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얼룩으로 점철된 런던탑(Tower of London) 앞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반에서 미로 찾기 게임이 유행했다. 노트 맨 뒷장 모눈지를 찢어 미로를 그리고, 누구의 것이 난해한지 비교하는 놀이였다. 영화 '인셉션'에서 꿈속 도시를 설계하는 것과 같았으나 우리가 10년은 앞선 것이었다. 치밀한 설계의 관건은 단순히 여러 갈래의 개미굴을 파는 게 아니라, 한번 길을 잃으면 본래의 시작점을 찾는 것조차 어려운 개미지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성 이론도 블랙홀도 잘 모르던 나이에, 사막 같은 직사각형 위 무한대의 우주를 세우는 법을 터득했다.
어렴풋한 우주는 런던탑(Tower of London)에서 한번 더 마주쳤다. 타워브리지(Tower Bridge)에 가기 위해 London Bridge 역에 내린 아침이었다. 행선지 방향으로 걷다 보면 런던탑이 보였는데, 피로 얼룩진 역사적인 배경과 연관 짓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오히려 '동화 속의 성 같은 외관'이라는 안내책의 설명을 지우고, '지방 영주의 색이 바랜 성'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법했다. 웅장하진 않으나, 낭비 없이 간결한 북유럽풍 가구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 멀리 선 낮게 보이던 성곽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콩나무처럼 자라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네 꼭짓점에 솟은 망루 머리만 제외하면 내부가 보이질 않아, 은밀히 참수가 거행되어도 모를 정도였다. 런던탑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내밀하게 감추고 있는 듯 느껴졌다.
나는 성곽의 모양과 선의 이동에 주목했다. 성곽은 병풍처럼 중앙을 여러 겹으로 둘러쌌는데, 감상하는 위치에 따라 다른 공간이 연출되었다. 마치 기하학 패턴을 나열할수록, 본래의 모습보다 과장되고 동시에 복잡해지는 것과 같았다. 결과적으로 런던탑은 외부의 적을 차단하기 위한 요새라기보다는,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도록 설계된 미로처럼 서늘함을 준다.
탑의 첩첩이 둘러싸인 성곽이 실제로는 피로 얼룩진 역사임을 보여주듯이, 무한대의 시간을 떠도는 영혼들이 아른거렸다. 새파란 달빛은 쇠창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려 어린 엘리자베스 1세의 고요한 밤마저 구속하고, 여전히 목을 잃은 영혼들은 개미처럼 허우적대고 있었다. 빠져나오지 못한 가여운 것들은 봄이 되면 붉은 양귀비를 피눈물처럼 흘리고 있으며, 철 냄새나는 자리엔 벌도 나비도 내려앉을 생각 않는다.
본 글은 2016년 1월의 여행기로, 발행일과는 시간과 계절 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글과 함께한 음악♪ (가수-음악)
* 심규선(Lucia) - 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