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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크매거진 Jul 21. 2020

동네가 내 집이 된다면

집 밖으로 나온 우리집 공간 ‘프로젝트 후암’

에디터. 장경림  사진. 최진보  자료.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다수는 비슷한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온 가족이 소파에 둘러 앉아 함께 TV를 보는 거실과, 식탁과 싱크대와 수납장으로 이뤄진 주방, 침대가 있거나 이불이 깔려 있는 안방, 그리고 책상과 책장이 있는 서재. 우리나라는 아파트, 단독주택을 가리지 않고 4인 가족 기준의 비슷한 구조여서, 집은 늘 그렇듯 고정적인 레퍼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1인 가구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오늘, 이른바 ‘원룸족’으로 불리는 그들에게는 공간을 분리해 명명하는 것조차 사치에 불과하다. 5~6평 남짓 네모난 한 칸짜리 방에서 남쪽은 침실, 서쪽은 주방, 북쪽은 서재쯤으로 여기며 살기에 구분이 필요 없다. 친구들을 불러 같이 요리를 해서 먹고, 인기 드라마나 유행하는 영화 한 편 보고 싶어도 좁은 방에서 분위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비단 1인 가구만의 고민은 아닐 터. 가족과 함께 살면서 집 전체를 나를 위해 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해받지 않는 독립된 공간, 오롯이 즐기는 나만의 시간. 집이 주어야 할 기능적 편리성과 정서적 안락함을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이제는 집 밖에서 집 안의 기능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후암’의 공간들은 그 대표적인 예다. 주방과 서재, 거실과 별채. 집 안의 한 영역을 밖으로 뚝 떼어 놓은 듯, 확실한 정체성을 가진 네 공간은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자리 잡은 여섯 명의 건축가들이 모인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의 결과물이다. 후암동의 한 골목길을 따라 5분 거리에 모여있는 각 공간에는 동네를 바라보는 그들의 남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 후암동의 ‘마을 건축가’가 되고 싶은 이준형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이하 도시공감) 대표를 만나 ‘프로젝트 후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준형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대표 ⓒBRIQUE Magazine



흩어진 방, 하나가 된 동네 


프로젝트 후암은 도시공감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공간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라 알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소개 부탁드려요.

‘집에서 하던 것을 한 동네 안에서 해결할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갈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프로젝트 후암의 시작이었습니다. 저희 여섯 명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한 건축가들이에요. 학생 시절 함께 팀을 이뤄 공부했던 내용이 마을과 도시 재생에 대한 연구였고, 항상 마을이라는 키워드가 기저에 깔려 있었죠. 그러다 보니 1인 가구에 대해 연구하고 관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청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주거 문제가 다양해요. 비용 부담 때문에 점유공간이 점점 작아지니, 그 대안으로 사회주택이나 셰어하우스 등이 요즘 눈에 띄게 증가했죠. 하지만 그 규모나 수를 늘려가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희는 함께 공부했던 마을이라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을 고민했습니다. 당장 모든 사람이 집의 크기를 늘릴 수 없잖아요. ‘비록 원룸에 살고, 집이 작을지라도 동네에서 친구들과 밥도 해먹을 수 있고, 조용한 나만의 서재도 있어.’ 이런 아이디어로 공간을 구상하게 됐는데, 마을 자체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내 집은 그대로 두고, 집 안의 기능을 밖으로 꺼내보자며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오게 됐습니다.


후암서재 ⓒBRIQUE Magazine


각 공간의 기능은 어떻게 정하게 되신 건가요? 집의 기능을 하는 공간 네 곳과, 기록을 모으는 곳이 하나 있더군요.

첫 단추가 된 곳은 후암주방이었어요. 처음에 집에서 무엇을 가지고 나올까 하다가 그 당시 ‘쿡방’이 한창 유행이었거든요. 그런데 좁은 집에서는 편하게 따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동네에 주방을 만들어보자 했죠. 그 이후엔 집에서 하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기로 했어요. 요즘엔 카페에서 공부도 하고 책도 보는 것이 떠올랐어요. 제 기억에는 고향집에 가면 큰 서재도 있고, 공부를 하던 장소가 있었는데 요즘 그런 공간을 갖추기가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럼 우리는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면서 집처럼 편히 쉬기도 하는 흔히 서재라고 부르는 장소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후암서재가 만들어졌습니다.


후암주방 ⓒBRIQUE Magazine


집 안이 정말 그대로 나왔네요. 지난해에는 후암거실을, 올 4월에는 후암별채를 열었다고 알고 있어요.

네. 두 공간은 일 년이 채 안 됐어요. 후암거실 기획 당시는, 변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선 TV와 소파가 있는 모습이 아직은 전형적인 거실이라고 봤어요. 생각해보면 원룸은 큰 TV나 소파를 살 돈이 생겨도 공간이 없거든요. 주말 오후에 친구들이랑 모여서 드라마 정주행도 하고, 함께 맛있는 것도 즐기는 그런 공간을 구상했죠. 막 오픈한 후암별채는 오랫동안 고민했던 목욕 기능을 꺼내왔어요. 요즘은 집에 욕조가 잘 없는데 호텔이나 펜션을 가면 반신욕도 해보고 싶잖아요. 목욕 후 간단히 식사도 하고, 나른하면 잠시 누워 쉴 수도 있고요. 그런 공간을 생각하다가 별채라고 이름을 지었어요.이렇게 집의 기능을 하는 네 공간이 있고, 후암동 주민들이 요청하시면 집을 실측해 기록하는 후암가록이 있어요. 동네의 집들을 기록하는 마을 전시관이죠.


공간마다 기능이 명확하니 동네에 흩어진 방 같은 느낌이 드네요. 5분 거리에 모여 있는 것도 인상 깊고요.

기능이 명확한 것은 집에서 하던 일을 마을로 꺼내보자는 생각이 중심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에요. 집 안의 공간이 집 밖으로 그대로 나간 거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정착한 후암동에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각기 따로 존재하는 공간들이지만 한번에 걸어 다닐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부 도보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게 됐죠.


후암별채 ⓒBRIQUE Magazine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 


후암동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지만, 실제로 후암동 주민들이 사용할까 궁금했어요. 실제 사용자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공간마다 사용자 특징이 분명해요. 후암서재는 주민이 반, 외부인이 반입니다. 공간 중 후암동 주민의 사용 비율이 가장 높은 공간이고 다양한 연령층이 오세요. 시끄러운 카페에 가기보다 커피 2~3잔 값을 내고 오롯이 내 작업을 하고 싶은 분들이 많죠. 어쩌다 한 번 들리는 공간이 아니라 진짜 개인 서재처럼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50~60번까지 방문하신 분도 있답니다. 반면 후암주방은 젊은 세대가 많이 와요. 후암동 외부에서 오는 사용자도 많고요. 집에서 요리도 하고, 친구들과 시간도 가지고 싶은데 독립된 넓은 주방을 갖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많이 모이는 거 같아요. 후암거실은 아직 일 년이 안됐지만, 주민의비율이 30~4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남산도 보이고, 공간도 넉넉해서 여러 사람이 함께 영화도 보고 모임을 가지곤 해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집 안에서 하던 일을 여기서 하는군요. 외부에서 오는 사용자도 꽤 있네요.

후암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100% 후암동 주민들을 위해서 만들어야겠다고 기획한 것은 아니에요. 저희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에 주목했어요. 서울의 주거 형태에 대한 고민을 했고, 작은 집에 사는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을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마침 저희가 좋아하는 후암동이 된 거죠.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 수익이 돼야 운영을 지속할 수 있어요. 주민들이 방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했어요.


ⓒBRIQUE Magazine


공통적으로 집에서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바깥에서 해결하고자 공간을 방문하고 있네요. 사용자의 실제 후기는 어떤가요?

큰 카페에 가면 내 자리는 있지만 그곳이 내 공간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거꾸로 작은 규모다 보니 몇 시간을 이용하든 그 시간만큼은 내 소유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후암서재 사용자 중 한 분이 표현해 주시기로는, 친구에게 커피를 내려 건네주는 그 순간은 후암서재라는 이름의 카페 주인장이 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집처럼 작은 방이지만,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매력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즘 서로의 집에 방문하는 것은 지양하는 분위기이잖아요. 이런 이유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겠죠?

그렇죠.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사람도, 방문하는 사람도 서로에게 부담이니까요. 사회 분위기가 점점 개인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코로나19의 확산 역시 주거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됐으니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우리 프로젝트를 대하는 관점도 다양하게 변했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있는 집은 여가 생활을 집 안에서 계속 즐기기는 힘들고, 어디 나가기도 불안하잖아요. 오히려 우리끼리 있는 공간이 그나마 안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후암거실을 찾아오는 분들도 계세요.


후암거실 ⓒBRIQUE Magazine



마을을 만드는 건축가


도시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후암은 집 안의 공간을 외부의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한 형태고요.

요즘에 사회주택이나 셰어하우스를 보면 사실 저희가 만든 기능이 다 포함돼 있어요. 프로젝트 후암은 그게 각각의 공간으로 작게 쪼개진 상태죠. 저희 역시 시작은 주거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만든 공간이지만 어떤 대책 하나가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커뮤니티를 활발히 활용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누구나 자기만의 독립된 집을 가지고 싶거든요. 그럼에도 많은 부분의 불편을 감수하고 들어가는 거죠.

 

바람직한 현대인의 주거 형태는 어떤 것일까요?

결국 주거의 모습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아파트, 협소주택, 빌라, 셰어하우스 등 선택지가 다양해졌거든요. 아파트는 사실 최상의 편의 시설이에요. 아파트의 시스템이 나쁜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를 원하기 때문에 문제였던 거죠. 지금은 주거 형태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시기인 것 같고요. 이런 다양성을 시도하는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누구나 자신의 집에 대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지만 살고 싶은 집을 결정할 선택지는 있어야 해요. 되게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IQUE Magazine


후암동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의 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후암동은 ‘동네’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집의 유형이 정말 다양하거든요. 고급 주택이 있는가 하면,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적산가옥도 남아 있어요. 또 특이한 점은 지형이 참 매력적이에요. 어떤 연고도 없지만 저희가 여기에 정착한 이유기도 하고요. 후암동은 서울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남산 타워를 바로 눈앞에서 올려다 볼 수도 있어요. 거주 형태도 지형의

모습도 정말 다양하게 존재하는 동네죠.


ⓒBRIQUE Magazine


프로젝트 후암은 어떻게 자리 잡을까요?

물론 후암동 주민분들이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쓰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동네에 머물며 저희 프로젝트 공간과 후암동 안의 매력적인 공간을 함께 쓰시면 좋겠어요. 서재를 예로 들면 이용 시간이 길다 보니 오전에 와서 작업을 하시고, 점심을 먹으러 후암동 안의 식당으로 많이 나가시더라고요.  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서재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시고요. 저희가 그리는 이상적인 그림은 저희가 만든 서재에서 책도 보고 작업도 하다가, 오후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저녁엔 거실에서 영화를 느긋하게 보고 집에 가는 모습이에요. 후암동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죠. 왔다가 사진만 찍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후암동 곳곳을 누비며 동네에 머물도록 하는 그런 공간이길 바라요. 이따금씩 생각나면 또 찾아오는 공간과 동네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가 프로젝트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고요.


ⓒBRIQUE Magazine



<브리크 brique> 웹 페이지에서 보기 : http://bitly.kr/ZFn68hpXV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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