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아차산

by 윈서


"제니야 정말 너희끼리만 올라갈 수 있겠어? 길도 익숙지 않고 어두워서 위험할 텐데, 한국말도 아직은 초급이라 무슨 일 생기면 대처도 어렵고. 내가 같이 갈게."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우리끼리 갈 수 있어요."

제니는 주저하는 나에게 해돋이 포인트를 찾아가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보세요,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끈적하고 더운 하루하루를 보낼 때는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한국에서의 일정을 1주일 남기고 있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학생 전체가 1박으로 강화도에 다녀왔고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발표회와 수료식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일요일, 제니는 우리 집을 떠난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추천할만한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길래 한경 변에 가서 해지는 노을을 보며 라면을 먹어보라고 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그다음 날 저녁 집에 돌아오더니,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면서 노을을 봤는데 너무 예뻐서 감동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선셋을 봤으니 해 뜨는 것을 봐야 한다고 정보를 달라고 했다.

'너 나한테 뭐 맡겨놨니?' 당연히 줘야 할 용돈이 늦었다며 졸라대는 아이같이 굴었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아차산을 가보라고 했다. 제니는 곧바로 단톡방에 같이 가고 싶은 친구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말은 했지만 한 여름에 해돋이를 보려고 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사실 나는 아차산을 가 본 적이 없어서 올라가는 길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몰랐다. 미리 잦아 본 유튜브에서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아주 쉬운 길이라고는 했지만 아이들끼리 조명도 없는 산을 올라간다는 점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해 뜨는 시간도 문제였다. 5시 30분 경이라면 해돋이 포인트에는 적어도 20분 전에 도착해야 하고 올라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집에서 새벽 4시경에는 출발해야 했다. 그 시간은 지하철 운행 전이고 버스는 4시 20분경에 노선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해돋이는 시간싸움 아닌가. 세상 그 어떤 것도 뜨는 해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같이 갈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는지 가끔 날 보고 웃으면서 말했었다.

"오늘 또 한 명이 가고 싶다고 했어요."

다행이다 싶었다. 한 둘 보다는 여럿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누가 가는지 물어봤더니 강남에 사는 친구, 잠실에 사는 친구 그리고 우리 집 인근에 사는 친구들이 간다고 했다.

"그럼 강남 친구는 아차산에서 만나고, 나머지는 잠실에서 택시 타고 가자고 말해 봐. 다들 잠실역까지 걸어올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으니까 가능할 거야."

나는 우왕좌앙 하다가 해 뜨는 시간을 놓칠까 봐 데려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택시? 얼마를 내야 하는데요? 각자 얼마씩 걷으면 되는 거예요?"

"4명까지 탈 수 있고 1명이나 4명이나 같아. 그리고 택시비는 내가 낼 거니까 걱정 말고 친구들한테 잠실역에서 보자고 해."

"오~ 네, 감사합니다."

제니는 두 손을 모으며 좋아했다.


제니와 친구들은 밤늦도록 교신을 주고받더니 당일 아침에 같이 갈 친구가 본인 포함 3명이라고 했다. 다들 너무 피곤하다고 마지막에 발을 뺀 모양이었다. 약간 의기소침해 있길래 "잘됐어, 그럼 이 근처 살고 있는 친구들이니까 더 가운데 지하철역에서 만나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 알겠어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지하철 역으로 갔다. 5분 정도 늦을 것 같아서 한 블록을 뛰었는데 여름이지만 새벽을 가르는 공기가 얼굴에 부딪혀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하고 5분 정도 후에 친구 한 명이 왔는데, 같이 갈 친구 한 명이 늦게 일어났다며 톡방에 포기선언을 했다고 한다. 결국 2명, 제니와 친구는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는 바로 택시를 불러 아이들을 뒤에 타게 했다. 잠실대교를 지나면서 본 한강은 숨죽여 여명을 기다리느라 잿빛으로 아우라를 숨기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택시 안의 공기도 아이들의 얼굴 표정도 그날, 그 시간의 한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같이 올라가야겠다.'


택시에서 내린 제니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같이 올라가야겠어."

같이 간 친구는 나와 제니를 번갈아 흘끔흘끔 보며 한 발짝 뒤쪽에서 말없이 걸었다.

"괜찮아요, 진짜 우리끼리 갈게요. 여기서 20분 밖에 안 걸려요."

아이들의 확고한 의지에 계속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간은 차곡차곡 해돋이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편의점에 가자. 생수하고 김밥을 하나씩 사줄 테니까 올라가서 먹어."

"네, 감사합니다."

재빠른 대답으로 이 논쟁을 끝내고 싶었나 보다. 인사와 함께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확실히 바라보았다.

'그래 알았다 이놈아.'


도로 중앙에는 내가 탈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몇 분의 시간이 있을 것이고 버스를 하나 더 보내도 좋았다. 혹시 모를 도움 요청에 재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나는 골목하나를 끼고 한 바퀴 돌면서 천천히 걸었다.


다행히도 전화가 없어서 이미 해돋이 포인트에 도착할 시간이 지났을 즈음 버스를 탔다. 스멀스멀 밝아오는 한강은 아까 지나갈 때와 달리 개이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꿈틀꿈틀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기분 좋은 무언가가 마음속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무렵 핸드폰이 딸칵 울렸다. 제니로부터 해가 멋지게 뜬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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