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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울 Feb 21. 2024

이별 그 후

배가 고파왔다.

요 근래 사라졌던 식욕이 돌아오다니, 아쉬우면서도 반가운 마음.


최근 들어 나를 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하는 투로 말을 걸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건 우리가 실제로 이별한 지 알 수 없기 때문.


네가 어떤 말을 할지, 나는 어떤 말을 전해야 좋을지 고민을 반복한 나날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인 건지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말에 사라진 식욕이 언제 돌아올는지.


의욕도 들지 않고,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걸어도 보고, 책을 읽기도 하며 보낸 날.


너를 다시 만날 날을 떠올리며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네가 어떻게 지냈냐 물어볼 때 뭐라도 말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네 생각을 덜하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지.


처음 이틀은 정말 힘들었어.

술 한 잔 기울이겠다며 방문한 술집에서 눈물을 펑 터트리기도 했으니 말이야.

정말 여러 감정이 나를 찾아왔구나.


나 스스로에게 '넌 괜찮은 사람이야' 말해주던 내가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는다는 생각에 힘들어했다.


주변인들은 날 볼 때마다 시한폭탄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툭 치면 언제든 울어버릴 표정이었으니.


일을 시작하고, 운동도 하고 잡생각을 버리기 위해 노력한 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도 하다 보니 마음이 잡혔다.


맞아. 어느 달라지지 않았다.

너와 내 마음이 달라졌을 뿐.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것 같아.


일주일 뒤에 볼 너의 얼굴을 떠올리며, 최대한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널 만나기 하루 전.

원피스를 꺼내 다림질을 하고, 미용실에 들렀다.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고쳤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모습으로 이별하고 싶었다면, 욕심일까.


손도 마음도 너무도 떨려 술 한잔 하러 간 이자카야.

한 끼도 못 먹은 상태였는데 반도 못 먹은 오꼬노미야끼를 보며,

그 정도로 내가 힘든 걸까 고민했다.

술조차 들어가지 않으니 이게 이별의 감정인가 실소가 나왔다.


좋아하던 음식도 생각나지 않다니, 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놀랐달까.



그렇게 너를 만났다.

잠이 오지 않아 약속시간보다 너무도 이른 시간 눈을 떴고,

말을 하기 위해 무엇이든 챙겨 먹자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너를 만났지.

우리는 서로의 이별을 알고 있었다.

시간을 갖자 말한 순간부터, 약속 시간을 미룬 시점부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고민하다 뱉은 말은 역시나 이별.

너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며, 행복하고 건강하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울음이라 하는 게 맞을지도.


앞으로 평생 보지 않을 사이겠지만, 이라며 단정 짓는 네가 미웠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억지로 뱉는 모습이 웃겼달까.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이니 웃으며 보내고 싶은데,


평소처럼 손조차 잡지 못한 상태의 우리를 보니 관조적이구나..

네가 원래는 관조적인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다.


그렇게 술을 한 잔, 두 잔 기울이다 보니 울음이 나왔다.

너무도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보며 왜 이별을 택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현실이 미웠다.


우리가 왜 헤어져? 가 아닌, 우린 헤어져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이별을 했다.


누구 하나가 미워서, 싫어서 끝난 사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서로를 너무도 좋아했고, 좋은 사람임을 알았기에 헤어져야 했으니

웃긴 일이지.


친구가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에도 눈물이 흐른 건

그만큼 내가 지쳐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일주일.

자고 일어나 일을 하고, 자고 일어나 무언가를 끄적이다 보니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어제.

우리를 소개해 준 지인의 결혼 소식을 들은 날.

결혼식에 함께 오라는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힘들 것 같아요. 저희는 다른 길을 걷기로 했거든요'


아침부터 너무도 배가 고파온 건, 식욕이 살아 이것저것 주워 먹게 된 것은

완전히 너를 보내줄 마음이 생긴 거 아닐까?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고, 오늘.

배가 고파왔다.


나 건강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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