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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Jul 12. 2020

편  견

   바람이 듣는다



토요일 오후, 밀린 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10여분 남짓 좁은 골목과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봄이 다 지나갈 동안 가보지 못했던 공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눈에 들어온 익숙한 정경으로 마음이 들떠서 마지막 녹색 신호등이 켜지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본격적인 초록이 시작된 공원은 푸르른 나무들이 청년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어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조각가들이 빚어낸 작품들은 시간의 풍상 속에 깊이를 더해가고, 핏줄처럼 이리저리 뻗어있는 길들은 가족단위 자전거족들과 관광용 꼬마열차 덕분에 가득 차 있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오늘 나의 목적은 경치 좋은 카페에 앉아서 한 두 쳅터의 글을 읽고 능선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다가 해가 뉘 엿 뉘 엿 해질 때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원 내에 있는 미술관 옆, 직사각 모양의 커피숍은 좁은 왼쪽 입구에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카운터와 케이크 등을 보관하는 쇼케이스를 진열해 두고 있었다. 구조 때문인지 사람이 많고 복잡해 보여서 다른 곳을 찾아볼까 잠시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한 커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재빨리 그쪽으로 움직였다. 역시 커플이 앉아 있던 자리는 진리다. 얼떨결에 통유리 너머로 공원 풍경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자리는 분명히 커피숍 명당자리 끝판왕이 아닌가.  머지않아 사람들은 커피를 사들고 공원으로 쏟아져 나갈 것이다. 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주문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맨 뒤에 섰다.  



   

뜨겁고 진한 아메리카노는 쓴맛이 목으로 넘어갈 때까지 코끝을 향기롭게 자극했다.  책을 아무렇게나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로 태초의 소리인 "옴"처럼 더 이상 편안할 수 없는 상태로 커피와 풍경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소리의 방향을 쫒아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옆 테이블 손님 셋이 눈에 들어왔다.

풍경을 등지고 앉은 중년의 여자, 그 맞은편에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 그리고 30대쯤으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여자, 이렇게 셋이 직장 동료 한 사람의 흉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여자 1) 우리 회사에 노처녀가 있는데 지가 엄청 예쁜지 알아 글쎄.

여자 2) 몇 살이라고? 와~

여자 1) 아이고 참, 지가 결혼 안 했다고 20대처럼 예쁜 줄 아는지 꼴에 잘난 척은 또 얼마나 하는데,

혼자서 엄청 똑똑한 척을 한다고. 그 나이 먹도록 결혼도 못하고 착각만 하고 사니 어처구니가 없지 뭐야.

여자 3) 어머, 좀 웃기다. 그 주제에?

여자 1) 그러니까 말이야, 며칠 전엔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와서는 이쁘지 않냐고 묻는 거야.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솔직한 사람이잖아. 꺄르르르

내가 어울리지 않다고 솔직히 말했지. 키는 작고 못생겨가지고 거울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어휴

여자 2,3) 결혼을 안 하고 어떻게 세상살이를 알아? 

나참 주제 파악을 못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니까.  까르르르


얼굴조차 모르는 그 노처녀라는 사람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날씨 좋은 화사한 6월 어느 공원 카페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주제 파악도 안 되는 것이 꿈만 꾸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구박댕이 마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세명의 대화가 얼마나 쾌활하던지 마치 놀이공원에서 실컷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재미있는 오락거리를 앞에 둔 듯, 달팽이 더듬이가 잘 숨는지 호기심에 계속 건드리는 아이들 같기만 했다.




'오늘 커피가 왜 이리 쓰지?  커피숍 테이블이 너무 가깝게 붙어있네' 

갑자기 창밖의 바람까지 커피숍 안으로 들어와 옆자리 소음에 끼어드는 것 같아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천년만년 그녀를 뜯어먹으며 즐겁게 얘기할 듯하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의자를 밀며 일어서더니 바람에 몸을 맡긴 나뭇잎들처럼 시원하고 경쾌하게 출입문 쪽으로 사라졌다.


웬일로 횡재냐며 얼른 빈자리를 차지하는 다른 커플을 보면서 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2020년 오늘은 어떤 시대인가. 가치관 변화와 사회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내. 외적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재 정의되고 있지 않은가. 그로 인해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이것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조롱하고 무시하며 기존의 편견을 그대로 가감 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들은 꽤나 가까운 관계일 것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선택에 대한 적대감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성들이 다른 여성을 상대로 말이다. 나는 남성을 상대로 결혼이 늦는다고 "결혼도 못한 주제에"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들어본 일이 없다.




이끼 탓에 나무보다 더 짙은 녹색이 되어버린 호수에게 바람은 자신을 드러내기 아주 좋은 대상이다.

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 모양대로 이리저리 움직여서 때로는 발리 산자락의 채디필드가 되기도 하고, 드넓은 사라하 사막의 모래 갈비가 되기도 한다.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나도 이런저런 생각의 말풍선이 바람을 따라 춤을 추었다. 

'나는... 나는... TV를 보며 과자 봉지 비우 듯 무심코 타인을 디스해 버린 적은 없었던가.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나의 편견으로 괴물을 만들어 버린 적은 없었는가.' 생각 좀 더 해보자. '예식장에 와서 소박한 축의금을 냈을법한 누군가를 보고 '한 사람이 돈 내고 식구들 다 왔네.'라던가 동료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노처녀 히스테리 운운하며 무시한 적은 없는가.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애쓰는 모습을 보며 '에고 안타깝네, 저렇게 힘든데 차라리 집에나 있지.'라고 걱정을 가장한 불편함을 드러낸 적은 없는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도덕적으로 크게 비난받을 일을 하면서 사는 경우는 드물다.  그보다는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마음의 크기만큼, 수용의 크기만큼 순간순간 습관적으로 타인을 꼬집고 할퀴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매일 부딪히는 편견들의 진액을 보는 것 같아서 더욱 슬펐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 또한 그들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 좀 해보자. 내가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건가?  

그렇다... 내가 그 키 작고 못생기고 잘난 척하는 결혼도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동료는 아니지만 말이다.  


생각은 능선을 따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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