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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Oct 03. 2019

꿈 이야기

마음 속 깊이 저장되어 있는 꿈

     잠이 얕고 질이 좋지 않아서인지 어수선한 꿈을 며칠째 꾸던 어느 토요일, 다음날 일찍 약속이 있어서 평소보다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몇 번 꿈뻑이다 이내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하고 놀라고 가슴이 조여와서 벌떡 눈을 떴다. 예지력은커녕 눈 앞에 모기가 나타나도 아무 생각도 없는 내가 공포심과 의구심에 사로잡혀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뭐지, 내가 죽는 건가? 그렇다면 그 꽃은.... 죽기는 하되 천당을 간다는 뜻인가, 화장실을 다녀와서 반대방향으로 누워 다시 잠을 청했지만, 꿈의 잔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작은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친구가 집 근처 약속 장소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급한 마음에 대충 가방을 여미고 현관에서 신발을 끼우는 둥 마는 둥 뛰쳐나갔다. 바람이 살랑, 귀밑 머리가 살짝 날린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사거리로 달려갔더니 낯익은 차가 깜빡이를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헉헉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슬쩍 눈을 흘겨보았지만 친구의 마음은 이미 강원도 바닷가에 가 있는지 내 말을 무시하고 만다.  

"오다가 딸기 사서 씻어왔어, 이건 김밥이고, 옛다 커피"  

"오호, 역시 넌 귀신이야. 내가 배고프면 좀 피곤하게 군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네, 헤헤"

우리는 신나는 음악의 볼륨을 살짝 올리고는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채로 스르르 출발했다.  

"길이 좀 밀리려나?" 나는 가능한 만큼 의자를 뒤로 젖히고 길게 누워 커피를 홀짝거렸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도 한산하고 사람들도 없어서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연두색 새 잎이 잔뜩 돋아난 가로수들만 계절을 알릴 뿐, 도시는 여느 때와 다름없다. 미세먼지 강 보통 약, 그리고 콘크리트 건물들의 직사각들, 도로도 직사각, 다리도 직사각, 여기저기 도시는 온통 사각형뿐이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드러난 콘크리트와 단정한 선을 이용한 건축물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나는 어쩐지 그것들이 삭막하고 건조한 사막 같다.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는 사람들보다는 로봇 만드는 자동 기계 설비들이 잔뜩 들어 차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일요일이라 강원도에서 올라오는 상행선이 밀리겠지만, 내려갈 때는 고속도로 상황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비닐봉지 속 딸기가 코를 자극했다. 커피 한 모금 마시다가 봉투 속으로 손을 쓰윽 넣어 큼직한 딸기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었다. 

 "세상에 이런 천국이 또 있다냐? 오늘 운전기사 맘에 들고오~  하하하"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영동고속도로를 진입했을 때 즈음 슬며시 잠에 빠져들었다.


     무언가에 쫓겨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도망하고 있다. 뿌연 공기를 가르며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뛰어넘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다. 잡히면 큰일이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치고 마음은 이미 터질 듯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뒤쪽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커다란 손을 힐끔거리며 뛰지만 어쩐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달려야 살 수 있다. 숨이 차올라 입을 벌어지고 공기를 과다 흡입한 폐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지쳐서 넘어질 듯 말 듯한데 신기하게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저 멀리 앞쪽에 안전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저곳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잡히지 않고 가야 한다. 이미 크고 핏기 없는 손은 내 옷자락을 잡기 일보직전이다. 하필 이때 바람이 날리다니, 머리카락이 날려서 잡힐까 봐 손을 뻗어 재빨리 긴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겼다. 뛰느라 이리저리 펄럭이는 치맛자락도 모두 절박함 앞에는 장애물이다. 그런데 이유나 알고 뛰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인가.'  

드디어 몸이 안전지대에 닿았다. 그 손은 허허롭게 경계선 언저리에 잠시 머물더니 이내 비눗방울 터지듯 사라져 버렸다. 그 손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를 안전지대로 데려오기 위한 신의 사자였을까?


     창밖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다행히 도로는 90킬로로 달릴 수 있을 만큼 한가하다. 가끔 차선을 바꾸는지 똑딱똑딱 소리가 난다.


     뭔가 이상하다. 천근을 달아 놓은 듯 다리가 무거워 잘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히 나는 땅 위에 서 있는데, 3차원 홀로그램 카드처럼 꽃잎이 대지위 사방에 뿌려져 있다. 입체적일 뿐만 아니라 색깔도 선명하고 다양해서 천당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주위는 고요하고 모든 풍광은 깊이가 있어 아득하면서도 엄마의 자궁처럼 편한 하다. 분명히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신선계의 어느 골짜기임이 틀림없다. 

다리는 스스로 움직여지지 않는데 뭔가 뒤쪽에서 밀어 올려지는 기분이다. 어느새 몸이 둥둥 뜨는가 싶더니 낯선 할아버지들 앞에 와 있다. 하얀 머리카락이 허리춤까지 내려오고 소매가 넓은 도포 사이로 보이는 손가락에는 장기알이 보인다. 나를 잠깐 돌아보시더니 이내 장기판으로 눈을 돌리고는 "어서 오너라" 하신다. 


  우회전 깜빡이가 켜졌나 보다, 몸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진다.      

"야, 너 잘 잔다.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자는 게 어딨냐." 친구는 어울리지 않는 뾰로통한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본다.

"꿈까지 꾸셨어요? 내 운전 실력이 대단하긴 하나 보네 하하." 분명히 어젯밤과 비슷한 꿈이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길까? 비슷한 꿈을 두 번씩이나 꾸다니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되어 친구의 투덜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좋은 꿈인가 나쁜 꿈인가. 이 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이 생기면 돌이켜봐야겠다. 차는 어느새 경포호를 지나고 있고 나는 의자를 바짝 일으켜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를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다. 오랜만에 오는 바다, 내가 상상하고 기억하는 바다 그대로 푸른 파도는 하얀 거품을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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