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구원은 왜 파이로프로세싱에 사활을 걸었을까
2016년 겨울 서울에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대전 유성구의 한국원자력연구원 인근 배울사거리에서는 일군의 대전 시민들이 연일 또 다른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처음, 사용후핵연료 1,699봉을 주민들 몰래 원자력연구원에 반입하고 무단으로 보관하고 있는 데 항의하기 위해 시작된 이 시위는 어느 시점부터 다른 이슈로 변화되었다. 바뀐 이슈는 ‘핵 재처리 실험 반대’였다.
핵 재처리란 핵발전소에서 핵분열을 거치고 나온 사용후핵연료의 구성 성분을 화학적으로 분리해서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추출해내는 공정을 말한다. 핵무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엄연히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되어 있어 핵실험은커녕 핵무기 관련 연구도 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핵 재처리 실험’이라니...
경위를 파악해보니, 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이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부피와 보관기간을 줄이기 위한 기술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원자력연구원은 핵무기 개발을 연상시키는 ‘재처리’라는 표현을 일체 쓰지 않았다.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서는 순수한 플루토늄이 추출되지 않으므로 결코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핵재처리 공법에는 크게 물을 사용하는 습식 공법이 있고 물을 사용하지 않는 건식 공법이 있으며, 파이로프로세싱은 건식 재처리 공법 중 하나라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다. 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서 플루토늄이 마이너악티나이드 계열의 방사성 물질(넵투늄, 아메리슘, 큐륨 등)들과 혼합된 채로 추출되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한 번의 분리 과정을 더 거치면 순수한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원자력계의 정설이었다. 파이로프로세싱이 재처리가 아니라는 말은 기만이라 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원자력연구원은 ‘재처리’라는 말을 쓰지 않음으로써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의 목적이 핵무기 개발이 아니라 고준위핵폐기물의 부피와 보관기간을 줄이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의문이 들었다. 과연 그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그렇다면 파이로프로세싱은 핵발전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고준위핵폐기물 즉,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획기적인 해결책 아닌가? 그러면 왜 모든 핵발전 국가들이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까? 재처리를 수십 년간 해온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모두 말이다. 게다가 몇몇 전문가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엉터리’라고 비판을 하고 있었다. 당시까지 3천억원 이상이 투입된 이 대규모 연구개발사업이 만약 엉터리라면 세금도둑질이라 할 만한 사건이었다. 사실이 무엇인지 밝혀보고 싶어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와 조사를 진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진실이 눈앞에 보였다.
취재를 해보니,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를 전기분해 해서 크게 세 그룹의 방사성 물질들로 나누어 처리하는 기술이었다. 첫 번째 그룹은 핵분열생성물이라 불리는 세슘과 스트론튬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 당시 생명체를 가장 많이 피폭시켜 ‘죽음의 재’로 불리는 고발열 고방사능 물질이다. 이들은 필터로 흡착한 후, 뜨거운 유리원액을 부어 유리고체로 만든 후 금속 캔에 넣어 300년간 보관한다. 300년이 지나면 이들이 가진 방사능은 완전히 없어진다. 두 번째 그룹은 플루토늄과 마이너악티나이드 계열의 방사성물질들이다. 이들을 TRU(초우라늄 물질)라 부르는데, 최소 10만년 이상 방사능이 유지되는 장반감기 핵종이며, 고준위핵폐기물을 까마득한 기간 동안 격리해야만 하게 만드는 당사자들이다. 이들은 ‘고속로’라고 하는 새로운 유형의 원자로에 넣어 태워 없앤다. 세 번째는 사용후핵연료에서 95%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우라늄이다. 우라늄은 핵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보관기간을 30만년에서 300년으로 1/1000이나 줄일 수 있고, 보관해야 할 부피도 1/100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원자력연구원의 설명이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그리스어로 ‘불’을 뜻하는 ‘Pyro’와 공정을 뜻하는 영어 ‘Process’를 합쳐서 만든 용어다. ‘불’의 의미가 들어간 이유는 용액에 집어넣어서 전기분해를 하는 습식 재처리 공정과 다르게, 뜨거운 용융염 속에 담아서 전기분해를 하기 때문이다. 액체를 사용하지 않기에 파이로프로세싱은 ‘건식 재처리 공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조사를 해보니 원자력연구원의 설명은 실상과 달랐다. 사용후핵연료를 전기분해해서 위의 세 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세계 여러나라들이 습식 재처리 공법을 통해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플루토늄과 마이너악티나이드 계열의 초우라늄(TRU) 물질을 태워 없애는 ‘고속로’가 없다는 것이다. 고속로를 지으면 되지 않냐고? 문제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지난 60년간 계속 연구개발을 해 왔지만 러시아만 빼고 모두 포기해버렸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초창기 고속로는 연료를 태우면 태울수록 플루토늄 양이 늘어나는 ‘고속증식로’였다. 핵무기를 만드는데 유용한 시설이었지 고준위핵폐기물을 없애는 시설이 아니었다. 냉전이 끝나고 핵무기를 감축하는 시대가 되자 고속로는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안전성 문제였다. 일반적인 핵발전소가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고속로는 액체금속인 ‘소듐(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데, 이 소듐이 물과 접촉하면 폭발을 일으키고 공기와 접촉하면 불이 나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의 실험용 고속로들이 끊임없이 화재와 폭발과 고장을 일으켰다. 상용화는 고사하고 비용만 계속 들어가니 대부분의 나라들이 개발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에 800메가와트 규모의 큰 고속로를 운영하여 상용화 전 단계까지 왔다. 그러나, 그 실증용 고속로는 20차례 이상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가까운 곳에 도시가 있다. 고리 핵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인구가 350만 명이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 인근에 이런 고속로를 지을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플루토늄과 마이너악티나이드 물질을 태워 없애는 고속로를 짓고 가동할 수가 없다. 그래서 파이로프로세싱은 실현될 수 없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문제는 이것 뿐이 아니었다. 고준위핵폐기물 양을 1/100로 줄인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쪽에서 원자력연구원의 내부 연구보고서를 입수했지만, 그 자료들만으로는 고준위핵폐기물 양이 1/100로 줄어든다는 근거가 부족했다. 구글에서 여러 가지 검색어를 넣어 자료를 찾아보다 우연히 원자력연구원이 국회 쪽에 제출하지 않은 보고서 한 종을 발견했다. 그 보고서에는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재처리 한 후 고속로에 태워서 최종 처리하기까지의 물질 흐름을 그림으로 표시한 페이지가 있었다. 그림은 원자력연구원의 설명과 달랐다.
원자력연구원은 마치 TRU(플루토늄+마이너악티나이드) 물질들만 고속로에 태워 없애고 우라늄은 재활용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TRU 물질에다 재활용 우라늄이 아니라 새 우라늄을 섞어서 고속로용 핵연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속로에서 이 연료를 고속중성자로 핵분열시키면, TRU 물질들이 없어지는 대신 우라늄이 핵분열을 하면서 새로운 TRU 물질들이 생겨나고, 세슘과 스트론튬 등 핵분열 생성물도 새로 생겨나는 것이었다. 고속로 때문에 플루토늄, 세슘, 스트론튬 등 고준위핵폐기물의 가장 핵심적인 위험 물질들이 새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결국 처리해야 할 고준위핵폐기물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속로를 짓고 얼마나 오랫동안 가동해야 TRU 물질들을 다 없앨 수 있을까? 원자력연구원에 들어가 담당자들과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은 답변을 피했다.
원자력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찾은 자료에는 600메가와트 규모의 고속로를 70기 이상 지어서 150년동안 가동을 해야 다 없어질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이게 어떻게 고준위핵폐기물을 1/100로 줄이는 결과란 말인가? 1/100로 줄인다는 상세한 근거가 뭐냐고 물으니 원자력연구원의 연구책임자는 미국 에너지부의 보고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만 했다. 그나마 그가 말한 미국 에너지부 보고서는 정부의 공식 문서가 아니라, 국립연구소 연구원이 민간학술지에 발표한 연구 리포트일 뿐이었다. 후일, 한국원자력학회의 이슈위원회는 파이로프로세싱으로 고준위핵폐기물의 분량을 1/100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다고 판단했다.
두 달 간 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진행해 본 결과, 원자력연구원의 주장은 근거부터 부실하고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과대포장이었음이 드러났다. 국민 세금 수천억원을 쏟아부은 프로젝트의 실상에 기가 막혔다. 게다가 원자력연구원은 비밀리에 경주시 감포읍의 70만평 부지에 대규모로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실험을 할 수 있는 혁신원자력연구단지 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하는 소규모 연구개발을 넘어서 연간 80톤의 사용후핵연료를 분해해서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을 추출해내는 대규모 실증단지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프로젝트였다. 만에 하나 사고로 그 방사성 물질들이 유출이라도 된다면 피해의 규모는 핵발전소 급이 아닐 것이었다. 감포읍과 가까운 동경주 지역 주민들은 이런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두 편의 프로그램을 통해, 파이로프로세싱 프로젝트의 비현실성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실증단지 계획의 실체를 폭로했다. 곧, 이 문제는 국회로 옮겨졌고, 그 해 가을 국회는 파이로프로세싱 예산 집행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원자력연구원과 과학기술부는 실증단지 건설계획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들이 백지화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초연구가 끝나는 2020년에 재평가를 실시해서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시 중단과 향후 재평가라는 조치만으로도 의미는 있었다. 대전 충남 지역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정치권을 움직여 최소한의 합리적인 조치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팀의 노력도 작으나마 기여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프로젝트가 실효성이 없는데도 왜 원자력연구원은 여기에 목 매달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원자력연구원의 ‘밥그릇’ 확보 전략이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되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2017년도 원자력 분야 연구개발사업 예산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 사업이었고, 원자력연구원의 수많은 연구인력들이 이 프로젝트에 직간접으로 관여되어 있었으니까. 원자력연구원은 이 프로젝트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로비를 했다. 그런데 왜 원자력연구원의 먹거리가 왜 하필 ‘핵 재처리’ 실험이어야 했을까?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개발 사업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원자력연구원은 핵재처리 실험을 하고 있었다. ‘듀픽(Dupic)’과 ‘탠덤(Tandem)’ 등 명칭은 달랐지만 사용후핵연료를 전기분해 해서 플루토늄을 포함한 물질을 추출한다는 점은 같았다. 듀픽은 1990년대에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미국과 캐나다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했는데, 경수로 사용후핵연료에서 TRU 물질을 뽑아내어 중수로 핵발전소용 연료로 가공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중수로형 원자로가 월성1~4호기 4기밖에 없는데다, 전세계적으로 천연 우라늄 자원이 부족한 것도 아니어서 핵발전소 운영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TRU 재활용 연료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됐다. 이보다 앞서 진행된 ‘탠덤’ 프로젝트는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동시에 추출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캐나다와의 공동연구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반대로 중도에 중단됐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었다. 1975년에는 원자력연구원의 전신인 원자력연구소가 프랑스의 업체로부터 재처리시설을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적이 있었다. 벨기에 업체와는 플루토늄을 재활용하는 핵연료 가공 사업도 추진했다. 정부는 캐나다로부터 핵무기 개발에 용이한 중수로형 핵발전소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고, 사실상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로 보였다. 결국 미국의 압력으로 모든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이 과정을 되짚어보면, 원자력연구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 프랑스로부터 핵 재처리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고,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후에도 캐나다와의 ‘탠덤’ 공동연구로 핵 재처리를 추진해왔다. 처음에는 핵무기 개발이 공공연한 목적이었으나, 한 차례 무산된 후에는 연구개발의 목적이 플루토늄을 재활용해서 핵연료를 확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프로젝트도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 다음 단계에서는 미국과 공동연구로 방향을 전환하고 ‘듀픽’을 진행했다. 여기까지는 재활용 핵연료 개발이 목적이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채굴 가능한 우라늄의 양이 늘어나서 연료 재활용의 필요성이 없어지자, 사용후핵연료 부피를 줄이고 저장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플루토늄을 포함한 TRU를 태워 없앤다는 새로운 목적으로 내걸고 ‘파이로프로세싱’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파이로프로세싱 역시 미국과의 공동연구로 진행하고 있다. 독자적인 핵재처리 추진에서 미국이 관리하는 핵재처리 실험으로 바뀌어왔고, 핵무기 개발에서 핵연료 재활용을 거쳐 고준위핵폐기물 처리로 목적도 바뀌어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포함한 물질을 분리해내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플루토늄은 여전히 핵무기의 원료지만, 원자력연구원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서 이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사용후핵연료를 분해하고 플루토늄을 포함한 TRU를 뽑아내는 기술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할 수 있는 게 그거니까 그걸로 밥벌이를 하자라는.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핵 재처리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핵발전이 유지되는 한 결코 끝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