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트 워커 남보라 씨의 노마드 라이프
에디터. 박경섭 사진. 김현경
남보라 씨는 에디터라는 수식만으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는 패션 모델, 매거진 에디터, 콘텐츠 기획자로 종횡무진해왔다. 2019년 결혼한 그는 남편과 함께 살아갈 집을 리모델링하는 동안 잠시 ‘에피소드 성수 101’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B’와 푸드 분야 ‘매거진F’ 에디터로 일했으며, 현재 푸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 언아더 컨트리’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푸드 마켓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죠. 하는 일을 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요,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탐구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네요.
글쓰기와 요리를 모두 좋아하시잖아요.
두 가지 일의 성격이 비슷한 것 같아요. 나에게서 시작하지만, 대개 결과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끝나니까요. 비슷한 지점이 있죠. 요리가 일상에서 창조성을 드러내는 활동이라는 철학자 미셸 드 세르토의 말을 좋아해요. 요리라는 게 그렇잖아요. 똑같은 레시피대로 요리해도 사람에 따라 다른 요리가 나와요. 저마다의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요리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개인적인 취향과 일하면서 스친 생각이 더해져서 ‘인 언아더 컨트리’라는 프로젝트가 출발했어요.
에피소드 성수 101은 주요 콘셉트로 공용 공간과 커뮤니티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직접 살아보니 느껴지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공유가 주요 키워드인 건 확실히 느껴져요. 요즘은 어떤 공간이든 공용공간에 관한 이슈는 늘 있는데, 공유라는 게 다소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어요. 뭘 얼마큼 공유해야 하는지 어렵잖아요. 셰어하우스가 외국에서는 보편적인 문화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다소 낯선 문화이니까요. 제가 혼자 자취한 기간이 십 년 정도 되어요. 다양한 주거 환경을 경험해왔는데, 공유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은 없는 거예요. 최근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공유 주택을 주제로 한 일들이 몇 개 있었는데, 직접 경험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에피소드에서 두 달간 머물 예정이에요. 이사 갈 집이 공사 중이어서 잠시 머무를 곳이 필요했어요.
에피소드에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가 거주자분들이 어떤 사람들일까에 관한 거였어요. 근방에 대학교가 몇 곳 있으니까, 학생분들도 있지 않을까 짐작하기도 했고요.
저도 그랬어요. 너무 궁금해서 입주 상담받을 때 역으로 질문했어요. 어떤 분들이 주로 오시냐고요. 대학생분들도 몇 분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내면서 살펴보니까 그 생각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에피소드가 밀레니얼보다는 밀레니얼이 아닌 세대에 더 적합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가격 면에서 학생분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다만 그 가격에 세밀하게 설계된 여러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요. 보안시스템이나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처럼요. 또 성수동은 입지 면에서 무척 훌륭한 동네에요. 그런 면에서 편의성을 위해 비용을 더 지불할 수 있는 분들이 에피소드에 더 크게 매력을 느낄 것 같아요.
에피소드 내부 커뮤니티 활동은 에피소드를 선택한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요?
커뮤니티 활동이 에피소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어요. 물론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또 공간과 유기적으로 운영될 경우 무척 매력적이겠지만 일단 집이잖아요. 예를 들어 오피스 공간이라면 커뮤니티나 공용 공간이 사무 공간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겠죠. 커뮤니티나 살롱이 많이 이야기 되는 시점이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욕구를 어디서 채우느냐에 따라 각자 기준이 달라질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에피소드의 커뮤니티 활동이 궁금하기는 해요.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프로그램이 연기되어서 아쉽더라고요. 에피소드를 나가기 전에 체험해 볼 기회가 있겠죠.
공유라는 건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인데도, 우리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로 주목받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타인과 함께 활동하거나 뭔가를 배우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는 건 굉장히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고요. 다양한 공간이 등장해 특색있는 시도를 선보이는 사례가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이런 변화가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궁금해요. 공유의 개념이 어떻게 바뀔지, 그 범위의 확장은 얼마나 커질지, 또 절대 공유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더라고요. 에피소드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하는 중인 것 같아요.
에피소드는 1~2인 가구에 특화되어 있는데요. 공간이 좁다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크게 불편한 점이 없어요. 처음 입주할 때는 공간이 협소해서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하긴 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사는데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옷도 최소한만 들고 오니까 매일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확 줄어들었어요. 이전보다 더 간편하게 살고 있어요. 소비 패턴도 바뀌었어요. 보통 우리가 매일 구매하던 것들의 대다수는 당장 필요하지는 않은 것들이거든요. 정말 필요한 것만 구매하게 되니까, 그간 얼마나 낭비가 컸는지 알겠더라고요. 에피소드 근처에 이마트가 있어서 손수레를 샀는데, 한 번 갈 때마다 딱 손수레 분량만큼만 물건을 사게 되니까 좋더라고요.
가벼워진 삶의 방식을 경험하시고 나서, 집에 대해서도 생각이 바뀐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에피소드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수많은 물건 중에서 가지고 갈 것을 선별해야 했거든요. 식기구를 밥솥과 냄비 한 개, 수저 두 벌, 국그릇 두 개만 챙겨 왔는데 지내기에 불편한 점이 없어요. 와 보니까 공유 주방에 갖춰져 있는 게 많기도 하고요. 에피소드에 입주하면서 내게 가치 있는 것,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생겼어요. 저와 남편은 집에서 일하는 날이 많은데, 책상 앞에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요. 나머지 공간은 그냥 지나다니는 공간이에요. 사는 곳이 넓으면 생기는 장점이 있겠지만, 작은 공간이라고 해서 단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에피소드에서 장기간 머문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으신가요?
계획은 없지만 생각해보기는 했어요. 현재 생활이 되게 만족스러운데, 왜 괜찮은지 고민해보니까 일단 짧게 머무를 예정이라는 게 커요. 현대인에게 있어 짐의 상당수는 옷이거든요. 이곳은 한 계절 분량의 옷만 있을 때 방이 가장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것 같아요. 뒤집어 생각해보면 한두 달 정도 짧게 머물 사람한테는 최적의 공간이에요. 한국에 잠깐 놀러 온 여행객 같은 분들요. 호텔에 한 달간 머무는 건 정말 답답한 일인데, 에피소드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죠. 가격 면에서도 그렇고요. 서울은 대도시이지만 한달살이에 적합한 숙소나 레지던시를 찾기 어렵거든요.
내부 공간은 어떤가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있는 공간 같아요. 오늘 여길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한 시간 안에 모든 짐을 정리해서 떠날 수 있거든요. 디자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든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구성돼 있어요.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거슬리는 부분이 없어요. 몇몇 지인을 에피소드로 초대한 적이 있는데, 다들 생각이 비슷하더라고요. 예쁘지 않더라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게 주거 공간에서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가구 톤이나 공간 배치 면에서 사용자에게 가능성을 많이 열어뒀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방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용이해요.
한 달 정도 지나면 다시금 이사를 할 예정인데, 사는 곳으로서의 집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실 것 같아요.
요즘 들어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집이 인간적 배려가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이사할 집의 인테리어를 맡아주신 분에게 “제가 뭘 했는지 모르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가장 자주 드려요. 앞서 이야기한 시야에 거슬리는 게 없는 공간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밖에 나가면 거슬리는 게 너무도 많은 세상이잖아요. 특별하지는 않아도 거슬리는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많은 분이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세상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많으니까, 집에서만큼은 편히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집에 들어왔을 때 해방감이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여러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별도의 사무실이 있나요?
사무실이 있긴 하지만, 에피소드에서도 자주 일을 해요. 제가 하는 일이 디지털 노마드로 생활하고 일할 수 있는 조건에 완벽히 부합해요. 그런 측면에서 에피소드는 좋은 점이 많죠. 2층이 됐든 지하 라운지이든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환경이니까요. 실제로 방이나 공용 공간에서 일하다가 지하 라운지에서 업무 관련 미팅을 진행하고, 다시 방으로 와 원고를 마감하는 날도 몇 번 있었어요. 입지가 좋으니까 미팅 장소로 정해도 부담이 없는 이점이 있어요.
일과 삶의 공간이 겹쳐지게 되면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께 듣는 질문이에요. 제가 집에서 일한 기간도 꽤 길거든요. 주변에 프리랜서로 일하는 분들이 많은데, 주변 분들에게 배운 노하우의 핵심은 일단 무조건 일어나서 책상에 앉는다는 거였어요.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화장까지 다 한 상태로 책상에 앉아요. 종일 밖에 나갈 일이 없는데도요. 집에서 일하면서 배운 점은 다행히도 내가 주거 공간과 업무 공간이 같아도 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업무와 일상 간의 스위치 온·오프가 잘 되는 편인 것 같아요. 안 좋은 점도 있긴 해요. 퇴근이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일과 삶의 공간이 겹쳐질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원인이 공간에 있지는 않다는 거예요.
남보라 씨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한 단어로 말하긴 어려워요. 에디터와 브랜딩 컨설팅 업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으니까요. 몇 년 전부터 N잡러라는 말이 쓰이더라고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리라 생각해요. 무어라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주제의 일을 몹시 바쁘게 하는 사람들. 이 지점이 밀레니얼 세대의 속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봐요. 에피소드는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공간이죠. 베이스캠프처럼 활용할 수 있거든요. 그 지점을 에피소드라는 공간 자체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앞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50살이 되었을 때 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주거 문제와도 연결될 지점이 있을 거라고 봐요.
<브리크 brique> 웹페이지에서 보기 : http://bitly.kr/0ldEtTAD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