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방학시즌만 되면 주변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단골 질문이다. 여행계획은 짜는 건 조금 귀찮을 순 있어도 막상 여행을 가게 되면 계획대로 되던 되지 않던 후에 돌아보면 모두 재밌던 추억으로 남는다. 낯선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다는 건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짜릿하고 설레는 일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녀봤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주재원으로 초등학교 때 프랑스에서 4년을 사는 동안 아버지께서 정말 열심히 우리 가족을 데리고 유럽 일주를 하셨다. 절반 이상은 사실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20개국 남짓한 나라를 여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중학년인 나이 때는 가족들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그저 좋을 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후에 머리가 커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그 노력은 내게 정말 소중한 경험으로 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문화와 인종에 대한 관념이 굳게 서있지 않을 때에 다른 문화, 다인종 간의 교류를 하며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언어, 건축물, 문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 사실이 당연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색다름을 마주했을 때 두려움보단 호기심과 관심으로 다가가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습득했고, 새로이 배움을 터득할 때의 그 느낌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가족과의 여행은 가족 간의 단조로움이나 종종 있을 수 있는 냉전을 해소하기에 가장 탁월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네 가족이 다들 떨어져 살고 있음에도 서로 매일 영상통화 하며 끈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어렸을 때부터 가족단위로 활동을 많이 해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부모님께 나도 후에 아이를 낳으면 엄마, 아빠가 내게 해주신 것처럼 여행을 많이 데리고 다닐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아주 흡족해하시며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대학교 1학년 여름, 프랑스를 떠난 이후로 처음으로, 이번엔 중학교 친구들끼리 유럽일주를 했었다. 우리는 각자 나라 하나씩을 맡아 계획을 짜기로 했고, 나는 당연히 프랑스를 택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방문한 내 2번째 고향은 많이 변했으면서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음에도 이 여행은 더욱 특별했던 것이 부모님 없이 친구들끼리 갔던 첫 번째 여행이기도 했고, 내가 살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여행이라 여느 여행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들었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8-9년 만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그 등굣길을 찬찬히 다시 걸어보는데 기억 저편에 있던 내 초등학생 때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었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 가족들과의 여행에선 부모님이 여행 중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하시지만, 이번 여행에선 그 부모님의 역할을 내가 해야 했다는 점이 더욱 뜻깊었다.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어렸을 때 현지에서 배운 언어는 소위 "머슬메모리"가 되어 튀어나왔고, 그 의사소통이 문제없이 이뤄졌을 때 그 성취감도 고이 간직 중이다.
대학교 1학년때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친구들과 타지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 SNS에서 돌아다니던 글 중 나를 지레 겁먹게 했던 글이 있었다. 바로 친구들끼리 여행을 갔다 오면 "평생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절교하거나"가 결정된다는 문구였다. 나는 그때 당시 함께 유럽여행을 갔던 이 친구들이 중학교 때도 가장 친했고 내가 타지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여전히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거의 유일한 친구들이라 이들을 잃게 되면 큰일 나는데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내 친구들의 성격은 둥글둥글했고 오히려 서로 그동안 못했던 속 얘기들, 서로 고마웠던 점, 미안했던 점들을 터놓고 얘기하며 더욱 돈독해지는 여행이 됐었다. 내가 저런 걱정을 했었다는 얘기에 대한 대답도, "X신아, 뭔 그런 걱정을 사서 하냐"로 돌아오는 것이 정말 감사했던 기억도 있다.
이 유럽 일주를 한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하지만 내 사진첩엔 아직 그때의 사진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가끔 심심할 때 들어가서 스크롤을 내리며 구경하다 보면 어느샌가 내 입엔 미소가 지어져 있다. 지금 혹시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 고민 실행으로 옮기기를 추천한다. 혼자 가는 여행도 물론 좋지만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함께 가서 많은 경험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오기를 바란다. 아직 고민하고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 내 사진첩에 있는 유럽의 풍경사진 몇 장으로 결정에 도움을 주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