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하우스'건축주 홍중희, 김명실 씨의 집 이야기
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자료.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홍중희 씨와 김명실 씨는 결혼한 지 1년 반 남짓 된 신혼부부다. 결혼으로 혼자에서 둘이 되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집을 짓는 과정 속에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들. 서울에서 온 남자와 부산에서 온 여자. 자란 동네도, 성격도, 생활 방식도 달랐던 남녀가 오롯이 둘 만을 위해 지은 집, 남녀하우스에서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의 집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하기 전에 집 먼저 지은 경우는 처음 봤어요. 입주 시기에 맞춰 결혼 날짜를 정하셨다면서요?
김명실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바람에 결혼 후 한 달 쯤 뒤에 입주했어요. 집 짓는 건 제 오랜 버킷리스트였어요. 어려서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아온지라 주택에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일본 여행 중에 작고 예쁜 협소주택을 많이 봤는데 거기에서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결혼을 계획하면서 내 집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아파트에 입주할까도 고민했어요. 그런데 요즘 서울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잖아요. 무엇보다도 미루다가 나중에 집을 짓는다고 하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았어요. 연애할 때 제가 먼저 제안을 했죠.
홍중희 저는 아파트에도 살아보고 단독주택에도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사실 아내가 처음 집 짓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좀 긴가민가했어요. (웃음) 주택은 아무래도 아파트보다는 잔손도 많이 가고 편리함이 덜 하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만의 집을 지어 그곳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불편함을 감내할 만큼 장점이 더 많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동의를 했고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집은 사는 사람의 모든 생활이 담겨야 하잖아요. 의견 충돌은 없었나요? 서로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면서 놀랐다든지. 막상 살아보면 다르다잖아요. (웃음)
김명실 둘 다 집에 관해서는 백지상태였어요. 놀이공원에 처음 가본 아이가 된 기분이랄까. 모든 게 너무 생소하고 신기했거든요. 그래서 그 과정이 더 재미있었죠. 4년 반 연애 기간 중 1년 반은 집 짓기에 관련된 데이트를 했어요. (웃음)
홍중희 땅 보러 다니고, 건축사무소 미팅도 하고. 어떤 공간을 어디에 둘까, 각자의 공간은 어떻게 확보할까에 관한 대화를 많이 했고, 큰 충돌은 없었던 것 같아요.
김명실 이런 과정 없이 아파트나 빌라에 들어가 살았다면 결혼하고 나서 많이 싸웠을 거예요. 오히려 결혼 전에 집을 지은 게 서로의 생활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됐죠. 어떻게 보면 집 짓는 과정이 서로 충돌할만한 부분을 사전에 차단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네요. (웃음)
홍중희 제가 좀 차단됐어요. (웃음) 서로 다르게 30년 이상을 살아왔는데, 당연히 다른 부분이 많을 수밖에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집 짓기와 결혼 준비는 그 과정에서 비슷한 구석이 많을 것 같아요. 함께 사는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고, 그간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요.
김명실 맞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1년 반이 저희에게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남편뿐 아니라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거든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죠.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도 좀 덜어내고요. (웃음)
홍중희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게 결혼 전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죠. 저희는 집을 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겨서 좋았어요.
땅 찾는 데에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고요.
김명실 좋은 땅을 찾기 위해선 결국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더군요. 일단 스마트폰에 부동산 앱을 깔아두고 조건을 설정해 놓았어요. 알맞은 매물이 있을 때 알림이 오면 그때마다 가봤죠. 둘이 가든 혼자 가든, 참 많이 돌아다녔어요. 저희가 원했던 건 직장과 너무 멀지 않고 안전한 동네, 주차가 가능한 집 정도였는데, 교집합을 찾으면 매물이 항상 있기는 했어요. 당시 제가 살았던 마포, 공덕이나 서촌에도 있었고요. 비싸서 문제지. (웃음) 그러다가 홍은동을 발견했죠.
홍중희 코너에 있는 땅이라 좀 더 트여있고, 차가 드나들기에도 편해 이점이 많았어요. 전 주인이 저희와 연배가 비슷한 부부였는데, 그분들도 원래 집을 지으려고 이 땅을 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자녀가 생기고 계획이 바뀌면서 아쉽게도 다시 내놓았다고 했죠.
이 동네, 살아보니 어떠세요?
홍중희 오랫동안 변함이 없는 동네 같아요.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요. 아침에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새소리가 들리는데, 왠지 모를 이국적인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김명실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에요.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이 없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용하다는 점이 장점이에요. 이전에는 마포 쪽에 살았는데 근처에 술집이 많아서 저녁마다 시끄러웠거든요. 주민들의 평균연령대도 높은 편이라 때로 서울 외곽지역 같은 느낌도 들어요. 평범한 동네인데, 이 동네만의 고즈넉함도 좋아요. 여의도까지 출퇴근하기에도 적당하고요.
건축사무소는 어떻게 선택하셨어요? 건축가들과 어떤 소통 과정을 거쳤나요?
김명실 건축사무소를 20~30군데는 다녔어요. 젊은 건축가상 받은 사무소도 찾아보고,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으면 누가 설계했는지도 물어보고. 관심 있는 사무소에 다 메일을 보냈어요. “저희는 이런 사람들이고, 이런 콘셉트를 원합니다. 예산은 이렇습니다. 저희와 미팅을 하시겠어요?” 답변이 오면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고, 서로 ‘케미’가 맞는지가 중요했어요. (웃음) 에이오에이 소장님들은 주관이 뚜렷한 점이 좋았어요. 요구사항을 무조건 수용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명확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데서 그들만의 소신이 느껴졌죠. 내 집을 맡길 전문가로서 믿음이 갔어요.
자녀 계획이 없는 딩크족이시죠.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 계기나 시점이 있었나요?
김명실 저희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아요. 이미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가 왔고, 자녀는 더더욱 그렇죠. 아이를 낳는 건 무척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일인데, 여러모로 생각해봤을 때 아이를 낳아서 함께하는 삶도 좋겠지만 둘이 좀 더 서로에게 집중해서 사는 삶도 좋을 것 같았어요. 아이를 낳게 되면 현실적으로 둘 중 하나는 짧게든 길게든 직장을 그만둬야 하잖아요. 그로 인해 포기하고 희생해야 할 부분이 크게 느껴졌죠. 돈도 많이 들고요. 십 년쯤 후에 내가 행복할까 생각해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결혼이란 내 삶에 책임감이 있는 인간으로 성장을 하는 것과도 같은데, 부모로서의 책임감이나 자신감을 갖기는 어려웠어요.
홍중희 저는 처음에는 아내와 의견이 달랐어요. 아이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크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고요. 어느 날 아내가 진지하게 물어보더라고요. ‘날 선택할 거냐, 아이를 선택할 거냐.’ (웃음)
김명실 당연히 물어봐야죠. 안 맞으면 결혼할 수 없잖아요. 서로 놓아줘야지. (웃음) 함께 꽤 오래, 신중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결국 아이 없는 결혼 생활을 결정했어요. 그 배경이 이런 콘셉트의 집을 만든 것 같아요.
건축가에게 요구했던 사항은 무엇이 있었나요?
김명실 ‘집 같지 않은 집’이요. 집은 단순히 쉬는 공간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길 바랐어요. 때로 와인바나 극장, 호텔이 된다면 어떨까 싶었죠. 남편과 제가 각자 사용할 수 있도록 화장실은 무조건 두 개 있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요구사항이었어요. 내부를 노출 콘크리트로 하고 싶다는 요구도 있었는데, 여행할 때 보았던 인더스트리얼 감성의 공간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처음에는 4층도 통유리로 해달라고 했어요. 뉴욕 브루클린의 한 호텔에 머물렀는데, 아침에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좋았거든요. 에너지 효율과 유지관리 이유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요.
홍중희 매일 똑같은 집보다는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집이길 바랐어요. 둘 다 와인을 좋아해서 연애할 때 와인바를 많이 다녔거든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와인바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좋을 것 같아서 집에 와인바 같은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1층이 주방이 된 거죠. 주방 면적에 비해 식탁이 좀 큰 편이에요. 테이블 높이도 보통보다 높아 와인바에 있는 바 테이블 같고요. 여기서 업무를 볼 때도 있고, 책을 읽기도 해서 때론 카페 같아요. 그래서 1층 방범창에 있는 창살도 소장님이 ‘스타벅스’ 색깔로 해주셨어요. (웃음)
이 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작은 집인데 꽤 넓은 화장실이, 그것도 두 개나 있다는 점이었어요.
김명실 저한테는 화장실이 정말 중요한 공간이에요. 집에서 화장실은 쉽게 간과되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많거든요. 씻고, 화장도 하고, 세탁도 하고요. 집의 한가운데 있어 접근성도 좋아요. 문도 두 개나 있죠.
홍중희 내부 타일 색깔이 달라요. 2층 제 화장실은 초록색, 3층 아내 화장실은 핑크색. 너무 전형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오히려 전형을 그대로 드러내면 재밌을 것 같았죠. (웃음)
가구 배치 또한 뚜렷한 특징이 있어요. 신혼부부니까 으레 2~3인용 소파가 있을 것 같았는데, 똑같이 생긴 1인용 소파 두 개를 나란히 두었더라고요. 집주인 성격이 보였어요.
김명실 함께 살면서도 개인의 영역에 있어선 어느 정도 선을 지키자고 했어요. 저는 영화 볼 때도 옆에 누가 있으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침대도 싱글 침대를 두 개 붙여 놓았죠.
방과 문 없이 4개 층이 통으로 오픈되어 있다는 점도 독특했어요. 때로는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도 있잖아요.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김명실 처음에 조금 걱정이 되긴 했죠. 제가 워낙 독립적인 스타일이라서요. (웃음) 그런데 방과 문의 역할이 이 집에선 ‘층’의 개념이에요. 벽이나 문으로 완벽하게 분리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니 거리로도 분리가 되어 있고요.
홍중희 문으로 다 막아 놓았다면 공간마다 단절되고 답답했을 것 같아요. 층으로 공간을 분리하되 서로에게 통로를 열어 둔 셈이죠. 집이 좀 더 가벼워진 느낌이랄까.
김명실 옷장도 무거운 원목이나 철제로 된 문이 있는 폐쇄형이 아니라 패브릭으로 된 개방형 옷장을 두었어요. 공간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열려있는, 무겁지 않은 집이 되길 바랐죠.
집을 짓고, 결혼을 하고. 인생에서 커다란 두 가지 일을 해내신 셈인데요. 그 과정에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명실 집과 가족이 사람에게 정말 큰 영향을 준다고 느꼈어요. 이제 뭘 하더라도 집에서 할 생각을 많이 해요. 예전에는 집 밖에서 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집보다는 오히려 회사가 중심이었고요. 삶의 무게 중심이 집으로 오면서 생활이 크게 변했다는 걸 실감해요. 사실 저희는 집도 결혼 생활도 어떻게 보면 기성사회나 기성세대에서 ‘평균’ 혹은 ‘보통’이라고 여겨지는 전형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요. (웃음) 앞으로도 그런 틀을 깨고 저희에게 맞는, 저희와 어울리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살고 싶어요.
홍중희 삶이 능동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여긴 저희 생각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집이잖아요. 가구 하나를 바꾸더라도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돼요. 결혼 전에는 누가 지어준 집에만 살아서 몰랐는데 이제 그 즐거움을 알게 됐죠. 물론 해야 할 일은 늘어나겠죠. 여기 산 지 1년 반 정도가 됐는데, 시간이 지나면 손 볼 곳이 나오기 마련이잖아요. 그것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집’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요?
홍중희 음… 지금 드는 생각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집’이요. 어제와 오늘이 특별히 다르지 않겠지만, 집에 오면 오늘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나 기대감, 궁금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이 집에서 그렇게 살아보고 싶고요.
김명실 요즘 ‘집튜브(집과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를 많이 봐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집이 일터인 사람도 있고, 집에서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기기도 하고요. 단순히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활 방식이 담겨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저 자신을 잘 알고 주체 의식을 가지며 스스로 돌볼 줄 알아야겠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집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