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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 Sep 19. 2023

미국사람이 된다는 것

한국인과 미국인, 그 사이 어딘가

미국생활 8년 차. 조금 특별한 케이스로 미국에 온 나는 8년 만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2015년 5월,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미국행 통보에 이어 원치 않은 타지생활을 시작한 나는 미국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급급했다. 당시 나는 고1이었고 입학과 동시에 미국 대학 입시에 뛰어들었다. 때문에 그때 당시엔 한국으로 돌아가니 미국에 눌러앉느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정신없이 대학입시를 마친 고3 끝물에 문득 내 추후 거취와 신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이때 당시에만 해도 나는 한국 남자라면 마땅히 군대에 가야 하고 나는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갈 것이라는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의학공부 그리고 진로와 추후 한국 복귀를 같이 바라볼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알아봤다.


특례 입학, 편입, 미국에서 의대, 레지던트 후 한국 복귀 등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 봤지만 당연히 한국에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 결심이 무색해질 정도로 결단을 내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이 군대 뺄 수 있으면 빼라, 미쳤다고 여길 올라 그러냐 같은 의견들과 부모님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건 어떻겠냐는 설득들이 있었다. 이미 특례입학, 편입은 물 건너간 상태였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좋았던 나는 마냥 대책 없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 처한 현실 사이에 이리저리 치이며 6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2022년 대학교 4학년 시절. 의대를 다니고 있던 친한 선배의 정말 간단한 한 마디가 내 미국 시민권 취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자, 스펙이 똑같은 두 의대 지원자가 있다고 치자. 둘이 다른 건 오직 신분, 영주권이랑 시민권이야. 물론 의대 웹사이트에선 영주권자들이랑 시민권자들을 동급으로 취급한다 하지. 근데 생각해 봐. 네가 입학사정관이면 똑같은 스펙의 두 지원자가 있는데 하나는 외국인이고 하나는 자국민이야. 누구 뽑을래?"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싶었다. 그동안 주변에서도 그리고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얘기하던 시민권 취득이었는데 여태까진 귀 막고 있다가 왜 이제 와서 이 한마디에 설득당했는지.


그렇게 바로 시민권 신청을 하고 이듬해인 2023년 1월. 나는 공식적으로 미국 시민이 된다. 시민권 선서를 하는 날 마음이 마냥 좋진 않았다. 사실 시민권 취득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였기보단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귀화 증명서에 써져 있는 내 영문 이름, 선서식 도중 바이든 대통령의 웰컴 비디오, 그리고 미국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종종 심장에 오른손을 대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읊던 국기에 대한 경례를 이젠 성조기를 보며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복잡하고 싱숭생숭했다.


개인마다 정체성 확립에 대한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는 청소년기에 정체성 확립이 되는 순간이 중학교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을 왔고 그 중학교 3년 동안 한국은 내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준 나라기에 언제나 정이 갔다. 누군가 프랑스 (초등학교 때 프랑스에서 4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 한국, 미국 중 내 "home"은 어디냐고 물었을 때 난 항상 주저 없이 한국 일산이라고 대답한다. 또한 미국에서 긴 시간 동안 영어 이름으로 불려 왔음에도, 누군가 나를 내 한글 이름으로 불러줄 때 더욱 반가운 느낌이다.


물론 시민권 취득은 그저 상징적인 것일 뿐 내가 스스로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살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하지만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고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생각 날 것 같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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