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
아침이 밝아왔다. 새벽에도 이른 아침에도 방에서 불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제니는 지난밤 한숨도 못 잔 것 같았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 홈스테이를 신청했을 때만 해도 걱정 때문에 후회를 하기도 했고 학생이 오고 나서도 40일을 어떻게 이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하나 막막했었다. 그러나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 결국 마지막날이 오고 말았다.
'그날은 온다.' 그날, 오늘이 왔다.
짐은 이틀 전에 대충 정리를 해 두었었다. 수화물 초과로 추가비용이 많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저울에 올려보니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에 포장해 둔 김치와 부모님에게 드리는 선물 그리고 제니에게는 내가 갖고 있던 작은 가방을 주고 다시 넣으라고 했다.
사실, 며칠 전 제니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미리 캐리어 무게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짐은 언제 쌀 거냐고 물었는데 참견을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빨리 나가라는 소리로 들었을까, "아직 며칠이나 남았는데, "라고 말하는가 싶더니 금방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라며 짧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가 서운했을까, 나 나름의 고민 때문에 한 질문이라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체크아웃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김치 포장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미국에 김치를 가져가는 건 요령이 필요한데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세관에 걸리면 어떻게 대처하려나 걱정이 된 것이다. 결국 진공포장 기계를 샀고 포장지는 다이소나 다른 곳에서 판다고 하기에 이리저리 다녔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해서 반찬통에 넣은 김치를 몇 번이고 지퍼백에 넣고 고무줄로 꽁꽁 묶은 후 다시 지퍼백에 넣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김치를 가져가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제니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호텔에 체크인하자마자 김치를 냉장고에 넣어두라고 신신당부할 뿐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마지막으로 지금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더니 "망고 빙수요"라고 짧게 답했다. 아쉬움을 남기기 싫어서 밥을 먹고 서둘러 동네 카페에서 망고 빙수를 포장해 왔다.
"제니야, 나와서 빙수 먹어."
대답과 함께 방에서 나오는 제니는 손에 편지지를 들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피곤할 텐데도 밤늦게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모습을 봤었는데... 불쑥 나에게 내밀었다. 분명히 구글로 번역했을 편지에는 한글로 또박또박 나와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보고 싶을 거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더불어 본인이 한국어를 못해서 불편했다면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
눈으로만 대충 읽고 내려놓았는데 어머니가 가져가더니 편지 내용을 큰소리로 읽기 시작하셨다.
맙소사,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감정이입도 빠르고 깊어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애써 참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읽으셨다.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 홈스테이는 못하겠다, 이렇게 슬퍼서 어떻게 보내겠니?"
괜스레 퉁명스러운 내 말에 제니는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너는 어떻게 하니, 헤어질 때 슬프지 않아?"
"저는 잘 참고 있다가 모두가 돌아가고 혼자 방에 있을 때 울어요." 제법 어른스럽고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웠지만 이미 늦었다.
제니가 망고빙수를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고 있을 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센터에서 보내는 차량이 도착했으니 아파트 현관 앞으로 내려오라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됐다, 가자."
제니는 서둘러 일어나 그동안 지내왔던 방 안을 슬쩍 보더니 현관으로 나갔다. 나는 여전히 눈물이 목까지 차 올라와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콧등이 시린지 표정이 일그러져 계셨다.
이별이란 어느 순간에도 가볍지 않다.
처음 제니가 집에 왔을 때 나는 내 호칭을 '이모'라고 부르도록 했다. 한국에서는 중년 여성을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엄마의 여자 형제라는 뜻이라고 설명을 했다. 어머니에게는 연세도 있으시니 당연히 할머니라고 부르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40일이 다 되도록 제니는 단 한 번도 호칭을 부르지 않았었다. 나야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가 소통하고 싶을 때마다 한국말로 천천히 "제니야, 밥 먹자."라던가 "학교에 잘 다녀왔니?" 등을 물어도 고개만 끄덕이면서 웃을 뿐 절대로 호칭을 부르지 않았었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도 변화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는 행동이나 태도가 따뜻하고 바른 아이라서 성격인가 보다 하고 딱히 서운해하지 않았었다.
우리는 제니를 태울 승합차 앞에 섰다. 기사아저씨가 차에 짐을 싣는 동안 나와 어머니는 제니가 올라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쭈뼛거리는가 싶더니 "할머니, 이모 감사합니다."라며 안아주는 게 아닌가. 저 말을 하려고 속으로 얼마나 연습을 했을지, 우리는 놀랍기도 하고 뭉클해서 마음이 더 애잔해졌다. 그래, 서로 무뚝뚝했지만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감정의 싹은 비슷했구나.
집으로 올라오면서 어머니는 제니가 아까 뭐라고 했냐고 물으셨다. 음... 현관에서 신발 신을 때, 본인이 알고 있는 주소로 편지 쓰면 받을 수 있냐고 물었었다. 이메일을 하라고 했더니 "진짜 편지를 쓰고 싶어서요."라고 했었다.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했더니 참 따뜻하고 예쁜 아이라며 언제나 나비같이 사뿐사뿐 했다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다시 볼 기회가 있을지,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없지만, 그래도 마음을 나누고 교감했다. 그 소중한 시간들로 인해 인간에 대한 긍정 경험치가 한 뼘이나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더니 제니를 보내고 들어온 집은 벌써부터 텅 빈 것 같았다. 아니 찬 바람이 내 뱃속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