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브랜드는 2형식이다. 단 두 가지로 구성된다. 생각과 표현이다. 매력적인 브랜드는 옳은 생각을 제품으로 적절히 표현한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에 능하다. 몸집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재야의 고수들이다.
‘브랜드는 2형식이다’에선 이 브랜드들을 2형식으로 설명한다. 브랜드가 세상에 외치고 싶은 ‘무엇’을 ‘어떻게’ 상품에 녹여내는지 풀어낸다.
브랜드를 2형식으로 파헤쳐보자.
‘미식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이 있다. 식당에 별점을 매기는 빨간색 레스토랑 가이드북이다. 전 세계 쉐프들은 스타(별)를 받아 이 작은 책에 간판을 거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는다. 쉐프들에게 스타는 무공훈장이다. 전쟁터 병사들처럼 목숨을 걸만큼 값진 그 무엇이다. 스타을 받은 쉐프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 반면, 그 무게를 못이겨 목숨을 잃는 쉐프도 있다. 이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빨간 책의 이름은 <미쉐린 가이드>다.
‘브랜드는 2형식이다’의 두 번째 주제는 레스토랑 가이드북 <미쉐린 가이드>다. <미쉐린 가이드>는 1900년에 나온 일종의 ‘식도락 여행’ 추천서다. 전 세계 유수 레스토랑을 소개하며 독자들이 지구촌 방방곡곡을 누비길 권하는 책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내놨다. 타이어와 미식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100년 전 상황을 고려하면 둘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자동차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돈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여서다. 부유층은 파인 다이닝(Fine dinning), 즉 ‘미식’을 즐겼고 미쉐린은 이들을 위한 미식 가이드북을 출판한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출발했으며 20세기가 지속되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
미쉐린 창업자 ‘앙드레&에두아르 미쉐린 형제’는 1900년 <미쉐린 가이드>를 소개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현재 이 빨간 레스토랑 가이드북의 누적 판매부수는 3000만부를 넘었다. 등재된 레스토랑 수는 20개국 2300곳을 돌파했다.
<미쉐린 가이드>의 목표는 ‘최고의 식당을 찾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맛집을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미쉐린은 전 세계 곳곳 평가원을 배치해 레스토랑을 찾는다. 평가에 수반되는 비용은 모두 미쉐린 측이 지원한다. 전 세계 120여명의 평가원들이 1년에 160일동안 호텔에서 자며 250끼를 먹는데, 여기에 드는 돈을 모두 댄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고 알려져있다. 엄청난 투자로 맛집을 찾아내니 미식가들은 이를 두고 ‘돈낭비의 미덕’이라고 표현한다.
<미쉐린 가이드>는 최고의 식당에 갖가지 표식을 부여한다. 최고봉은 ‘스타’다. 스타는 음식이 맛있는 식당에 주어진다. 해당하는 식당을 발견하면 작위를 내리듯 별점을 부여한다. 기준은 오직 음식의 맛이다. 인테리어도 서비스도 아니다. 대중에게 중요한 접근성도 스타 기준엔 들어가지 않는다. 미쉘린 가이드는 “스타는 오로지 요리에만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자동차를 타고 직접 식당가 음식을 직접 맛보길 권하는 레스토랑 가이드북답다.
별은 총 3개다. 1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을 2스타는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을 뜻한다. 3스타는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을 말한다. 이중 3스타가 제일이다.
스타를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3스타 레스토랑은 전 세계 117곳에 불과하다. 미쉐린 스타를 배우들에게 최고의 명예인 ‘오스카상’에 비유할 정도다. 그만큼 스타는 셰프에겐 큰 행복이나 인정이다. 미슐랭 스타를 받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셰프를 그린 영화 <더 셰프>에선 이 훈장을 스타워즈에 비유한다.
“스타워즈로 치면 1스타는 ‘루크 스카이워커’고, 2스타는 ‘알렉 기네스’급이야. 3스타가 되면 ‘요다’ 급이지”
<미쉐린 가이드>는 스타를 앗아가기도 한다. 레스토랑을 매년 재조사해, 기준에 미달하면 스타를 빼앗는다. 스타를 잃은 레스토랑은 치명타를 맞는다. 실제로 아일랜드 더블린의 ‘피츠 윌리엄 호텔 레스토랑’은 미쉐린 스타를 잃고 수입이 줄어 2016년 10월 문을 닫았다. 셰프들에겐 사형선고다. 프랑스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는 2003년 자신의 레스토랑이 2스타로 강등된다는 소문을 듣자 자살했다.
<미쉐린 가이드>엔 몇 가지 표식이 더 있다. 미쉐린의 마스코트 ‘비벤덤’이 입맛을 다시는 모습인 ‘빕 그루망(Bib Gourmand)’은 가격기준이 포함된 마크다. 빕 그루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과 맛을 선사하는 레스토랑을 의미한다.
그밖에 포크모양으로 레스토랑의 서비스나 분위기를 표현하거나 집 모양으로 호텔의 등급을 나누기도 한다.
<미쉐린 가이드>는 <세계 베스트 50 레스토랑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나 <고에미요 Gault et Millau>과 함께 공신력있는 레스토랑 가이드북으로 꼽힌다. 마이클 엘리스 <미쉐린 가이드> 인터네셔널 디렉터는 이 책을 ‘미식계의 황금률’로 빗댔다. 누구나 믿고 따라가 맛볼 수 있는 ‘미식 북극성’이란 이야기다.
<미쉐린 가이드>는 객관성에 목숨을 건다. 이 책의 공신력은 공정성과 익명성에서 나온다. 세계 최고의 음식을 <미쉐린 가이드>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선발한다. 광고나 협찬도 받지 않는다. 기업 후원은 공정성에 해가된다.
스타 레스토랑 선발은 평가원이 담당한다. 이들은 프로 미식가다. 평가원 선발은 엄격하다. 호텔 레스토랑 업계에서 수년간 근무한 셰프나 수석 지배인이 발탁된다. 와인 소믈리에 출신도 있다. 이들 모두 <미쉐린 가이드> 기준에 맞는 훈련을 받아야 평가를 시작한다. 훈련 기간은 6개월이다. 훈련이 끝나도 선임 평가원과 레스토랑을 다니며 수습기간을 거친다. 회사 측에서 수습 평가원이 안정적이라 판단하면 비로소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
평가원은 ‘암행어사’다. 평가원이 차별대우를 받으면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평가원은 레스토랑 주인 몰래 예약을 하고 식당에 방문한다.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 가명을 사용한다. 전화번호도 주기적으로 바꾸고 식사 시 메모도 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한다. 전 평가원 ‘파스칼 레미’는 2004년 미쉐린 조사과정을 한 잡지에 발설했다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평가 과정은 빈틈없다. 평가원은 항상 둘이 다니고 여자와 함께 식당을 방문하기도 한다. 레스토랑 측이 일반 고객과 자신을 구분할 수 없도록 전력을 기울인다. 레스토랑 한 곳을 다수 평가원이 방문하며 처음 스타를 매기는 식당은 수차례 더 들른다. 영화 <더 셰프>에선 한술 더 떴다. 영화에선 평가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평가원은 7시 반 전에 예약해. 한 명은 일찍 와서 바에서 한잔 하고 다른 한 명은 30분 후에 도착해. 주문도 똑같아. 코스와 단품요리 하나씩 와인 반 병을 시키고 생수를 달라고 하지. 정장을 입어. 바닥에 포크를 내려놓고 종업원이 알아채는지 살펴. 소리 나지 않게 살짝 내려놓고 시험하지.
미쉐린 본사에선 한 달에 한번 ‘스타세션’이라는 회의를 열고 평가 결과를 토의한다. 어느 식당에 몇 개의 별을 줄지 토론한다. 애매한 식당이 있다면 다시 가서 먹어본다. 매해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한다. 신뢰성 확보에 필사적인 그들만의 방법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명성만큼이나 비판도 수없이 받는다. 요리를 평가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요리만큼이나 개인의 취향이나 문화적 특성에 영향을 받는 분야도 없다. 또 <미쉐린 가이드>는 문화자본주의 측면에서 비난 받기도 한다. 스타 레스토랑 선정 결과가 프랑스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치중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들은 먹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최고의 음식이 스포트라이트 받을 수 있도록 선정하고 소개한다. 이들이 100년동안 ‘미식 가이드북’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