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 듯, 광고 아닌, 광고 같은 콜라보레이션’ PPL(간접광고)의 핵심은 자연스러움이다. 시청자의 잠재의식에 브랜드 이미지를 부드럽게 박아 넣는다. 자기 자랑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영상에 몰입한 시청자가 PPL이란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웹드라마에 유유히 지나가는 PPL을 일시 정지해보자. 족집게처럼 드러내, 숨은 PPL을 줌인(Zoom-in)해보자.
회색 빌딩 숲 속 붉은 벽돌 건물이 우직하게 자리 잡았다. 담쟁이덩굴이 건물 벽의 8할을 휘감은 모습이다. 드라큘라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모양새다. 이름부터 수상하다. ‘까마귀 상가’다.
웹드라마 <까마귀 상가>는 이 상가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오피스 시트콤이다. 건물에 세 들어 사는 두 회사가 이야기다. 2% 모자란 구성원들이 드라마를 끌어간다. 웹드라마판 무한도전 <무한상사>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은 이 건물에 입주한 회사 중 하나다.
대게 PPL에선 회사 이름이 달라진다. 어색하지 않으면서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는 수준으로 변경한다. 극에 몰입한 시청자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드라마를 보다가 특정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한다면 어떨까. 이만한 방해 공작도 없다. 하지만 배민은 달랐다.
배민은 회사명을 고치지 않았다. ‘배달의 민족’ 다섯 글자가 그대로 박혀 등장한다. 배민 특유의 민트색 상이나 광고 포스터도 똑같이 나온다. 노골적이다. 그러나 불편하지 않다. 왜일까. 아마 <까마귀 상가>의 B급 감성과 배민의 매력인 ‘키치 코드’가 일치해서일 것이다.
<까마귀 상가>는 현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극 중 사무실은 실제 배민 회사에 있는 공간을 빠짐없이 드러내 가져다 놓은 듯하다. 직장인 살풍경을 적확히 재현한 드라마 <미생> 뺨친다. 이 사무실엔 배민을 알리는 조력자가 숨어있다. ‘배민 굿즈(Goods)’다.
배민 굿즈는 키치 코드의 집합체다. 굿즈엔 배민 특유의 B급 위트가 묻어있다. 평범한 물건도 배민만의 말장난에 흠뻑 젖으면 실소를 자아낸다. 카드지갑은 ‘덮어 놓고 긁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며 우리를 도발한다. 직접 손으로 저어야 하는 부채는 ‘셀프 냉방’이란다.
<까마귀 상가>에서 배민 굿즈는 감초 역할을 한다. 영상 어디에서나 등장해 존재감을 발산한다. 눈치 없이 둔한 주인공 ‘태범’은 배민 ‘팔팔’ 티셔츠를 항상 입는다. 의욕 하나만큼은 ‘팔팔’한 캐릭터다. 사무실 벽면엔 대문짝만 한 ‘헐’ 포스터가 걸려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배민을 알렸던 카피 ‘배고프니까 청춘이다’가 눈에 박힌다.
배민은 여기에 한술 더 뜬다. 아예 굿즈를 스토리 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등장시킨다. 사랑의 메신저다. 태범을 좋아하는 송화는 그에게서 ‘연필’을 선물 받는다. 연필엔 소박하게 ‘흑심 있어요’라 적혀있다. 태범은 송화에게 손거울도 주는데, 송화는 이 손거울로 태범을 엿보며 호감을 드러낸다. 이 손거울엔 이런 문구가 담겨있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이뻐요~’. 이 이야기가 나오는 에피소드 제목에도 대놓고 같은 글귀를 썼다.
<까마귀 상가>엔 배민 굿즈만 광고된 게 아니다. 그들의 기업문화도 홍보됐다. 굿즈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면 기업문화는 마음을 빼앗는다. <까마귀 상가>를 보고 있자면 회사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회사가 이 땅에 있단 말인가’
배민이 말하는 기업 문화는 우아하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뿐인데, 왠지 고상하다.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의 기업문화를 엿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회사’
‘스스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회사’
‘명절 때 친척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회사’.
배민의 기업문화는 고스란히 <까마귀 상가>에 드러난다. 건물주 ‘선녀’에게 주차권을 받아내는 에피소드에선 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가 나타난다. 주인공 ‘태범’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얻으려는 것이 뭘까. 주차권? 권리? 아니 진심!’
‘우린 아주머니를 위하기보단 어떻게 주차권을 받을 지만 생각했어’.
배달앱 회사 배민은 서체도 만든다. <까마귀 상가>엔 서체에 이름을 짓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배민 특유의 의사결정 방식이 나온다. 배민은 서체에 자녀 이름을 붙인다. 배민 서체 ‘한나체’와 ‘주아체’는 김봉진 대표의 첫째·둘째 딸 한나와 주아에서 가져왔다. 대표의 자녀 이름만 사용하니 내부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대표 자식만 자식인가’. 자식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직원들은 자녀들 이름을 통에 넣어 제비뽑기하기 시작했다. 배민의 자녀라면 앞으로 평생 남을 배민 서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고양이 이름이나 강아지 이름, 집에 있는 분홍색 수건 ‘홍홍이’도 후보군에 오른다.
B급 문화의 대명사 배민은 웹드라마로 향했다. 오피스 시트콤 <까마귀 상가>는 배민에 맞춤 정장이었다. 배민의 키치함을 부드럽게 담았다. 이렇게 탄생한 배민의 PPL은 묘한 매력이 있다. 적극적이지만 거북하지 않고 은은하지만 강력하다. 강약 조절을 잘한다. 배민 PPL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역시 묘하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