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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음 Jul 31. 2016

소거되지 않은 새벽

고통에 다른 수식어는 없다


 쉽사리 운운했던 말들이 나를 조롱하는 밤. 이를테면 고초, 고통, 상흔이라는 엇비슷한 말들이…….


 설핏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아팠다. 입방으로 된 방에 괴어 있던 누거운 공기가, 기억이, 상념이 나를 짓누르곤 빠져나갔다. 꼬박 닷새째 내리 이어지는 중이었다. 내가 속절없이 허물어진 것은. 사랑니를 발치하고 생긴 통증은.


 밤새 어깻죽지가 옴죽거리면서 활시위처럼 절로 당겨지고, 등줄기부터 엉치뼈까지 뻣뻣해졌다. 등겨를 채운 베개를 등에 대거나, 혹은 서늘한 방바닥에 누워 지압해 보기도 했다. 갓 태어난 짐승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등살을 팽팽하게 당겨보기도, 반대로도 바꾸었다. 그러나 모두 여의치 않았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칼만이 혼절했던 내 의식을 고스란히 증언했다. 결국 동그마니 앉은 채 엄지손가락으로 척추를 지그시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인체의 뼈마디가 206개라는 사실을 쓸데없이 떠올리면서. 또는 천장의 섬세한 무늬가 괘사스레 출렁인다고 착란을 일으키면서. 어둠 속에선 선풍기만 미적지근하고 답답한 바람을 일으키며 헛돌고 있었다. 이윽고 허무한 밤을 소거하는 쓰레기 수거차의 두둑한 엔진음이 들렸다. 텅 빈 골목엔 금세 각종 소리가 휘돌았다. 짝을 부르는 멧비둘기, 배달 오토바이, 그리고 툭하고 무심히 던져지는 조간신문 등. 이제 응고되었던 어둠의 밀도 또한 가뿐해질 터이다. 나는 애써 인상 쓰지 않으려 하면서 녹난 몸을 일으켰다. 어둑시근한 그림자를 더듬어 진통제를 찾았다. '식후 30분 후'라고 적혀 있지만, 글귀를 비웃듯 며칠째 하루 한끼만 겨우 먹고 있었다. 나는 몇 알을 입안에 털어 넣고, 미지근한 보리차를 떠밀듯 간신히 넘겼다. 얕은 신음을 흘리며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곤 내게 정차했다가 떠난 수많은 상흔을 떠올렸다. 봉합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 무엇도 어금니께를 무두질하듯 짓이기는 통증에 견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고통이 사그라진 뒤에 써내려간, 고통에 대한 글은 죄다 허식(虛式)이었을지 모른다. 단단히 잘못 알았거나, 아니면 만만히 여겼기 때문이리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이닥쳐선 나를, 그리고 그간의 내 글을 비웃었다. 표층(表層)을 걷어내고 고통의 본질을 마주했을 땐, 다른 생각을 하거나 감상적일 틈이 없었다. 단지 ‘아프다’는 감각만 또렷해질 뿐이었다. 채찍질 당한 정신이 유순해지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이때의 마음은 철저히 협소하고도 이기적이어서, 자기보다 나약해 보이는 무언가를 찾아 하대하려 들었다. 고통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잠시 눈을 감아 볼 즈음. 도리깨로 잡곡을 털어내듯, 잇몸 안쪽부터 뇌수 깊숙한 곳까지 따끔거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네모난 창문 틈새로 파고드는 미명(微明) 한 조각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나의 새벽은 소거되지도 않았는데, 새날은 이미 움트고 있었다.


* 사진정보: 남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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