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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바다

by 벼리울

아직 이런 게 봄이라고, 다 저물어 내린 나뭇대를 보며 웃었어.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겹벚꽃이 피어있지 뭐야.

이번 연도에 꽃을 볼 일이 있을까 했는데 새삼 완벽한 꽃을 본 것 같아.

스치듯 나무를 지나 집에 가는 길.


요즘 나는 생각이 많아.

생각만 많아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시작도 않은 관계에도 이별을 준비하다 물음표를 남겼어.

결국 이어진 마침표에 너는 웃었어. 미안하다며.


나를 걱정하는 이들 앞에 감정 담은 빈 그릇에 벌거벗은 채로 내어졌다.

기본 안주는 나의 현재, 그들의 술은 우리의 시간.

짧은 술자리엔 나의 철없음이 가득 찼지.

언젠간 배설될 외로움 말이야.


너무 일찍 철이 든 나는 이제야 철을 버렸어.

우린 22살의 네가 나타났다며 웃음을 지었다.

나잇값 못한다는 말이 이럴 때 하는 말일까.

내가 원하는 걸 함께 할 수 없음은

시간을 거스른 나에게 주어진 업보일까.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도, 신경 쓰는 것도 너무도 지치지 뭐야.


한 입에 속을 잔뜩 긁던 소주가 달게 느껴진 날.

어른이 된 걸 느꼈다.

술이 인생의 맛이라던 어른의 말처럼 소주 한 병을 그렇게 비웠어.


국밥 이야기에 질색하던 내가 국물 먼저 찾게 된 날.

먹지도 못하던 신 음식을 먹은 순간부터.

먹을 때마다 체하는 고기와 생선을 찾게 된 시점부터 그렇게 변했을 거야.


가식적인 웃음을 뿌려야 하던 나는 진심인지 모를 웃음으로 하루를 버텼지.

바다 앞에 선 날. 울음이 가득 쌓였어.


늘 안아준다 느꼈던 파도가 나를 긁고 있지 뭐야.

너는 알았을까,

자유롭게, 자유롭게 밀어붙이던 물결은 모래를 쓸고 떠날 뿐, 품지도 감싸주지도 않았다는 걸

그래서 네가 떠났나 봐.


하나 두울 찾아오는 빗방울이 나를 채웠지 뭐야.

젖은 모래 위 바람이 불었고, 몸은 떨렸고,

울음 없는 눈물만 해변에 닿은 날 네가 말했지.

즐겁게 웃던, 웃음에 태가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


부모님 몰래 떠났던 강릉 여행, 처음으로 홀로 본 해질녘 강릉 바다가 스치듯 떠오른 건

내가 두고 간 추억이 다시 닿았나 봐.

소나무 아래 싱그럽게 웃던 너에게 닿지 않을 기억을 뿌려야겠다.

지나간 긴긴밤, 분홍빛 가득 채운 하늘 어딘가에 숨겨둘 테야.


해질녘 손을 잡았던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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