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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Jul 05. 2020

독백 같은 하루

모노드라마


     아이 좀 비켜요, 비켜

시끄럽게 지르는 짜증 섞인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대체 누구야?  내심은 들려오는 목소리만큼이나 매서운 눈으로 소란의 주인공을 쏘아보려고 했지만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이놈의 새끼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누가 물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내 시선에 대한 변명으로 재빨리 웅얼거렸다.

동서울터미널 문경 행 버스 게이트 앞에서 짝다리를 하고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에 진공상태가 파삭하고 깨져버린 것이다.  

물론 동생에게 전화를 걸지도 특별한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편한 대상을 혼자 소환해서는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피식....

'소심하기는...'     

날씨가 참 맑다.  바람의 저항이 없는지 구름은 제 맘대로 풀어져 있고 하늘은 높았다.  

주말인 토요일에 딱히 할 일도 없고 부르는 사람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생각나지 않아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변에 있는 터미널에 왔을 뿐이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문경>이라는 글자 앞에 멈추었다.




     문경, 내 아버지의 고향이고 어릴 적 방학 때만 되면 한 달씩 가서 놀았던 곳 문경, 그리고 점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인가 사촌오빠 결혼식이 있어서, 아니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하루 자고 온 일이 있었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 그러나 깊은 의식 어디엔가 잠들어 있던 곳, 문경... 그리고 점촌

갑자기 점촌까지 가는 것은 너무 빨리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서 관문인 문경 행 버스표를 한 장 샀다.  

2시간. 

내가 그곳에 갔을 적엔 족히 4시간 거리였다.  

10시 20분 출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버린 걸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는 당신 아버지 시신을 등에 업고 문경새재를 넘으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우리 집 무용담이 되어 진실인지 과장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은 채, 서사가 되어 떠돌아 오고 있다.  멀미를 하지 않으면 굽이굽이 새재 고갯길을 넘지 못하던 험악한 도로.     



  

   휴게실에 서지도 않고 버스는 문경 터미널에 도착했다.  기지개를 한컷 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낡고 낯익은 풍경이 터미널 안 무심히 던져진 채 있을 뿐이었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릴 적 시골 큰집 동네에서 보았음직한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 한 채가 특징 없는 시멘트 건물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이게 뭐람.'  

택시를 타고 문경새재 도립공원에나 가야겠다.  그곳에 가면 뭐라도 있겠지.  하다못해 근사한 나무들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건물 밖 택시 승차장에 서 있자니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유턴하는 택시 한 대가 보인다.      

“기사님 도립공원으로 가 주세요.”

“네, 어디서 오셨어요?” 

순간, 내 영혼이 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짙은 경상도 문경 사투리다.  

어릴 적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이웃의 6촌 8촌 오빠들에게서 듣던 그 목소리와 억양이다.  

아빠는 일찍이 서울로 올라와 사투리가 짙지 않으셨고... (아니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경남 사투리랑은 많이 다른 특유의 설명할 수 없는 사투리, 가슴을 후벼 파는 사투리다.

TV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그 억양.

“서울에서요.  30년 전에 오고 처음이에요.  우리 아빠 고향이에요.”

나도 모르게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어릴 적 얘길 꺼내고 있었다.  한 번도 돌아가신 아빠를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었는데 처음 보는 택시 기사님에게 “우리 아빠 고향이에요 30년 만에 왔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눈물이 흘렀다.  절대로 그리워한 적이 없는 곳이 아니던가.

명함을 받아 들었다.  기사님은 돌아갈 때 택시가 없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를 달라며 명함을 주셨다.       

마음이 안절부절 요동치고 있었다.  걸음마다 큰아버지가 보이고 큰어머니가 보였다.  풍경마다 시집간 4촌 언니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걸렸다.  작은 집 사촌 오빠가 더부살이하는 밥값을 보태기 위해 장작용 나무를 지게에 메고 앞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택시기사님 목소리는 내게 무슨 마법을 걸고 떠난 것인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커다란 나무 아래 주저앉아 잠시 풍경이 지나가길 기다려야겠다.'     

     잠시 후, 길 건너 편의점에서 1,200원짜리 원두커피 한잔을 사들고 나왔다.  이제 터벅터벅 걸으면 된다.  시간은 그 발걸음 사이로 나아갈 것이고 나는 돌아갈 때까지 움직이게 놓아두면 된다.  젊은 아가씨가 생전 처음 보는 버섯을 참기름에 찍어서 먹어보라며 건넨다.  

'참 고소하다.' 

돌아가는 길에 사겠다고 생각하고 그다음으로 옮겼다.  강냉이 강정을 급히 만들어 시식코너에 잔뜩 잘라 놓은 가판대에서 잠시 과자를 집어 들었다.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과자 뒤에서 넘실대고 있다.  

세상은 참 희한한 곳이다.  문경은 아이를 낳으면 몇 천만 원을 준다고 한다.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화장실에 커다란 플래카드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여기저기 찍어본다.  등장인물이 없어도 자연은 자연으로 아름답다.  

내가 없는 사진들은 언제나처럼 다시 열어볼지 모르는 폴더 속으로 저장되고 있다.  

간혹 비가 후두득 내리는가 싶었지만 걷기엔 좋았다.  아니 시간에게 내어주는 걸음들이 좋았다.       

오늘은 아무래도 제2관문 조곡관까지 가야 할 것 같다.  도립공원 입구에서 본 탐방로 지도를 보고 제3관문 조령관까지 가려고 했는데 12시 넘어 도착한 데다 내가 걷는 속도로는 도저히 오늘은 무리다.  

핑계 낌에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 

탐방로를 걷는 내내, 동생 생각이 났다.  어릴 적 큰댁에 와있는 동안 동네 우물에 농약을 쏟아 난리를 피운 동생은 나보다 훨씬 더 문경 점촌에 흔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방학을 맞아 내려가 있는 동안 동네 어르신들은 그 이야기를 항상 꺼내셨다.

“네가 그 명희 맞는가?”

“네, 맞아요.  야가 명희라요.”

“그놈 농약 풀어놓은 놈이라꼬?”

“네, 그렇다니께요.”

대화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란 것에 좀 섭섭해하면서도 큰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내가 아닌 것에는 안도했었다.   

     경상도는 먹을 것이 별로 없다.  전라도와 다르게 짜고 맵기만 하다고 엄마는 매번 투덜거렸었다.  그래서인지 공원 입구 아래쪽 빼곡한 식당들을 봐도 크게 구미가 당기는 집은 없었다.  게다가 주로 고기나 전골을 파는 관광지 식당에서는 혼밥을 할 환경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전통 찻집에 가서 대추차로 간단하게 요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찻집 안에는 한 무리의 수녀님들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계셨다.

이곳 분들이 실까?  귀를 기울였다.  

'아니다, 서울 말씨다.'

대추차 육질이 입안에서 보들거렸다.  

느닷없는 문경 행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어쩌려고’ 


    

      터미널에 갈 시간이 되어 택시 기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아빠가 그랬다.

오빠가 그랬다.

큰 어머니가 그랬다.

세월이 그랬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며 기사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꼭 다시 오세요."


'이제 내가 갈 차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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