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의 열매, 수료식에 가다.

홈스테이

by 윈서


처음 센터에서 수료식 일정을 알려왔을 때는 바빠서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호스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까, 담당자는 걱정 말고 편하게 생각해도 괜찮다고 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제니에게 미안했는데 체크인 날도 호텔까지 데리러 가지 못했고 마지막날도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니야 내일 나도 참석할 거야. 너는 태권도를 한다고 했지?"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K-POP 댄스, 태권도, 사물놀이 세 그룹으로 나눠서 연습을 해왔었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지만 미국에서부터 취미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있어서 나머지 아이들을 리드한다고 했다.

부끄러운 듯 제니가 싱긋 웃어 보였다.

"네, 그런데 아직 완전히 초보예요."

"하하, 괜찮아요, 짧은 시간 동안 배우느라 고생 많았어. 내일 보자?"


아침을 간단하게 차려놓았지만 스르르 나가버렸다. 언젠가 학교 갈 때 인사 없이 조용히 나가는 이유를 물어봤는데 대답은 괜스레 귀찮게 하기 싫어서라고 했다. 이것도 나와는 다른 문화라서 그런 걸까, 어지간히 친해져서 어색하지 않은 사이인데도 여전했다.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타고 홍대역 인근 행사장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메우고 있었고 나는 호스트 그룹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유치원생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가 내 옆에서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제니가 얘기했던 잠실역 인근에 살고 계신 호스트였다. 그분도 나도 이번이 처음이라 정보도 부족하고 소통할 곳이 없어서 어려움을 느꼈었는데 인사를 나누고 보니 금방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되었다.

멀리 무대 쪽에서 제니가 휙 돌아보더니 나를 찾는 모양이었다. 손을 크게 흔들어 보였더니 두 팔을 올려 반가운 표시를 했다. 집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뭐랄까 정말 가족인 것처럼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 내일 점심에는 우리 집을 떠나게 될 것이다.


댄싱팀

드디어 1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관계자들이 차례로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역사 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사회자가 40일간 아이들과 함께한 호스트들에게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순간 그 대장정의 일원이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어서 아이들이 한국어 실력 별로 자신들의 여정을 PPT로 만들어 발표하는 시간을 갖었다. 비록 제니팀은 워낙 초보라 빠졌지만 다른 팀들의 발표를 보면서, 학생들이 40일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을 느끼고 즐기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집에 오면 맨날 피곤하다며 밥 먹으면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니 그럴만했구나'

1부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무대 쪽에 있던 제니가 2층에 있던 나에게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올라왔다.

내 자식도 아닌데 왜 이리 자랑스러운지 올라오는 모습도 우아한 한 마리 학처럼 아름다웠다.


2부 사회자는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하면서 틈틈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첫 번째는 K-POP 댄스로 시작하였다. 십여 명의 아이들이 줄지어서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관객 모두가 아이들 춤 실력에 깜짝 놀라서 환호성을 질렀다. 같은 또래의 서포터였던 한국 학생들은 관객석에서 입으로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고 그 덕분인지 춤은 더 격렬해졌다. 박수와 환호성 그리고 각자의 흥겨움은 장내를 순식간에 달구어 놓았다.


태권도 팀

2번째는 태권도 퍼포먼스, 제니 팀 차례가 되었다. 언젠가 농구, 배드민턴 등을 같이 하면서 제니의 운동실력이 보통은 넘는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태권도는 어떨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주 전에 격파를 해야 하는데 약간 겁이 나고 어렵다는 말을 들었었다. 어젯밤에 격파는 성공했냐는 말에 1장은 깰 수 있다고 말하면서 웃었는데, "그 대신 친구가 잘해요. 아주 잘하는 친구가 있어요." 라며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무대에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등장하고 기본 품새가 시작되었다 나름 단체로 할 수 있는 멋있는 동작들도 보여주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제니가 약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팔다리를 쭉쭉 뻗는 건 잘하는데 태권도 동작이라기보다 춤을 추는 것 같아 보여서 무척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격파 시간, 아이들이 반으로 나뉘어서 한 사람은 조립식 송판을 번쩍 들고 한 사람은 돋음을 한 뒤 발을 번쩍 올려 송판을 깼다. 제니도 뒤쪽에서 깼는데 제법 잘한다고 생각했다. 퍼퍼먼스는 약 10분간 계속되었다. 여러 동작을 하고 대열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틈틈이 박수를 쳤다.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세 번째 사물놀이 팀도 훌륭하게 발표를 마치고 다들 모여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족들도 앞으로 나가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나는 슬쩍 제니에게 엄지 척을 보여주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참석한 인원 전체가 인근 뷔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옆에 앉은 초보 호스트가 그간의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공감과 소통에 목말랐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그 공기 속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고, 옆에 앉은 호스트 분이 나를 계속 쳐다보며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제니를 발견하고 소매를 잡아당기며 신호를 보냈다.

"왜? 친구들과 놀고 늦게 집에 오려고?"

"네, 그동안 저를 도와준 한국 친구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고요."

행사 중간에 제니에게 손 편지를 건네준 학생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재미있게 놀다 와, 들어올 때 전화하고,,, 알았지?"

"네, 그럴게요."


얼마나 아쉬웠을까, 노래방에도 같이 가고, 잠실 야구장도 가고, 네 컷 사진도 찍고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안내하고 의지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며 그 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날 밤, 잠실역에서 버스를 탔다는 문자를 받고 진짜 마지막 될 정거장으로 나갔다.

제니의 얼굴은 조금 슬퍼 보였고 우리는 매미 소리가 벅차게 들리는 길을 말없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벌써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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