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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울 Apr 07. 2024

와인 모임


와인 모음을 가기로 한 날.

지하철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시간을 공유한 시점부터 작은 상상은 한 것 같다.

이 중에 내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말이야.

그 자체로 너무도 즐거운 순간.


나도 모르게 잠시나마 멋진 자세를 취해보기도 하고,

핸드폰을 보는 척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했으니 얼마나 재미난 일이야.


오랜만에 청자켓을 꺼내 입은 날.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너무도 즐거워 떨리는 마음을 겨우 잡았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니 보인 인원 둘.

환한 미소로 웃는 어쩌면 부산의 그이를 닮은 사람과,

눈매가 매섭고도 맑은 그녀에게 어떤 여행지를 가장 사랑하는지 물었다.


그이는 프랑스가 제일 좋았다 말했고,

그녀는 시드니를 좋아한다며

시드니에서 본 자연이 너무도 아름답다 말했지.


나는 선로 옆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던 커플 사진이 떠올라,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말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그중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한없는 사랑을 주고 싶다 말했나.


나는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

몸에 글씨를 그렸고, 너는 그 뜻을 궁금해했다.


사랑하고 싶어서.

이성과의 사랑도 좋지만, 모든 상황을 사랑하고 싶어.

싫은 건 싫다 당당하게 말하고, 좋아하는 건 당당하게 좋아한다 말하는 그런 사람.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하나하나 전부 눈에 담겠다는 양.

눈, 코, 입 그리고 그들의 옷을 살폈다.


아무도 서로에 대해 알 수 없는 공간.

우리는 서로의 직업도,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고

그저 눈앞에 놓은 음식과 와인 향에 취해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


대단하고도 대단한 행복이라 했나.

도파민에 찌든 나는 이런 시간을 바랐던 것 같다.


편견에 빠져 지켜도 보고,

잠시 사랑에 빠져보기도 하는 밤.


처음 보는 이에게 선뜻 집을 내어준다는 이와.

처음 보는 이에게 그릭요거트를 물려준 언니 덕분일까.

너무도 즐겁고 소중했던 하루.


빛이 난다 그랬나.

이런 사람은 처음이라 알아가고 싶다 했나,


네가 어떤 이야기를 한 지는 몰라도

그냥 이 분위기가 좋아서.

이 순간이 좋아서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봐달라 소리쳤다.


와인 한잔, 맥주 한 잔, 소주 한 잔 그리고 위스키까지 전부 섞어 마신 밤.

서로 다른 이들이 섞여 숙취보다 더한 추억을 만들었다.


현타라기엔 그저 너무도 좋았기에 좋아서,

좋은 기억만 남은 하루.


덕분에 나는 내가 빛나는 사람이란 걸 다시금 알게 되었고, 내가 소중하다는 말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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