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우리를 만나다: 스페인 세고비아에서

아내와 함께 한 유럽 여행

부부 사이에 취미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은 점들이 참 많습니다.


서로를 좀 더 깊게 알아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같이 경험한 것들을 나누며,

조금 더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아내와 저는 지금까지

유럽 여행을 2번 했습니다.


한 번은 결혼을 1년 6개월 정도 앞두고,

한 번은 결혼 6개월 후에.


첫 번째 여행에서는 랑스, 이탈리아를 둘러보았고,

두 번째에서는 여기에 스페인을 더했습니다.


저는 여행의 하루짜임을

꽤 빡빡하게 채우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니다 보면

미리 내다보지 못한 일들이 제법 발생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들은,

그와 같이 우리가 갈피를 세우지 못한 그때에

그려집니다.


아내와 저는 스페인 세고비아라는

어느 작은 도시에 방문했습니다.


그 도시에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멋진 수도교와

무척 아름다운 성(알카자르)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내와 저를 사로잡은 것은

세고비아 시내에서 우연히 마주한

어느 축제였습니다.


그 축제는 매년 4월 말에 있는 책의 축제였는데,

시내 중심의 광장에서는 다양한 부스들이

마련되어 있었고,

또 한 편에서는 중년의 셰프 여러 명이

커다란 솥에서 빠에야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토마토 통조림을 통째로 솥에 넣는 걸 보니

무조건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려면 표를 사야 하는 것 같아서

어느 부스에 찾아가서

어떻게 표를 사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부스에 앉아 있던 어느 스페인 아주머니는

한국사람인 저를 보고

꽤나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로 풀어 알려주기보다는,

손수 저를 표를 살 수 있는 줄로 이끌었습니다.


한 사람 당 3유로를 내고 표를 2장 샀습니다.

표를 내보이니 솥에서 빠에야를 퍼서

하얀 일회용 접시에 덜어 줍니다.

빵 한 조각과 와인도 한 잔 줍니다.

광장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아내와 함께 빠에야와 와인을 먹습니다.


짐작한 것처럼 훌륭한 맛입니다.

다른 도시에서 비싼 돈을 주고 먹었던 빠에야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가성비 때문일까요,

어느 때보다 화창했던 날씨 때문일까요,

친절했던 스페인 사람들 때문일까요.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아내와 나누어도,

아내 역시 세고비아에서의 추억이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기대하지 않았던 낯선 만남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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