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페에 앉아 가만히 하늘이 뚫린 듯이 내리는 비를 보면 낭만적인 도시로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오릅니다. 파리의 비 오는 거리, 예술과 함께하는 로마, 비 오는 풍경을 보며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베를린, 그리고 예술과 낭만이 공존하는 프라하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까지 많은 도시가 떠오르네요.
오늘은 이 많은 도시 중에서도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이자 세계의 수도라고 꼽히는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가장 화려한 도시, 가보고 싶은 도시, 세계의 수도로 손꼽히는 뉴욕이 처음부터 선망의 도시였을까요? 물론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도시 브랜드가 뉴욕이지만, 지금의 동경과 선망의 이미지는 결코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뉴욕은 도시 브랜딩을 통해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성공적인 브랜딩을 통해 기업만이 아니라 도시도 브랜딩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자 다양한 나라에서 도시 브랜딩을 진행할 때 꼭 제시되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고담 시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영화 '배트맨' 그리고 '조커'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고담 시티입니다. 고담 시티가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배경, 즉 고담 시티를 가상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고담시티가 진짜 가상의 공간일까요? 대답은 'No'입니다. 물론 고담 시티가 지금 실제로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1970년대 뉴욕의 별칭이 바로 고담 시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가상 속 장소라는 말도 맞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토록 선망받는 뉴욕이 어째서 고담 시티로 불렸을까요?
뉴욕의 도시 브랜딩이 최초로 제기될 때의 뉴욕은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1970년대는 모두가 알다시피 경제 침체가 심했던 상황이었으며 특히 뉴욕은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으로 더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범죄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미국 내에서 뉴욕은 매춘과 마약이 넘쳐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악명이 높은 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치광이 살인마 '샘의 아들'이 날 뛰는가 하면, 71년에는 치솟는 범죄율에 공무원이 파업을 하고 심지어 경찰마저 파업을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영화 배트맨 속 고담시티의 모습과 딱 닮아 있었습니다. 70년대 도시 설립 80년째에 접어든 뉴욕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고, 실제로 뉴욕 시민들이 자신들의 도시에 대해 실업률이나 범죄율이 70년대보다 높았던 적은 있지만 70년대만큼 부끄러웠던 적은 없다는 인터뷰 내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도심 공동화 현상까지 겹치면서 뉴욕에 사는 8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도시를 떠나게 되면서 말 그대로 범죄의 소굴이자 암흑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뉴욕은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도심 공동화 현상이란?
도심 공동화 현상이란 도심지역 내에서 지가 급등 및 각종 공해로 인해 주택들이 도시 외곽으로 진출하는데 이렇게 되면 도심의 주택은 줄고 결국은 공공기관과 상업기관만 남게 되어 도시의 상주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NEW YORK BRADING
당시 뉴욕의 처참한 상황을 타계할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브랜딩'입니다. 브랜딩을 통해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하기 위해 전문 광고 회사인 'Wells, Rich and Greene'가 참여하면서 뉴욕은 지금부터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브랜딩은 왜 하는 것일까요? 새로운 이미지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매출을 위해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면 도시의 새로운 이미지는 왜 필요한 것일까요? 도시도 똑같습니다. 바로 많은 관광객을 유입함으로써 도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함입니다. 뉴욕도 도시 브랜딩을 가장 수익성이 높은 관광산업에 집중했습니다. 70년대 이전 65년에는 세계 박람회를 개최할 정도로 잘 나갔지만 개최 이후 방문객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면서 1975년 결국 뉴욕주 상업국은 자신들이 가진 관광매력을 어필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75년부터 Wells, Rich and Greene이 직접 광고 기획 및 도시를 분석을 하면서 77년부터 통합 마케팅 캠페인이 진행되게 됩니다. 그 캠페인이 바로 우리 모두가 아는 최고의 브랜딩 캠페인 중 하나인 'I Love New York!' 캠페인입니다. 개인적으로 70년대에 나온 슬로건이지만 가장 임팩트 있고 유명한 브랜딩 슬로건이라고 생각합니다. 'I love New York!'은 뉴욕 출신의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인 밀턴 그레이저가 디자인한 심플한 로고와 함께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디자인이 'I♥NY'입니다(지금 이 글을 쓰는 저 조차 마케팅의 '마'도 모를 때 마케팅을 잘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케팅과 브랜딩에 전혀 모르고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붉은 하트 하나 있는 정말 대충 만들어진 것 같은 이 디자인은 현재 뉴욕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물론 전 세계 도시에서 따라 하는 이미지가 되었고, 가장 유명한 도시 브랜딩 사례로 남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뉴욕시가 영리하게 로고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디자인에 지적 재산권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디자인이 미디어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고 다양한 형태의 패러디까지 나타나며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또한 'I♥NY' 로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다양한 굿즈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한때 'I♥NY'이 새겨진 물품을 사는 것이 유행이 된 적도 있습니다. 구전효과, 다양한 패러디 등을 통해서 자연스레 'I♥NY'이 빠르게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그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도 I♥NY을 볼 수 있었고, 뉴욕을 한번도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마저 뉴욕을 사랑한다는 마음까지 들게 만든 것입니다.
굉장히 단순한 의미인 '나는 뉴욕을 사랑한다' 슬로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70년대의 뉴욕을 가장 부끄러워하던 뉴욕 시민들조차도 스스로 뉴욕을 사랑하고 뉴욕에 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자극을 주었고, 그 덕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시정부가 추진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예상치 못한 부수적인 효과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 브랜딩에서 가장 큰 효과는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기업 브랜딩에서도 외부로 기업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외부 인식은 다양한 마케팅 채널을 사용하면 되지만 내부 인식을 바꾸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조직원을 자극할 수 있는 동기부여까지 제공을 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도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든 뉴욕 브랜딩 작업은 단순히 대외적 효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큰 업적을 이룬 브랜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이루어진 시민들의 높아진 시민의식은 뉴욕시 자체를 매력적인 도시로 바꾸는 아마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THE BIG APPLE
뉴욕의 수많은 별칭 중 하나인 'BIG APPLE'은 의도된, branded 된 별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 LOVE NY 캠페인 이전 1971년 'ABNY(Association for a better New York)'이 뉴욕 관광청과 함께 '빅애플'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뉴욕을 사과로 표현되기 시작한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들이 있는데 대체로 1909년 에드워드 마틴의 책에서 처음 언급된 Big Apple이 최초였다는 의견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1920년대 스포츠 기자였던 존 피츠제럴드가 뉴욕의 높은 경매 수익을 Big Apple로 칭한 것이 인기를 얻으며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었습니다. 뉴욕 관광청(The New York Convention and Visitors Bureau) 프로모션 캠페인에서 뉴욕시를 Big Apple로 명명하면서 공식 작인 애칭이 되었습니다. 이후 Big Apple이라는 애칭은 I❤NY과 함께 대표적인 뉴욕의 애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Branding Like NY
뉴욕의 도시 브랜딩 사례를 가지고 온 이유는 브랜딩이 단지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물론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고 싶은 점은 브랜딩은 '내부를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브랜딩의 꽃은 '내재화'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뉴욕 브랜딩처럼 내부 고객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꾼 브랜딩을 최고의 브랜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의 행동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조언해주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나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실천해서 실제로 이루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가 내재화를 브랜딩의 꽃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리브랜딩을 하거나 브랜딩 작업을 시작할 때 제품만 바꾸면 되겠지, 아니면 막대하고 공격적인 투자만 하면 성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실제로 도시마케팅 전문가인 Eric Swartz도 도시마케팅의 성공 요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과감한 투자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미지’라는 사고의 전환을 꼽았습니다.
만약 뉴욕 브랜딩에서 뉴욕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뉴욕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었는데, 뉴욕 시민의 인식이 과거 70년대에 머물어 있다면 지금처럼 큰 성공을 가지고 올 수 있었을까요? 아마 처음에는 뉴욕 시민들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관심을 끌 수는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전과 똑같은 도시의 분위기에 그 관심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딩은 제품을 바꾸고 제품을 통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행위가 아닙니다. 저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품을 바꾸지 않아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려 제품까지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브랜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뉴욕이라는 도시는 물리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생각 속의 뉴욕은 크게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단순히 제품의 변화를 통한 브랜딩은 '작심삼일'에 불과합니다. 단기적으로 소비자의 마음과 시선을 가지고 올 수는 있지만 뿌리부터 변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금세 이전의 태도로 돌아갈 것입니다. 현재 시장의 고객들과 앞으로 시장을 이끌어갈 Z세대 소비자들은 제품의 품질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브랜드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그 행동 안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단순한 제품이 아닌 브랜드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가치들이 지금의 소비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한 기업의 브랜딩과 오늘 이야기한 도시의 브랜딩이 정확하게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 브랜딩을 한 것과 똑같이 기업 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브랜딩이 무조건 기업에만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닌 도시에도 가능하다는 것과 처한 상황에 따라 참고하고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례가 다양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오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것은 맞지만 소비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기반을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뉴욕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뉴욕을 위해 나선 것처럼 말이죠. 흔히 사람의 진실된 마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행동과 말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 조직 내에서 내재화된 행동과 언어가 흘러나올 때 진심으로 소비자들을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결국 '브랜딩의 최종 지점이자 시작 지점은 '나'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브랜딩 슬로건이라 꼽는 'I love New York!'과 관련된 뉴욕의 도시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또한 제가 목표로 하는 경주, 공주 등 한국의 도시와 더 나아가 저의 생각을 담은 한국 브랜딩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