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개인적인 컬렉션'은 내가 평생을 두고 목표한 미술관 일주 프로젝트이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모든 작품을 실물로 감상하는 것. 37점의 작품이 퍼져 있는 각국의 미술관을 일일이 방문하여 나만의 컬렉션으로 갈무리하는 것이다.
시작은 십 년 전 네덜란드의 시골마을 델프트에서였다. 내셔널 갤러리의 문지방이 닳도록 쏘다녔던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귀국을 며칠 안 남긴 어느 날, 런던 밖을 한 군데 여행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갈지를 고르던 중 여느 때처럼 내셔널 갤러리에 출석했다가 베르메르의 작품 앞에서 불현듯 결심이 섰다.
'내일 '델프트 풍경'을 보러 네덜란드에 가야겠다.'
고등학생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였고, 그의 작품 중 '델프트 풍경'을 가장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나이였다. 더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따지지 않는 나이가 되고선 베르메르 말고도 좋아하는 화가가 여럿 될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돌연 베르메르에의 첫사랑을 회복하려 네덜란드로 떠난 것이다.
'델프트 풍경'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에 있었다. 헤이그역에 내려 미술관까지 단숨에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바람이 꽤 매서워 살을 에듯하였음에도 언 땅을 깨부수듯 박차를 가해 내달렸다. 미술관 외벽이 아른거리며 시야에 들어올 쯤엔 폐가 터질 듯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미술관의 문은 철옹성처럼 굳게 잠겨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이제는 폐보단 심장이 먼저 터질 것 같았다. 심장 박동만치 쿵쾅거리며 출입문을 대차게 두드렸다. 불청객 모양새로 할로, 할로, 를 외치는 나의 목소리가 외마디 비명처럼 울렸는지, 보다 못한 길 건너의 청소부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건넨 말.
"오늘은 미술관이 쉬는 날이니 내일 오세요."
안 돼. 다음 날 나는 런던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3일 후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실망감과 허탈감은 스스로를 향한 원망이 되었다가, 또 억울함이 되었다가 끝내 눈물이 되었다. 미술관 벤치에 앉아 검푸른 호수에 한가로이 떠다니는 오리들을 보며 한참을 울었다. 헤이그의 겨울은 런던의 겨울보다 추웠다. 시린 눈물이 고드름 되어 내 마음도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눈물 한 바가지 내리쏟고 나니 원망도 같이 쏟기었던지 어느덧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네덜란드로 떠날 때 다음날 출발하는 저가 항공과 낡은 호스텔을 단박에 예약하는 것이 여행 준비의 전부였으므로, 미술관의 스케줄을 찬찬하게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잘 달랜 내 마음이 호수만큼 잔잔해지니 '델프트 풍경' 작품 말고, 진짜 델프트 풍경을 보러 가면 되겠다는 참신한 발상이 떠올랐다. 그때는 일생에서 나 자신이 천재가 아닐까 싶었던 몇 안 되는 희귀한 순간 중에 하나다.
나는 단걸음에 기차를 타고 델프트로 향했다. 베르메르의 그림자를 좇듯 델프트 구석구석을 거닐며 이 거리가 베르메르가 밟은 길이라 생각하니 타임워프라도 하듯 잠시만에 수백 년을 통과한 기분이 들었다. 21세기의 델프트 풍경은 그림으로 박제된 17세기의 풍경과 색감이 많이 닮아있었다. 성당 꼭대기에서 델프트 시가지를 내려다보았을 때, 내가 이 풍경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순간의 직감은 시간으로 증명되었다. 십 년이 흐른 지금도 델프트는 나에게 추억해보면 눈물겹기까지 한 기억이 되었다.
지금도 델프트를 다녀온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현실에는 아름다움이 많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인지, 내게 아름다웠던 기억의 대부분은 꿈꾼 듯이 남아있다. 그리하여 델프트가 화폭으로만 남아있고, 지도 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것만 같다. 베르메르 또한 일기나 편지 등 기록을 일절 남기지 않아 유령처럼 후대에 물음표만 남긴 화가가 되었듯 말이다.
나는 델프트의 추억이 허깨비로 떠돌지 않게 하기 위해, 아름다운 기억을 현실에 잘 안착시키기 위해 베르메르의 발자취를 본격적으로 더듬어보겠다 결심하였다. 얼마큼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베르메르의 작품 모두를 직접 찾아가 마주하겠다 마음먹었다. 출발점이 도착점이 되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델프트 풍경'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의 전 생애에 걸친 프로젝트는 '델프트 풍경' 그림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 십 년 동안 '이렇게 개인적인 컬렉션'을 얼마큼 달성했느냐면, 올림픽 주기를 간신히 따라잡을 수준으로 엉금엉금 찾아다녔을 뿐이다. 시작부터 짐작한 대로 과연 컬렉션을 진척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 베르메르의 작품을 마주하였을 때 베르메르는 나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또 나의 미래를 예견하는 화가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도 베르메르의 자취를 부지런히 추적할 것이므로 더디게나마 나의 컬렉션은 반드시 완성되리라 믿는다. 믿음이 현실이 되는 날, 헛걸음으로 시작한 컬렉션은 다시금 같은 자리에서 온전하게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