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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Aug 25. 2019

구황 감자 선생

불길이 뜨겁소!

     여자 3, 남자 7로 구성된 대학 동창 모임이 있다.  특이한 것은 구성원들의 출신이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전북, 경남 등으로 고작 10명에 무려 6 지역의 면면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다량 방출되기도 하는데 여름이 가고 곧 햇감자 철이 다가오니 구황 감자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은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출신도 다양하지만, 살고 있는 곳도 전국구라서 중간 장소를 잡는 것은 회장인 나에겐 오랜 스트레스 중 하나이다.  교통편으로 보면 서울 경기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대도시가 좋지만,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다 보니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를 타고 한참을 더 가야 하고 그렇게 장거리가 결정되면 회원들은 뻗대거나 훈수를 두기 일쑤다.  "야 이놈들아, 가끔은 아래쪽 살고 있는 친구들도 배려해 보자고." 살살 꼬드겨서 그 해에는 안산 어디께 깊은 숲 속에 있는 한옥 펜션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단체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개인 일정으로 늦게 오는 사람, 일찍 모여 마트 가서 장을 보고 불을 지피고 설거지까지 모두 담당하는 사람, 그 옆에서 불이 세네 마네 시끄럽게 구는 사람, 숯이 중국산이라 날린다는 둥, 고기가 기름이 많다는 둥 시끄럽게 구는 사람, 그리고 여기저기 저분 이놈에게 훈수를 두는 전지적 회장 시점의 나.


     일찍 모인 나 포함 4명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당연하지만, 마트에서 품목 결정권은 그날의 솥뚜껑 운전자에게 있다.  강원도 출신으로 키가 크고,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지만 가끔은 본인 자랑에 삑사리가 나는 우리의 셰프는 모든 품목을 손수 고르셨다.  그런데 예년과 다르게 감자와 고구마를 한 상자나 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은박 포일 진열대에 가서는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보더니 제일 큰 것을 집어 들고 "이 정도면 되지 뭐.(강원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하며 시크하게 장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우리는 고기도 먹고 다른 음식이 있는데 그렇게 많이 사느냐며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눈치를 주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는 키가 크고 강원도 사투리를 쓰고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는 멋진 친구이기 때문에 아무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한옥 펜션은 주위의 소나무랑 너무 잘 어울렸다.  안산 IC에서도 한 시간을 달리고 비포장 도로를 10분 정도 지나 나타난 펜션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다들 짐을 풀고 방으로 들어가 쉬고 있다가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우리의 셰프는 숯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부엌을 정비하는 모양이고 다른 친구들은 각자 역량만큼 꼼지락거렸다.  우리 뒤에 도착한 친구와 나 그리고 손재주가 없는 다른 친구는 은박지에 감자랑 고구마를 하나씩 싸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묵었던 한옥


"우아, OO가 온다"

"역시 차 좋아, 비포장 도로인데 덜컹거리지도 않아요. 저 차 10년 돼가지 않나?  바꿀 때도 됐는데 하하하."

이런저런 얘길 주고받으며 박스는 뒤로 밀어 두고 친구를 맞이하러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러나 우리의 올곧은 친구는 씩익 바깥으로 눈길 한번 주고는 숯을 통에 부어버린다.  

"형 왔어(강원도)?"

"이 원수, 망나니 니 신수 좋아 보인다 야 하하하.(충청도)" 

다들 안부를 물으며 악수를 하고 시끌벅적하게 자리를 잡았다.


맥주 한 캔씩을 손에 들고 뉘엿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본격적으로 우리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렛츠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친구가 기타를 가지고 와서 우리의 감성은 충만하다 못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숯불 위에 고기는 익어가고 불안한 음정의 노랫소리는 별을 향해 달렸다.  그야말로 영원한 우정과 열렬한 불꽃이 조화를 이루는 밤이었다.  

하늘의 별이 총명한 빛을 잃어갈 즈음, 누군가 갑자기 생각난 듯 셰프 선생을 보고 외쳤다.

"근데 우리 감자들은 어디 갔냐, 벌써 꺼냈어야 되는 거 아냐?" 

"내가 다 알아서 해, 아직 멀었어 걱정 말아." 이렇게 말하며 손으로 숯불 속을 가리켰다.  

부지깽이를 사수하겠다는 그의 굳건한 의지를 확인하고는 미심쩍지만 다들 아무 말도 못 하고 이내 다른 주제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슬슬 술기운이 몸에 퍼지고 눕혀야 하는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우리는 다시 감자의 근황을 물었다.  

"너 감자 진짜 괜찮겠냐?" 

"만약에 탔으면 오늘 알지?" 다른 친구가 쥐어박는 듯 눈을 과장되게 치켜뜨며 선생의 얼굴을 쳐다본다.

"하하하, 이제 됐어요 꺼내도 돼요.  저만 믿으세요 여러분" 

이 글을 읽는 분이 몇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꼭 기억하고 상상해 보시기를 권해드린다.  

그는 서울에 있는 공기업에 10년이 넘게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강원도 억양을 강하게 갖고 있는 친구다.  

아, 고통스럽다.  그 많던 은박지 속 감자 고구마들은 거의 모두 시커멓게 타 버렸다.  심지어 딱딱하게 굳어서 반으로 쪼개는 것도 쉽지 않게 돼버렸다.  우리의 16개 눈은 모두 셰프 선생을 향했다.  

"야, 너 진짜 이게 뭐냐?" 

"그래, 너무 오래 익혔어.(나)"

"오빠, 이건 아닌 거 같아."

아, 잊었던가 이 사람이 누구인지,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가진 인물이다.  

"아니 구황작물은 원래 이런 거예요.  이 중에서 살아남는 걸 먹는 게 진짜 맛있는 거예요 여러분." 

"자자, 내가 까 줄테니까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봐요. 나중에 또 만들어 달래도 이젠 없어요."


하나 버리고. 둘 버리고, 셋 버리고.....

한 박스 분량의 감자와 고구마들은 대여섯 개가 살아남았다.  그마저도 어렵게 잘라보니 딱 메추리 알만큼만 타지 않고 남아있었다.  

"야이 씨, 너 망나니 이제 어쩔 거야 어?" 

"괜찮다니까요, 먹어보고 말을 해. 자자, 먹어보라고." 

음,,, 맛있었다.  진짜다 농축된 감자는 이런 맛이구나 싶긴 했다.  

"바로 이거라니까요.  이렇게 먹는 게 지인짜 맛있게 감자 먹는 방법이에요.  내가 강원도 출신 아니에요, 다들 잊어버렸어?" 우리의 구황 선생은 키도 크고 올곧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기기도 잘한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이 해괴한 주장은 도대체 어디서 온건가.

그렇게 우리는 감자를 두 이빨만큼 나누어 갉아먹고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그 와중에 바람은 왜 이리 사랑스럽게 불어대는지, 술이 취해 벌건 얼굴을 적당히 식혀주는 듯했다.


다음 날 일어나 어젯밤 이야기를 하던 중 감자 부분이 나오면 모두를 그의 얼굴을 보았고 그렇게 그의 별명은 

구황 감자 선생이 되었다.

하나씩 하나씩 친구들의 별명이 늘어간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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