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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Oct 28. 2019

사랑스러운 임차인

일방적인 집주인의 세입자 사랑


@ 내 집은 나의 모습이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낡은 연립주택에 예쁜 세입자가 들어오던 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이렇게 낡은 집에 성년을 몇 달 앞둔 나이인 여자 혼자서 무슨 이유로 들어와 살게 된 것인지, 가지치기 시기를 놓쳐버린 엉클어진 나무들이 창을 너머 내 머릿속에 잔뜩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몇 개월을 기다리고 기다린 세입자인가, 이제 더 이상 은행이자가 나가지 않아도 되고 부동산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  어느 부동산 사장님은 손사래를 치며 낡기로는 동네에서 유명해서 세입자 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거의 1년을 기다린 뒤 세입자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나는 지옥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부디 오래오래 살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해방감은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의 나이와 성별로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내 집 건물은 얼핏 봐도 낡아서 페인트가 여기저기 큼직하게 벗겨져 있고 가스배관은 낡아서 녹이 슬거나 건물벽에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집도 있었다.  

유리창이 깨진 건물 현관으로 들어서면 습한 냄새와 어둠 때문에 밤눈 어두운 나는 자꾸만 계단을 더듬게 되었다.  계단 천정은 언제 사용했는지 모를 깨진 전구가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데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둠에 익숙한지 수리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고 있었다.  

안전은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내가 전기선을 새로 깔아 밝게 하고 외벽 페인트를 칠하려고 했지만, 다른 집들의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집에 이제 갓 사회로 나오는 성년을 몇 달 앞둔 여자 사람이 들어온다.



@ 낡은 집을 가진 주인은 죄인이다.

< 간절히 바라는 마음>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녀의 대리인과 나의 대리인이 계약을 했고 문자로 그녀의 입주를 확인했을 뿐이다.

가끔 집 천장이 새고 수도에 문제가 생겼다고 관리를 해주는 부동산을 통해 연락이 왔었다.  그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수리를 해주었다.  속마음으로 그런 집에 살아주는 사람이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한 번은 집에 불이 났다고 새벽에 소방관이 전화를 했다.  한 겨울 새벽길에 수도관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는 것을 행인이 보고 119에 신고를 했단다.  다행히 우리 집 외벽이 탔을 뿐 그녀는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소방관에게 문을 열어준 모양이었다.  매서운 겨울날에 얼어붙은 수도를 녹이려고 수도관에 감아놓은 열선을 꼽아 두었는데 낡아서 누전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갓 사회인이 된 사람에겐 혼자 돌봐야 하는 집이 싫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내게도 버거운 일이 아닌가.

그 열선이 왜 감겨 있었는지 누가 감았는지 모르겠지만, 소방관은 수도관은 집주인 소관이라며 낡은 집이니 웬만하면 집주인이 해결하라고 했다.  설령 세입자가 알리지 않고 설치했다고 해도 내 몫이 아닐 수는 없었다. 

겸사겸사 그동안 불편했던 사용상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며 부디 안전하게 잘 살아주길 당부했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나는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 후 여름에는 비가 새지 않을까, 겨울에는 수도관이 터지거나 새로 바꾼 열선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늘 불안했다.

그녀도 무섭지 않았을까?



@ 다시 살아나는 집

< 삶은 우연치 않게 선물을 안겨준다 >

     낡은 집은 젊은 그녀와 대비되었다.  

대부분 그렇듯이 젊음은 낡고 허물어지는 무언가를 대체하기 마련이다.

가끔 집수리를 위해 방문한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집을 이쁘고 깔끔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칭찬을 듣기는 했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가끔 상상에 제동이 걸린다, 그리고 내 경험은 빈약하다.

어느 날 SNS에 그녀가 등장했다.  호기심에 링크를 따라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집은 그녀 만큼이나 예쁘고 화창했다.  

자신이 그리던 이상적인 집을 그 낡고 좁은 집에 옮겨 놓았을까, 허물어져가는 낡은 집은 극적으로 대비되어 마치 대리석으로 지어진 아름답지만 힘 있는 저택 같았다.

나는 마구 자랑하고 싶어 졌다. 

'이게 내 집이라오, 내 집에는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오.'


     6년 살이를 앞두고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일까? 전화기에 뜬 번호를 보며 걱정이 앞섰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에 한국을 떠나 해외에 머무르게 되었어요, 죄송하지만 계약일 전에 이사를 했으면 합니다." 몇 초 동안인지 언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계약일 전에 이사를 갈 경우 복비를 내야 하며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전까지는 계약금을 내줄 수 없으니 그리 알라고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그동안 살아준 것도 고맙고 예쁘게 살아준 것은 더욱 고맙고 꿈을 찾아 떠난다는 말에왠지 그 날개를 꺾으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허물어져야 할 재개발지역에 있는 집이 아닌가.

일단 축하 해주면서 같이 열심히 세입자를 찾아보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청한 몇 장의 집 내부 사진을 유명한 부동산 사이트에 올렸다.  나는 보증금을 내렸고 그녀도 사용 중이던 좋은 가구를 주고 가겠다고 하면서 집을 열심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입자는 구해지지 않았다.  



@ 드디어 내일 그녀를 만난다.

< 그녀의 앞날을 위해>

     저녁에 짐을 모두 뺏다며 연락이 왔다.  그동안 감사하게 잘 살고 간다고 인사를 한다. 

내 집에서 성년이 되었고, 사회생활과 꿈을 성장시켰으며 지금 그 꿈을 더 확장하러 떠나는 모습이 정말 멋지고 자랑스럽다.  많은 시간 나를 힘들게 했던 낡은 집에서 아름다운 새가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는 건 왠지 드라마틱한 장관이라는 생각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우리는 내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약속을 했다.  

필요한 서류에 도장을 찍고 공항으로 간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의 마음을 담아, 소박한 선물을 준비했다.  

이 작은 선물을 통해서 세상은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따뜻함이 있어 넘어질 때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거라고 전해 주고 싶다.  혹시 만 분의 일이라도, 스치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내 마음을 그녀가 느껴준다면 고맙겠다.

오늘 밤, 그녀는 잠을 잘 수 있을까?


언제나 사랑과 행복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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