주고 싶었지만, 신입 직원의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후배지만, 나이는 나보다 많았고 나를 배려해줘서 하는 얘기가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영업부 직원의 호칭은 새끼 였다. 본인은 많이 마시지도 않으면서 직원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왜 안마시는지 강권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사람을 일주일에 2, 3번은 만나고 있다고 하니 나는 그 직원이 너무 안쓰럽고 애처로워졌다. 


사실 그 자리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안된다. 뭐랄까. 학교 폭력의 방관자가 된 기분이랄까. 

내 눈 앞에서 자행되는 갑질을 저지할 용기가 없었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자리가 마무리 되길 바라며 이제 기차를 타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는 기차를 타러 가고, 고객은 담당자에게 2차를 가자고 한다. 


이미 술에 하얗게 질린 담당자가

"속이 너무 안좋습니다" 라며 거절의 의미를 전하자 

"응 토하고 다시 마시면 돼" 라며, 등을 두드린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렇게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와버렸다. 


군산 또라이와의 대화의 80%는 자기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 자랑이 본인이 군산에서 얼마나 좋은 아파트에 사는지,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다 판사 변호사 의사라느니 하는 얘기였다. 

정말 딱 그 수준이었다. 뭐랄까 좀 없어보였다. 

정말 잘난 사람은 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10년을 일을 하면서 서서히 깨달은 부분이지만, 그 당시에도 

'이 사람은 자랑할 것이 저것 뿐이구나. 정말 알량한 본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저런 것들을 자랑이라고 얘기하는 구나. 그리고 그 자랑을 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본인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영업부 담당자들 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 또라이의 담당자는 어찌보면, 영업 담당자라기 보다는, 군산 또라이의 자존심 지킴이 ?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별 같잖은 자랑에 맞장구 치고 들어주면서, 자존심을 지켜주는 댓가로 담당자는 실적을 쌓는...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누군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본인의 자존감을 내려 놓게 되는 상황에 놓인 담당자에 대한 안쓰러움과 

해결해 줄 수 없는 나의 상황,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저 방법이 정말 잘 통한다면 그가 이겨낼 만큼 강인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발견하고 느낀 죄책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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