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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더 브릴리언트
Nov 29. 2024
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2학기 재학 중입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즉, 방송대생입니다.
14년 전에 학부를 졸업했고, 로스쿨을 졸업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전 지금 다시 학부생입니다.
저는 방송대를 왜 다니고 있을까요? 회사에서는 두 개 팀의 팀장이고,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빠이고, 그것 말고도 저한테는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예를 들어, 콘솔 게임, 운동 등)이 널렸는데 말이죠.
사실 처음 방송대 입학은 굉장히 실무적인 목적이었습니다. 회사 법무팀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는데, 보아하니 이번에 입사한 회사에서 팀장 직급 그 위로 올라가려면 아무래도 재무 관련 지식을 쌓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재무나 회계 관련 소소한 자격증을 딸까, 그냥 개인 공부를 할까, 아니면 미친 척하고 MBA?"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불현듯 방송대 생각이 났습니다. "2년 정도 에너지를 쏟으면 재무와 회계 실력도 좋아지고, 학사 학위도 하나 생기고, 괜찮겠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자격증보다는 학위가 더 동기부여가 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방송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듣다 보니 생각보다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바쁘게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가 잠든 후에 아내와 잠깐 대화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었습니다. 회사 출퇴근 하는 동안 차와 스마트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하고 방송대 강의를 들어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려고 생각도 했습니다. 자퇴할까, 말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송대 포기 한다고 그 시간에 내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고,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2학기 등록을 했습니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게 정말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 도전 과정은 한 편으로 제법 즐겁기도 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고, 교과서를 신청하고, 과제를 하고, 출석수업을 하고, 일련의 과정이 저를 건전하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방송대라는 긍정적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서, 커리큘럼을 따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아간다는 게 삶에 어떤 잔잔한 리듬감을 새롭게 주었고, 그러한 리듬감이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남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템포가 일상에 부여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건강이 허락된다면, 죽기 직전까지 방송대 대학생이고 싶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은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국문학부터 영문학, 일본학, 불문학까지,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장학금. 10년 차 전문직에게도 어쨌든 장학금을 주는 이 시스템. 한 학기 35만 원 남짓한 장학금이 큰돈은 아니었고, 또 장학금 신청과정이 제법 복잡했지만, 결국 통장에 장학금이 입금된 걸 확인했을 때는 사실 꽤 기분 좋았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나니, 한 학기에 10~15만 원 정도의 교재 비용만 내고 방송대 생활을 한 셈인데, 이 생활이 내게 준 일상의 건전성을 생각하면, 정말 이 방송대 시스템에 대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데, 4년제 학사까지 준다니. 사실 이 학사 자격증이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40대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건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남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주변에 방송대 등록을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습니다. 방송대 수업까지 듣기에는 다들 일상이 너무 분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이 강한 분들, 그리고 이미 무척 성실하신 분들에게는 방송대를 권합니다. 생각보다 즐겁다고, 생각보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큰 욕심 내지 않고 성실하게만 따라간다면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